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
어제는 팔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꺼내놓았던 책 몇 권을 들고 중고서점에 나갔습니다.
벌써 최소 3-4달은 전에 꺼내놓았던, 그리고 한두 달 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하는지를 미리 확인했던 책들입니다. 무겁게 들고나갔는데, 두 권은 아예 재고 초과로 아예 판매 불가고, 한 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고가 한도 직전이라 균일가 1천 몇백 원에 판매 가능하다며 팔겠느냐고 묻더군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팔아버리고, 현금 14,000원을 손에 쥐었습니다. 검색할 때만 해도 3-4천 원에 판매 가능한 것이 몇 권 있었는데, 그 사이 시세가, 말 그대로 시세가 변했습니다. 횟집에서 '싯가'(시가 말고, 항상 싯가라고 적혀 있는 건 왜일까요)는 봤는데, 중고책 매입도 시세라니요. 중고책을 파는 것도 때가 맞아야 하는가 봅니다.
그런 거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때가 중요합니다.
예 또는 아니오로 대답을 하는 것도, 회사를 들어가거나 그만두는 것도, 업무 관계자에게 어려운 연락을 하는 것도 때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할 때도 하루 중 어느 때에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고, 그 사람은 지금 어느 때일지 고민하고, 일의 전체 맥락 중 어느 순서와 시기가 좋을지 고민합니다.
마음이 있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도, 헤어짐의 말을 건네는 것도 때가 중요합니다.
성적표를 부모님에게 언제 보여드릴지도 고민했고, 언제 어떤 공부를 할지도 고민했습니다.
너무 빨라도 안되고, 너무 늦어도 안되고, 상대적으로 관련된 다른 것들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합니다.
심지어 개인이 선택하지 못하는 태어나는 때도 중요합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잘 만났다고 하잖아요. 그 '때'는 누가 정하는 걸까요, 누군가 바로 지금이라고 얘기해 줄 수는 없는 걸까요.
무엇이든 정해진 때는 없지만, 나의 선택에 따라 연이어 많은 것들이 바뀌곤 합니다. 인과관계를 내가 알든 모르든. 모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 다만 알면서도 실기(失期) 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엄마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연예인이 사주를 보러 가는 것을 보고, 나도 사주나 볼까… 하다가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2020년은 코로나만 안 걸려도 올해의 운을 다 쓴 거라더라고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엄마는
‘그래, 하루하루 그렇게 차곡차곡 사는 거야…’라는 짧은 말을 전합니다.
책을 팔기 위해 몇 권이 됐든 중고서점까지 가지고 왔다가, 판매가 불가할 경우 지금은 아니라며, 적당한 또는 최적의 때를 기다리겠다며 들고 왔던 책을 다시 들고 가는 이가 있을까요?
인간의 삶이 그렇게 때를 묻거나, 물릴 수 있던가요.
현금을 지갑에 접어 넣고 나오는 길,
어떤 남학생이 커다랗고 각진 금속 캐리어를 무겁게 들고 계단을 내려옵니다.
코로나 때문에 중고책을 사고팔까…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지만,
그곳엔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근처 가보고 싶었던 빵집에 들러, 책 팔고 남은 돈을 조금 넘게 지출하고 얻은 자그마한 빵 꾸러미를 한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