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
한글날을 맞이해 좋아하는 펜과 종이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다소 식상하지만 손 편지를 적어봅니다.(에? 그러고 보니 타이핑도 손으로 하는데... 정확히 얘기하면 손글씨 편지라고 해야 하는군요.) 한글날이라 손 편지를 적는다는 것은 식상하지만, 종이에 쓰는 손 편지가 오랜만입니다. 글씨도 참 신기한 것이 오랜만에 쓰다 보면 잘 써지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지난 목요일 2차 백신을 맞고 며칠 쉬었습니다. 겁을 먹은 탓에, 8시간 간격으로 타이레놀을 꼬박꼬박 먹고, 식사도 꼬박꼬박 하고, 몰려오는 졸음을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더라구요. 그렇게 날들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쉴 수 있어 목요일에 맞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글씨를 쓴 후 몇 초 있으니,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면서 조금 번지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 처음 쓸 때의 엣지가 사라집니다. 엣지가 살아있는 것이 이 펜의 매력인데. 아쉬워라. 펜에 진심인 저입니다.)
벌써 부스터샷 얘기가 나오는데 백신 맞고 몸 사리고, 걱정하고, 어떻게 이걸 반복하나 하는 걱정이 듭니다. 어쨌든 저는 타이레놀 덕택인지 아직까지 별 탈이 없고, 심하게 필라테스를 했을 때 다음날 오는 근육통 정도의 느낌만 있었습니다.
오늘은 살금살금 부모님 댁을 다녀오는 길에 동네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을 하고 들어올 정도.
그런데 그 친구가 한 2년 만에 제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 코로나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얼굴을 아는 사이이고, 일 하면서도 가끔 얼굴을 보고, 공연 보러 가서도 얼굴 보고, 인스타에서도 사진을 보고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항상 마스크를 낀 상태였던 거지요.
그러고 보니, 작년과 올해 만났던, 새롭게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내년쯤 만나면 얼굴을 못 알아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사무실에서도 새로 만난 친구들을 마스크 벗은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모습에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몇 번이나 있거든요.
사람은 얼마나 많은 것을 자신의 상상력에 의존해 생각하고, 단정 짓고, 믿어버리는 걸까요. 그 믿음에 흔들림이 왔을 때 나는 나의 믿음과 생각을 그리고 신념을 바꿀 수 있는 걸까요? 그 상상과 신념이 없을 때 사람은 살 수 있는 걸까요? 자의적인 해석, 아니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문득 이런 생각들이 연이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나의 시각과 해석으로 사람을 만나고, 상황을 대면하는 것인지.
그 친구는 2차 백신 접종 후 14일이 지나는 내일모레, 다른 나라의 다른 도시로 간다고 합니다. 즉흥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우리의 만남도 즉흥으로 성사됐습니다. 그런 거지요. 인생은. 그런 시간을 꿈꿔봅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