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3
해가 떨어지면 한낮의 옷 만으로는 제법 쌀쌀함을 느끼게 되는 바람이 불면서, 코로나와 함께 하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한창 인기 있던, 지금 표현으로 말하자면 힙한 사람들이 병째 마시면서 즐기던 맥주가 코로나였습니다. 그랬던 이름이 2020년 초 난데없이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면서 시작이었음을 진단하는 19라는 숫자가 붙고 어이없는 의미로 재탄생했습니다. 여름이 되면 사그라들 거라는 예상은 열대지방의 국가들에도 확진자가 생기면서 한낱 기대감이었음이 드러났고, 여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는 가을이 되면서 역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올 겨울에는 2차 대유행이 올 거라는 예측만 남아있네요.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 시기는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계속해서 '이후'로만 점쳐지고, 지금 시점에서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은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 뿐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지구를 생각하면서도 매 순간 마스크를 찾고,
마스크 없는 저의 얼굴은 너무 허전하며,
마스크 없는 다른 이들의 얼굴은 눈길이 아니라 눈초리가 갑니다.
대중교통에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숨을 잠시 멈춰얄 것 같은 느낌이고,
길거리에 침을 뱉는 사람을 보면 상상이상의 불쾌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또한 동료들과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눕니다.
결국은 그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나 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인류의 멸망이 오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온, 살아가는, 살아갈 인류에게는 재앙이지만, 지구 최상위 포식자의 멸망은 지구, 어찌 보면 우주의 자연스러운 싸이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깝지만 다만 인간은 그 시기를 조금 늦출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출근길에 가끔, 사실 이제 습관처럼 거의 매일 들르는 골목 카페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커피를 기다리며 사장님과 잠깐 얘기를 나눴어요.
그날 골목에서 새끼고양이들을 4마리인가 봤거든요. 정말 자그마한 아가들.
구청에서 길고양이들을 데려가서 중성화수술을 한 후 돌려보낸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름에는 중성화수술을 안 한다고 하네요. 고양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유인하는 상자에서 2-3일 정도 있게 되는데 더위로 애들이 잘못될까 봐, 그래서 여름은 건너뛰고 9월쯤 다시 시작한대요.
그거 아세요?
고양이는 2달에 한 번 발정이 나고, 임신기간은 약 60일. 그리고 보름이 지나면 또다시 임신이 가능해진대요. OMG… 그 골목에서 할머니고양이와 엄마고양이가 거의 같은 시기에 새끼를 낳았다고 합니다. 제가 그날 아침에 본 아가들은 엄마고양이의 새끼들이구요.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암컷 고양이는 일 년에 여러 번 발정이 날 수 있지만, 봄과 가을에 번식하는 계절번식동물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특정 시기에 아가 길냥이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게 된다고.
그리고 그 골목 아가고양이들의 아빠고양이는 거의 같은 것으로 추정된대요. 완전 새까만 고양이. 인간사와 같겠습니까마는 그 와중에 오이디푸스, 그을린 사랑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며칠 뒤, 출근길에 드디어 아빠고양이를 봤습니다. 좀 부리부리하고 무섭게 생겼던데.
엇!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이던가... 10년은 조금 안 됐겠지만 거의 그 정도일 만큼 오래전에 사무실에서 한 친구와 얘기 중에 제가 '도둑고양이'라고 말했더랬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고양이가 선배님 거 뭘 도둑질했어요?"라고 묻더라구요.
아... 그렇네!?! 억울하긴 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때 처음 그 친구에게 길냥이, 길고양이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지금이야 도둑고양이라는 말이 거의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길냥이가 드문 말이었거든요.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감이 무거워 입양을 하지는 못하지만 냥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하는 저는 처음 들은 고양이의 임신과 출산에 1차 충격을 받았고, 이번 건강검진 때 한 알러지검사에서 고양이 알러지 수치가 엄청 높게 나왔을 때 2차 충격을 받았더랬습니다.
얼마 전 출장으로 템플스테이를 위해 하루 전 해남에 도착해 1박을 하는데 그곳에도 5-6 마리의 새끼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마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니, 어디선가 나타났는데 정말 예뻤거든요. 알고 보니 그 집의 사장님이 식사 때 밥을 챙겨주셔서 시간이 되면 스스로들 나타난다고 합니다. 어쨌든, 한참을 그렇게 아이들끼리 있다가 어디선가 또 엄마고양이가 나타났는데, 새끼고양이들을 오래도록, 끊임없이 핥아주더라구요.
고양이가 모성애가 강하다고 하는데, 새끼들을 많이 핥아줄수록 그중에서도 모성애가 강한 고양이라고 합니다. 검색한 건 아니고 들은 이야기입니다. 손 안 가게 도도하고, 혼자인 거 좋아하는 고양이가 그런 모성애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습니다.
하긴 개와 비교하는 인간의 기준이고, 고양이마다도 다 차이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 모든 고양이들은 친구가 만난 길냥이 영상을 보내주어,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ㅎ
계절의 바뀜이 확실한 것이 이 높은 곳까지 귀뚜라미로 예상되는 풀벌레 소리가 참 잘도 들려옵니다.
소리가 하도 커서 매일 밤 창밖에 붙어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순간순간 듭니다. 그럴 리 없기를.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