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오가닉씨 May 13. 2018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더 가까이 와 앉아요, 그래야 이야길 나누지.”     

어색한 기류 속에서 많은 사람이 두런두런 둘러앉았다.

질문을 주고받는 그들은 사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까르르 웃기도 하고, 간간이 깊은 한숨도 흘러나왔다.      



생산자X만남
생산자X간담

흔한 말이지만 낯선 조합이다. 하지만 ㅎ생활협동조합(이하 ㅎ생협)에 근무하는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조합이다. 말 그대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생산지에 가서 완장을 차고 점검하거나 딸기나 버섯을 따는 체험이 아닌, 직접 만나서 서로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자리다.


요즘 우리는 농산물을 살 때마다 배추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생산자의 얼굴을 자주 본다. 최근에야 이런 '생산자'라는 존재가 부각된 것뿐이지,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형형색색의 먹음직스러운 과육이나 물방울 맺힌 싱싱한 채소 잎, 맛깔난 요리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제 생산자는 농업 유통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콘텐츠’가 되었다.     


누가 원조인지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도시의 소비자와 농촌의 생산자를 가깝게 하려는 노력은 ㅎ생협의 오랜 고민이자 미션이었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농사를 소비자가 든든히 지지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곧 생산자를 가까이하는 것부터가 그 시작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래서 우리는 글이든 사진이든 생산자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풍년에 기뻐하는 밝은 모습과는 대조되는 모습까지 말이다. 해마다 심해지는 기후 변화로 인한 어려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농촌의 모습, 시장 논리로 점차 제값을 받기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모두 실어서 생산자의 희로애락을 소비자에게 전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개인적으로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생산자의 어려운 모습을 내보이기가 부담스러워졌다. 생산자가 농산물을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흔하고 당연해져서 일까. '건강하고 행복한 생산자가 수확한 맛있는 농산물'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당연한 콘텐츠가 되었다는 것도 많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과연 그들은 정말 사진 속 모습처럼 행복할까.


새벽부터 이고지고 온 정성

“이렇게 힘드시다는데⋯.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아마도 소식지에 활짝 웃고만 계시는 생산자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요.”

ㅎ생협이 주최한 생산자 간담회에 참여한 소비자가 말했다.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낮은 품위와 잦은 결품에 우리도 힘에 부친다는 어느 생산자의 이야기를 듣고 말이다.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녹록지 않은 상황을 토로하는 생산자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을 때 '활짝 웃어달라'는 나의 주문이 생각난 것이다.


"사실 그게 어려워요. 힘든 티를 내는 것이요. 내가 생산한 먹을거리가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는 건 원치 않거든요."

사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서도 그랬다. 아마 사진 속 웃음 짓는 생산자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거다. 기왕 먹는 거 마음이 편한 것이 좋지, 한숨이 가득 담긴 먹을거리를 기쁘게 먹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불편해도 마주해야 한다. 유기농이든 관행이든 갈수록 농사는 어려워진다. 기후 변화는 물론이고, 육십 대 후반의 농민이 그 동네의 막내인 농촌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현실을 겪어내고 있다. 풍년도 더 이상 기쁘지 않다. 최저 가격이라는 안전장치 하나 없이 시장 논리에 따라 그해 풍년인 농산물은 시장 가치가 떨어져서 제값을 받지 못한다. 조그마한 흠집이 있으면 반품 처리가 되어 되돌아오거나 버려진다. 시장에서는 올곧고 예쁜 것이 선전한다. 사람들의 밥상엔 열대과일이나 지구 반대편에서 온 포도가 더 자주 오른다. 그 사이에 배는 나주가 아닌 안성에서 키우기가 수월해졌다. 기후와 환경의 변화로 예상하지 못한 병해충이 논과 밭을 뒤덮는다. 농촌의 현실은 이러한데 희한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먹을거리를 더 쉽고, 간편하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그럼에도 그들은 웃어야 한다.

웃음과 함께 그들의 이미지는 소비하기 좋은 콘텐츠로 소모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품질의 먹을거리를 원하는 것도 어쩌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네, 그래서 우리도 품위 조절을 위해 나름 연구 중입니다. 저장 방식이나 시스템 등 여러 실험을 거쳐 데이터화 해서 최적의 방안을 찾고 있어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지만, 이젠 하늘을 예측할 수가 없으니까요. 어렵지만 해보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려운 것들은 결품을 내주세요(웃음). 그래야 모두가 어려운 것을 알 것 같아요. 힘든 부분이 있으면 어느 경로를 통해서든 잘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네, 저희도 꾸미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또 막상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잦아지면 솔직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겠지요."


서로가 있어서


만나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질문하는 형식의 일방적인 대화가 아닌, 반대로 생산자 또한 소비자에게 궁금한 점을 묻기도 했다. 무거운 대화가 이어질라치면 어느 한쪽이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경쾌한 리듬을 이어갔다. 연예인을 만나는 것보다 더 반갑고 기쁘다고도 했고, 지난밤에 늦게까지 잔일을 하느라고 피곤했지만 서울 간다는 것에 설레서 잠을 못 잤다고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보였다. 탄식과 웃음 사이에서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이 반짝반짝 빛났다. 생산자나 소비자의 연으로 만났지만, 밥상을 차리는 동료이자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였을까. 역시나 마지막엔 서로가 있어 힘이 난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부대끼는 것이 낯설어진 세상.

하지만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마주 앉아 눈을 보아야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표현하거나 말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을 알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이럴진대, 물리적으로 먼 생산자와 소비자는 어떨까.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길, 도시와 농촌의 간극을 메우는 나부터 생산자의 웃음 때문에 가려지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의 농산물 코너 위에 펼쳐진 사진 속에는 여전히 생산자가 국산의 힘을 외치며 활짝 웃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사진 속에서처럼 진정 그들이 웃을 수 있길 바라본다.





이날 참석한 생산자 중 한 분은 얼마 전까지 ㅎ생협 선배이자 동료였어요.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나오는 바람에 늘 응원한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그에게서 이런 답장이 왔습니다.

"고맙다. 다음엔 얼굴 마주하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오늘 밥상도 감사히


땅과 시름하는 이 세상 모든 농부님들 덕에

나는 오늘 저녁에도 꿀맛 밥상을 차렸습니다.

이 모든 게 당신 덕입니다.




이전 11화 부풀지 않아도 괜찮아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편견을 깨면 부풀어 오른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