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질 수 있는 노랑
은주와 처음 만난건 서교동에서 의식주를 열게된 첫 번째 해였다. 그 당시 나는 전시공간에 대한 이해와 운영방식에 대해 다소 적극적이지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의 은주의 그림들은 연와조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의식주와 딱 알맞게 어울렸다.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 그리고 가변 하는 주변의 소리는 정갈한 빛깔의 장면들과 어울려 시간의 프리즘을 만들어냈다. 최근 그의 작업을 다시 보면서 새삼 시간의 속도를 상기하게 되었다. 성장이라 말하기엔 통속적이고 변화라고 하기엔 너무나 식상하다. 물리적인 빛의 의미에서 확장되는 찬란한 질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내 평화롭고 고요한 단면을 경험하게 된다. 은주가 만든 장면에는 노란색의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작업은 오롯이 그의 취향과 시선이 수집한 ‘은주’ 그 자체다. 특히, 그가 만들어낸 형과 색은 손으로 만지는 체험을 선사한다. 만져야만 알 수 있는, 차갑고 뜨겁고 미지근한 온도, 거칠고 부드러운 질감, 자극적이거나 안락한 감각, 눈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런 그림들을 그려내고 있다.
은주의 방이자 작업실, 거실과 분리되어 있지만 연장선처럼 느껴질 정도로 잘 정리된 공간이다. 포장된 작품들이 놓인 위치, 이젤과 물감, 테이블의 위치는 적절한 거리와 면적을 나누어 조용함을 수반하는, 자연스레 몰입될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쓰다듬듯 누구에게나 쓰다듬을 허락하게 하는 공간이다. 지속적으로 손과발 그리고 얼굴에서 적당히 따듯한 온도를 감각하게 한다. 이 방은 빛을 머금고 있다. 활활 타오르는 화려한 불꽃 보다는 몽글몽글하게 빛나는 반딧불이와 같은 노란색 촉감을 머금고 있는 방이다. 이곳에서 그의 손이 잘라내고 빚어내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나에게서 멀어지고 잊혀진 말랑한 감정들이 피부를 뚫고 올라온다. 두려움과 불안을 쉽게 밟고 넘어서는 어린날의 호기를 피어나게 한다. 어느 날부터 쓰게된 어른의 가면을 핑계로 마주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자화상과 만날 수 있다. 은주의 공간은 내일 만들어질 빛의 반죽을 상상하고 기대하게한다. 그리고 은주의 그림은 쾌청한 날씨, 신선한 계절, 아이들의 싱그러운 미소를 담고 있다.
기록하는 사람 _ 박소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