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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Sep 11. 2024

하얀 눈을 기다리며

2020년 12월 #2

2-3주 고민하다가 지지난주에 주문한 1인용 소파가 도착했습니다.

집에 무언가를 들이는 것은 저에게 상당히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만)하는 저는 이미 집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감당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제가 추구하는 삶과는 사뭇 다릅니다. 하물며 가구라니… 

그런데 때가 때인지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잠잘 때만 눕는 침대와 딱딱한 테이블 의자 만으로는 몸을 편히 쉬게 할 수 없더라구요. 아주 가끔 선반형 나무벤치에 누워있는데 딱딱한 바닥과 기댈 곳이 없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그리하여! 솜을 채운 겨자색 패브릭 소파가 왔습니다. 등받이와 목의 각도를 조절해서 누울 수도 있는 리클라이너입니다. 


소파 조립을 하고 핑계김에, 소파에 기대고 앉아 오래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열한 계단]이라는 책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책 읽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읽는다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짧은 몇 년 전, 저 개인의 발전(?)을 위해 시간을 잘 쓰자… 고 마음먹었었는데.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 사이 저는 유튜브로 드라마를 보고, 먹방을 보고, 예능 짤들을 보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쉽지만 처음 의도와는 방향성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며칠 전에는 퇴근 후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고교 졸업 후, 8년이라는 시간을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한, 하지만 고졸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이 있어도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는 여성 직장인들. 하지만 자신들이 젊음을 바치고 애정하는 회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하길 바라는 사람들. 

한 나이 지긋한 직장 상사가 한참 어린 후배에게 재미있는 걸 찾으라고… 하는 말이 마음에 콱 박혔습니다. 재밌는 게 뭔지 모르겠다며 싫은 건 있다고 하는데, 그럼 싫은 걸 하지 말라고… 하하. 그 말을 하는 직장 상사의 눈빛이 어찌나 애틋하던지요.

어린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처음이라 그리도 신기하고, 신난다고 합니다. 그렇게 신기하고 신난 적이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이 나이까지 세상일이 그리 신기하고 신난다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가끔은 그렇게 신나는 일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 친한 언니를 만났는데, 어렸을 때 지금보다 젊었을 때 못해본 게 너무 많아서 다 하고 죽고 싶다고, 오래 살고 싶다고 언니의 친구들에게 얘기했다더라구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만나면 낯설어서 적응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벌써. 세상은 새롭게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 차고 넘치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이 나이에, 이만큼 살았으면 모든 것들에 능숙해야 한다고 무의식 중에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능력한 것으로 생각하는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열한 계단]에서 지은이는 말합니다. 

책 읽기는 한 가지 분야의 책을 깊이 읽으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방법과 기존에 읽은 것과는 상반되는, 그래서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전환해 가면서 인식을 넓혀가는 방법이 있다구요. 언젠가 수업시간에 들은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가 문득 떠오릅니다. 수업시간에는 그렇구나... 하고 넘겼지만, 일을 하면서 새삼 생각하게 되었던 스페셜리스트인가, 제너럴리스트인가.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죄와 벌]을 아무런 맥락 없이 읽어보려고 합니다. 엄청 오래된 전집 중 한 권이었던 [죄와 벌]을 읽다가 그만뒀던 기억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연히도 1-2주 전에 사무실 책장에 처박아 두었던 [죄와 벌] 상권을 집으로 가져왔거든요. 지난주 중고서점에 갈 때 팔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근데 안 팔았습니다. ㅎ


내일은 눈이 온다고 합니다. 첫… 눈인가요? 그저 감성 뿅뿅이고 싶은데, 이 와중에 연말 겨울에 오는 것이 첫눈인지 그 해 초 1-2월에 오는 눈이 첫눈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올여름도 지독하게 덥다더니 큰 더위 못 느끼고 지났는데,

올 겨울도 엄청 춥다더니 아직까지는 큰 추위 없이 지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겨울은 길게 남았습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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