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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Feb 13. 2024

12화.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잃어버렸다는 말은 원래 있었고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다. 되찾을 수 있는 잃어버림은 분실물 센터나 방구석에서 ‘원래 있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영영 잃어버림은 그럴 수 없다. 잃고서도 잃은 상태를 깨닫지 못하면 상관없다. 하지만 너무도 뼈저리게 영영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아차리면, 일상이 무너진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게 된다. 부모님, 형제자매, 반려자, 반려동물⋯⋯.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는 때로 건네는 약이 독이 되기도 해서 슬프다. 그대로 두기에는 그뿐이 아니라 내가 그를 잃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알 길이 없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너무 잔인하게만 들린다. 곁에 있다는 것은 그래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만난 건 한 번뿐이었는데도 슬펐다. 장례가 끝나고 다시 학교를 가던 날, 40분의 등굣길 내내 걸어가며 울었던 기억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런 기억에조차 오래전의 일이라는 시간 감각이 무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난히 크고 길게 느껴지던 장례 행렬과 어린 우리 셋에게 꼭 붙어 있으라며 당부한 뒤 달려가던 소복 차림의 그까지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사연은 있기 마련이니, 삼년상을 끝으로 할아버지의 묫자리도 잃어버린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것 같다. 삼십 년 가까이 지나 다시 찾아보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그날 나는 그의 뒤에서 걸었다. 그런 울음에는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음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할아버지의 제사 일에 맞춰 그와 여행을 간다. 우리가 깜짝 놀랄 때 ‘엄마!’하고 외치듯, ‘아부지!’하고 외치는 그에게 건네는 나만의 위로 방식이다. 그런 하루의 그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알아서 동선을 짜고, 상비 물품까지 깔끔하게 싹 챙겨서 그가 가방들 필요조차 없으니까. 후보 목록에서 원하는 음식만 얘기하면 되는 정도랄까. 올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슬픔은 무엇으로도 덮어지지 않지만, 그 가까이에 행복을 만들어주고 싶다.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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