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이는 순간

첫번째 회상

by 한여름



한여름이었다.


그날의 일은, 아마도 내가 그렇게 잘 기억하고 있다면 당사자들은 놀랄 테지만, 한장 한장의 사진처럼 아주 선명하게 남아져있다. 나는 그때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한참 뒤까지 그 날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했지만 내 안에 무언가는 그 날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 살던 나는 마당이 넓고 집은 작은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고 천정이 아주 낮고 파리가 많은 방에서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맞았다. 나는 그 전에도 심심치 않게 방문했을 많은 순간들 중에 유일하게 그 날의 기억이 남아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때까지 난 그저 누나와 함께 잠시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집을 찾았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의 그 순간만큼은 정지된 사진처럼, 아니 아이폰의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몇 프레임의 동영상처럼 남아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내가 가진 기억은 매일같이 착실하게 하루 하루를 세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열밤. 매일 하루 씩을 열에서 빼며 서울에 돌아갈 날을 세었고, 그 결과를 할머니에게 빼놓지 않고 말해두었다. 아홉밤, 여덟밤, 일곱밤, 여섯밤, 정확히 열밤 뒤에 서울에 가야 한다는 철없는 손자의 얘기를 매일 같이 들었을 할머니의 마음이 어떻게 무너졌을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열밤이 다 지났을 때, 내가 어떤 식으로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이해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순간만이 나에게 사진처럼 남아있는 것은, 내 삶이 더 이상이 같을 수 없음을,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떨어졌음을,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 80년대 생년월일을 가지고, 90년대의 풍요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IMF 이후에 또 각자의 사정을 가지게 되고, 입시 고민과 예전같지 않다는 대학생활을 보내는, 내 주변에 가득가득한 그 들과는 영원히 같아질 수 없는 곳에 놓이는 순간이었음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직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사는 부모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입시 고민을 했고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는 대학생활을 보냈고, 항상 심각하다는 취업난을 거쳐 그나마의 취업을 하고, 몇 푼 첫 월급을 받고 기뻐하고 그 돈으로 고기도 사먹고 했으니깐 말이다. 엄마가 없다는 말은, 크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굳이 숨겨야 할 이유도 없는 일이다. 다만 그 얘기를 꺼냈을 때 느껴지는 아주 잠시의 어색함.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자연스럽게 뭐 그럴 수도 있는거지. 라는 반응이 나오기까지, 그 작은 침묵을 경험하기 싫어 굳이 꺼내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만큼 나는 내 또래,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들과 영원히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내 키가 채 120이 안되는 때에, 누나는 나보다도 더 작았을 때에 나는 내가 알던 세상과는 다른 곳에 떨어졌고, 그 뒤로는 다시는 그 곳으로 돌아 갈 수 없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감상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엄마, 아빠라는 정서적인 교감 대상이 없는 것은 어쩌면 내게 닥친 일들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어쩌다 어린시절 얘기가 나오면 나눌만한 이야기들, 방학이면 놀이동산에 놀러가고 싶다고 떼를 쓰고, 빨간펜이나 구몬을 하며, 생일 날에는 장남감 선물과 함께 케잌에 꽃힌 촛불을 불어 끄고, 그런 추억이 차곡차곡 사진에 찍혀 쌓여있는 앨범이 집안 어딘가에 있는, 그저 남다를 것 없는 기억이 나에게는 없다는 것 이다. 그렇다고 매일 아침 차가운 물에 동생을 씻기고 먹을 것이 없어 옆집에 동냥을 다녀야 하지 않았고, 어쩌다 찾아오는 고모들이 얘기하는 수돗물도 없고 버스도 없고 먹을것도 없었다는 옛날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았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고모들이 데리고 오는, 나랑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사촌 형 동생들이 신은 새 운동화와, 고모들이나 와야 먹을 수 있는 소금이 뿌려진 구운 김이나 계란후라이 같은 것들을 평소에도 먹어보고 싶었으며, 사촌들은 하지 않는, 설거지나 청소를 좀 더 잘 하라는 얘기 같은 것들을 안 듣고도 살 수 있었으면 했다. 언젠가 TV에서 본, 사고로 떨어진 헬기 희생자의 영결식에서 지금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아빠의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나의 그 순간과 그리고 그 이후로 돌이킬 수 없었던 나의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인생이 시궁창으로 떨어지는 데에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데에는 그저 순간이면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 여섯 살이나 일곱 살쯤 되는 시점 즈음에는 아주 낮은 천장과 파리가 많은 방의 몇 프레임 정도로 남게 되는 것이다.

keyword
이전 05화아버지가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