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보이는 모습
그의 집 주변에는 시장이 있다.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다양한 먹거리가 즐비한 시장이 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특히, 요리를 좋아하는 그에게 너무나도 알맞은 조건이다. 하지만, 집 앞의 풍경은 다소 삭막하다. 이곳도 재개발의 흐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신 후에 산책로로 향했다. 몇 걸음 발을 옮기면 사람이 살지 않은 공간이 나온다. 많은 건물에 철거를 위한 구조물이 설치되기 시작했고 텅 빈 곳을 몇몇의 고양이들이 지키고 있다. 사람이 떠난 후 이곳은 고양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지만, 안전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마음 한구석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일렁였다. 곧 비가 올 것 같았지만, 미리 준비한 우산에 안심하며 산책로로 향했다. 함께 걸으면서 그의 모습 몇 컷을 촬영했다.
삭막한 상실의 길도 특유의 유연한 속도로 어루만지는 그의 발걸음을 보면서 그 모습을 최대한 명료하게 남기고 싶었다. 준형은 천천히 걷는 걸음에서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연민할 줄 알며 언제 변할지 모르는 날씨에서도 의연하고 먼 거리 일지라도 여정 자체를 음미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가 지닌 호기심과 질문은 항상 거부감없이 다가온다. 온 세상이 다양한 문제들로 어지러운 지금 준형은 조금은 느린 땅 위에 우직한 자신의 두 발로 서있다.
기록하는 사람 _ 박소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