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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Mar 12. 2024

자기 성찰의 바이블

-데미안


난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이토록 공감 가는 문장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살면서 마주할 때마다 긴 한숨이 쉬어질 만큼 공감이 가는 문장이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1919년에 출간한 소설로 당시 사람들은 이 작품을 두고 '청년 운동의 바이블'이라고 부를 만큼 자신들의 고뇌를 그대로 표현해 낸 것을 높이 평가하며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작품이다.

한 청년 싱클레어의 내밀한 고백을 통해 전쟁 직후 독일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표가 되었던 <데미안>은 삶을 향한 인간 내면의 두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신의 운명을 찾으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데미안>은 정신분석을 받고 자기 성찰과 깊이 있는 자기 탐구를 섬세하게 그려낸 헤르만 헤세 자신의 영혼의 자서전이라고도 불리는 명작이다.



화자는 중년의 싱클레어로 유년 시절의 회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싱클레어는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과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 안에서 유복하게 자라는 동시에 가정의 바깥세상인 어둠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갖고 있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싱클레어는 이 두 세계를 발견하고 의식하면서도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갈등한다. 

이러한 싱클레어의 밝은 세계는 프란츠 크로머에게 약점을 잡히면서 어두운 세계로 빠져든다. 

크로머에게 끌려다니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나타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과 아벨 이야기의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며 논쟁을 펼치게 되고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싱클레어의 내면을 맴돌며 끝없는 의문을 남긴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으로 인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관점, 즉 카인이 살인자가 아니라 강인한 내적 힘을 가진 신으로부터 독립한 종족의 상징이라고 보게 된다. 진실은 지금껏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데미안의 주장으로 인해 싱클레어는 비판적인 자아가 싹트기 시작하고, 프란츠 크로머와 맞설 결심을 하게 된다. 스스로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단초를 발견한 것이다.



고독과 방황 속에서 헤매며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던 소년기의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 선악의 이분법적 구분과 가르침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부모의 밝은 세계로부터 독립한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하는 책임감을 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내면적인 혼란을 겪으며 패거리들과 술과 향락에 취해 금지된 것, 악, 어둠의 세계에 사로잡혀 지내지만 소년기와는 달리 그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게 된다. 베아트리체는 싱클레어의 자아가 추구하는 이성적이고, 친밀하면서도 밝음과 어두움을 아우를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성인으로 향해 가는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 다음으로 어린 시절 고향집 현관 위에 있던 문장에 새겨진 새를 그리고 데미안에게 보낸다. 데미안에게서 답이 온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알에서 깨어 나오려고 애쓰는 싱클레어의 자아를 향한 길잡이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길잡이의 존재를 찾아낸 싱클레어는 아브락사스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내면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구성하는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은 무엇인지. 자아를 탐구하는 싱클레어의 고민들은 아브락사스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닮아 있다.

싱클레어는 신부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그로부터 아브락사스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그는 신이기도 하면서 악마이기도 한 아브락사스를 알아가면서, 선과 악의 내면의 갈등을 통합해 나가는 내적 자아의 힘을 발견하고, 점차 자신의 꿈, 생각, 감정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 된다. 

싱클레어는 야곱의 씨름처럼 자신의 꿈에 나타난 영상과 씨름하면서, 선악이 대립되는 세계가 자신 안에서 통합되는 일체감, 즉 아브락사스를 체험하게 된다. 비로소 어릴 적 두 세계의 억압과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나는 시를 쓰려고, 설교를 하려고, 그림을 그리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것은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모든 이에게 진정한 소명은 자신을 찾아가는 일 하나뿐이었다.

그가 관심을 둬야 할 일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운명을 찾는 것, 그 운명을 모두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미완성, 현실도피, 대중적 이상 속으로의 도주였고,

순응이었으며, 자기 내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무엇이든 '우연히' 발견되고, '우연히' 시작되는 것은 없다. 

사람이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루어진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얽매 오더라도,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집중해야 한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그 길에 대한 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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