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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Dec 12. 2024

가난의 대물림 끊기 <하틀랜드>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난 미국 백인 빈곤층 이야기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편견이 편견인걸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입니다. 정말로 게을러서 가난한 것일까요? 가난과 가정폭력의 대물림에서 벗어난 세라 스마시는 자전적 에세이 <하틀랜드>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에서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통념과 달리 뼈 빠지게 일하고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이유를 보여줍니다.


 

외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진 첫 출산 시기


세라 스마시는 그녀의 엄마가 겨우 17살에 낳은 아이입니다. 세라의 엄마 역시 외할머니가 17살에 낳은 아이로, 세라가 태어났을 때 외할머니는 고작 34살이었습니다.


외할머니는 6번 결혼했습니다. 결혼 기간이 짧았던 원인은 모두 남편의 가정 폭력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미국의 깡촌인 캔자스에서 가난한 여성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결혼밖에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야만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죠. 6번의 결혼은 6번의 탈출이었습니다. 그러는 과정 동안 자식, 특히 딸은 어머니와 비슷한 삶을 물려받았습니다.


세라의 엄마 역시 세라의 외할머니가 그러했듯 17살에 세라를 낳았습니다. 다만 외할머니보단 운이 좋았는데요, 일정한 주소지 없이 트레일러를 전전하며 사는 극빈층과 달리 그래도 세라네 가족에겐 허름해도 안정된 집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세라의 아빠는 일반적인 캔자스 남자와는 다르게 가정적이어서 자식들을 차에 둔 채 밤새 술집에 있긴 했어도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습니다. 덕택에 세라는 10대 때 첫 출산, 이후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외할머니나 엄마와 다르게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었습니다.


세라 스마시의 집도 이런 목조 주택이었습니다 (출처: 픽사베이)


 

레드 넥


캔자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깡촌으로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이들은 대부분 백인이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거의 항상 술이나 마약에 취해 있습니다. 캔자스에서 놀거리라곤 술과 마약뿐이거든요.


그래도 이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햇빛에 목이 벌겋게 타 '레드 넥'이 된 채로요. 햇빛 아래 열심히 일한 증거인 '레드 넥'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을러서 가난한 백인이라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들은 집도 없이 트레일러를 전전하며 살아도 어쨌든 굶지는 않았기 때문에 뭐가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한 번은 세라의 아빠가 일을 하다 회사 트럭 구조 문제로 독성 가스를 흡입해 중독 후유증으로 3년을 고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위험한 걸 알면서도 트럭 구조를 변경하지 않은 회사 측에 분노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세라의 아빠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레드 넥'이었기 때문이죠. 그들은 그저 운이 없었거니 하면서 모든 걸 홀로 감당했습니다. 아빠가 일을 못해 수입이 끊겼는데 치료비까지 들어가니 세라네 가족은 더욱 궁핍해졌습니다.



자기가 중독된 일에 대한 기억이니 완벽하지는 않았겠지만,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아빠가 입은 정신적 상처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해 아빠가 아무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었어. 일하다가 죽는 게 자기 운명이라는 걸 잘 안다는 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커서 자기가 희생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이 말했어 (본문 중)


캔자스 농장 (출처: 픽사베이)



가난한 여자의 삶

 

세라는 외할머니와 엄마를 보며 다짐한 게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많으면 그만큼 돈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임신을 했을 때부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세라가 볼 때 가난한 여자에게 임신과 출산은 더 가난해지는 급행열차일 뿐입니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출산을 한 덕택에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그 부분엔 감사하지만 나 같은 삶을 내 딸에겐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탈출


하루는 세라의 아빠가 일을 하다 큰 화상을 당했습니다. 얼굴부터 팔까지 상체 절반이 불에 탔고 뼈가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당연히 당장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고 종교에 의지했습니다.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너무 끔찍한 그 상처를 병원에 가지 않고 신께서 치료해 주실 거라며 집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아빠를 보며 세라는 '믿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습니다. 신께서 치료해 준다는 믿음이 병원에 가지 않게 만들고, 그저 운이 나빴다는 믿음이 부당한 회사에 분노하지 않게 하고, 레드넥이라고 비아냥을 당해도 나는 중산층이라는 믿음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세라는 절대 아빠와 같은 믿음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세라의 엄마, 외할머니가 그러했듯 세라 역시 10대 때 집을 떠납니다. 다른 점은 세라의 엄마, 외할머니는 남자에게 갔지만 세라는 학교에 갔다는 점입니다.



캔자스의 흙바닥에 살고 주방 조리대 위엔 버터 대신 크리스코 쇼트닝 큰 통이 있고 1달러짜리 환불 쿠폰을 꼬박꼬박 모아 발송하면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부른다는 건 안빈낙도의 정신 승리이자 동시에 경제 구조에 대한 서글픈 무지의 소산이었어." (본문 중)


세라 스마시


 

교육의 힘


세라 스마시는 스마시 가문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세라는 자신의 가족, 더 나아가 열심히 일하는 캔자스 주민 대부분이 가난한 이유가 단순히 '운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몇 대를 이어진 가난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령 미국 빈곤층은 은행에서 정부 지원금을 인출할 때마다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인출 한도가 겨우 25달러라 수수료를 몇 번이나 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는 가난한 사람의 얼마 안 되는 돈까지 악착같이 가져갑니다. 그런데 몇 대에 걸쳐 가난이 유전된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그저 순응할 뿐입니다. 회사의 부주의로 목숨을 잃을 뻔했어도 분노하지 않고 손해마저 감당하며 더 가난해져도 그저 운이 없어서 그런 줄로만 압니다. 왜냐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가난은 교육받을 기회마저 박탈합니다.


세라 스마시는 하틀랜드를 통해 미국 현대사와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 가난이 대물림될 수밖에 없는 개인적, 사회적 이유를 읽기 쉽게 풀어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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