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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Oct 02. 2024

이사라는 독립가구의 무게

2021년 1월 #4

말도 안 되는 사실 한 가지. 

벌.써. 1월의 끝자락에 서있습니다. 

금요일에 휴가를 냈지만, 결국 집에서도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던 탓에 허리가 너무 아픕니다.

그 사이 눈이 오고, 가고,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해가 차례대로 들렀다 갔습니다.

시간과 날씨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요 며칠 동생과 문자를 몇 개 주고받으며 주택청약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문자를 하는 경우라고는 거의 없는 녀석인데 갑자기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 분양공고가 났는데 신청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며 메시지를 보냈더라구요. 당첨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당첨된다 한들 계약금부터 시작되는 납입금은 어떻게 낼지, 여러 가지 선택사항 중 뭘 선택할지(처음 주택분양공고를 봤는데 카테고리가 엄청 많더라구요)… 등을 따져봐야 하는데 그럴 겨를도 없거니와 그런 저의 상황과는 별개로 지역과 집이 맘에 들고 안 들고 또한 부차적인 문제로 보입니다.  

미루고 미루다 주말을 맞아 오늘 잠깐 홈페이지에 들어갔었는데, 으악… 너무 빽빽한 정보에 질렸습니다. 

맘에 드는 건 제 조건으로는 신청할 수가 없고, 

제가 신청할 수 있는 것은 분양 세대수가 너무 적어 가능성이 없고 뭐 그런 식으로 반복입니다. 

아직 분양신청을 해본 적이 없어서, 글자 하나하나 읽고 정보를 이해하는 것도 버거웠습니다.

사람들은 어쩜 그리 똑똑해서 이런 걸 해내며 살고 있는지.


사실 며칠 전에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전셋값이 너무 많이 오른 사실을 발견하고 기겁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주택청약 얘기를 들어 심난한 김에 읽어보기라도 하게 된 것 같아요. 세입자 보호를 위해 추가 2년은 5% 이상 올릴 수 없다고는 하지만, 집주인이 자신이 들어오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집을 빼야 한다고 합니다. 더욱이 거의 대부분 전셋값이 올라서, 집주인들이 그런 방법으로 세입자를 바꾼다고 하네요. 지금 살고 있는 집 바로 전에 2년 거주했던 곳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인상(누군가에게는 타당할 수도 있지만)에 감당도 안되고 집주인의 태도에 열받아서 집을 옮겼었거든요. 열받아봤자, 세입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이사 가는 품과 돈을 들이는 것 밖에 없는데 그 수고로움이 상당하더군요. 

오피스텔에서 처음 아파트로 이사 올 때는 큰 짐이라고는 침대랑 책상 하나밖에 안돼 용달 한 대 부르고 포장이사도 필요 없이 쇼핑백 몇 개에 짐을 나눠 넣으면 충분한 정도였는데, 큰 가전제품들이 생기다 보니 지난번에 이사할 때는 이삿짐센터를 불러 견적을 받아야 했습니다. 최소한의 물건으로만 살겠다는 의지와는 달리 왜 이렇게 물건들이 많이 생긴 걸까요. 3-4명 되는 가족의 삶과 일인가구의 삶을 위해 필요로 하는 사물들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덕분에 제대로 이.사. 


이제 이사 온 지 1년도 채 안 됐는데, 벌써 다음 계약 걱정, 이사 걱정을 해야 한다니 예전에 엄마아빠가 왜 집 걱정하며 살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저희 집은 아빠 직장 때문에도 그랬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사를 정말 많이 다녔습니다. 엄마가 지긋지긋하다고 했을 정도로. 포장이사도 없을 시절에는 그릇 하나하나, 옷 하나하나를 모두 엄마가 신문지나 박스, 보자기(아시나요, 보자기?)로 포장을 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그 많은 제각기 다른 박스들은 어디에서 공수했는지. 저랑 동생은 어린 마음에 이사하면 새로운 공간으로의 변화가 생기는 거니까 나쁠 게 없었습니다. 각방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어떤 방을 내가 사용하느냐가 중요했고, 이번에는 방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심사였을 뿐이죠. 때로는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이사한 집으로 가기만 해도 되는 경우도 있었구요. 그러고 보면 그것도 참 오래된 일이네요. 어쨌든 다음에 이사를 하게 된다면 출퇴근길이 좀 멀어지는 건 각오하고 있는데, 집을 새로 알아보고 이사하고 비용 들고… 타이밍 맞춰 큰돈을 주고받는 거래 행위 등 신경 쓸 일이 많다는 것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먼 출퇴근 거리도 막상 닥쳤을 때 감당이 되려나도 모르겠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저는 그나마 독립을 늦게 해서 이런 고민과 수고를 늦게 시작한 케이스이지만, 직장 동료들과는 전월세 집 구하기와 이사가 일 년 내 등장하는 이슈입니다. 관심이 생기니 귀에 더 잘 들어오는데, 거주의 편의성은 둘째치고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에너지를 크게 아낄 수가 있다는 걸 알아갑니다. 


일 외에 다른 생각을, 딴짓을 하지 못하다 보니 마냥 얘기하는 것이 일 얘기에 단순하게 먹고사는 얘기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입 밖으로, 손 끝으로 꺼내기가 마냥 즐겁지가 않습니다.  

팍팍한 생활을 꺼내놓으면 안 좋은 에너지를 주변에 퍼뜨리는 것 같아서, 왠지 미안한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당신의 해피**라는 이메일 계정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에 PC통신 나우누리, 하이텔 하던 시절에 아는 분이 웃음상자라는 아이디를 썼었어요. 그 아이디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이 납니다. 

내일 아침에는 찬 공기를 충분히 마시기 위해 꼭 운동을 하러 나가야겠습니다.

공기라도 맑아야 할 텐데요…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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