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감상] 빈집, 김인숙 作

단편에 대한 단편

by 오로지오롯이


김인숙의 소설집 『물속의 입』은 작가의 최근 단편들을 모아놓은, 말 그대로 김인숙식 미스터리 호러 단편선이라 부를 만한 책이다. 「빈집」, 「자작나무 숲」,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호텔 캘리포니아」, 「섬」, 「그해 여름의 수기」 등 총 13편의 작품이 실려 있으며, 각 작품은 일상적 풍경 속에서 조금씩 삐걱거리는 삶의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불안, 그리고 인간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비밀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특히 「빈집」은 이 소설집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아내와 남편이라는 평범한 부부가 등장하고, 이야기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일상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아내는 남편의 삶을 ‘쓰레기를 이고 사는 것’으로 여기며, 그 무심하고 단조로운 평범함에 분노하고 경멸한다. 하지만 그 감정 밑바닥에는 묘한 기대와 호기심, 즉 남편에게도 어딘가 숨겨둔 비밀스러운 면모가 있기를 바라는 욕망이 숨어 있다. 이처럼 『물속의 입』은 독자로 하여금 당연하다고 믿었던 관계와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고, 평범함의 이면에서 발견되는 균열과 서늘함을 보여준다.



작품 스타일


김인숙의 문학은 흔히 일상의 균열을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녀는 평범한 부부, 평범한 직장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전면에 배치한다. 그러나 그 삶 속에는 묘하게 불편한 침묵과 균열이 숨어 있다. 독자는 처음에는 그저 무난해 보이는 풍경 속에서, 인물들의 시선이나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통해 조금씩 그 균열을 감지하게 된다.


김인숙의 인물들은 흔히 자기 안의 비밀을 의식한다. 그리고 그 비밀은 늘 다 드러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빈집」에서도 아내는 남편의 숨겨진 면모, 혹은 자신이 상상해낸 ‘비밀상자’를 갈망한다. 이런 비밀은 김인숙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장치다. 비밀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물의 삶을 버티게 하고, 때로는 그 비밀을 향한 상상이 인물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또한 그녀는 심리 묘사에 뛰어나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할 것 없는 부부의 대화, 침묵, 시선에서 등장인물의 내면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감정은 폭발하기보다는 스며들듯 천천히 드러나며, 종종 독자는 인물과 함께 조용히 생각에 잠기게 된다. 김인숙의 문장은 느릿하고 정적이지만, 그 안에서 긴장감이 서서히 조여 온다. 일상의 작은 장면 하나하나가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고, 공간 또한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빈집」의 화물칸, 영천 집 같은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 혹은 인물의 무의식이 투영된 장소다. 이 공간들은 비어 있기에 상상할 여지가 많고, 그 상상은 독자에게 여운을 남긴다. 김인숙의 소설은 이렇듯 평범함을 통해 비범한 심리의 깊이를 드러내고, 독자에게 사유할 공간을 건넨다.




수록작 中 [빈집] 감상


“평범” 속의 균열로 서사를 시작


이야기는 아주 일상적인 모습에서 출발한다. 결혼 27년 차 아내, 남편, 자식들. 학식이나 직업, 사회적 스펙 등에서도 과장되지 않은 남편, 무심하지만 아내가 마음속에서 기대했던 극적인 순간은 없는 사람.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아내는 늘 ‘범인’, ‘비밀’의 존재를 찾아 헤맨다. 아내 눈에 비치는 남편은 쓰레기를 끼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아무 무늬도 없이 평범하다.


이 평범함이야말로 이야기의 핵심이다. 평범하기에 보이지 않던 균열, 간극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고, 독자는 아내의 안과 밖, 그녀의 기대와 실망, 경멸과 연민 사이의 감정들이 어떤 지점에서 서로 엮이는지를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숨겨진 방, 비밀상자, 그리고 ‘빈집’의 상징


‘빈집’은 이 소설이 던지는 가장 강력한 상징 중 하나다. 비어 있으면서도 존재를 비춘다.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무엇이 있었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남편에게는 ‘영천 집’이라는 장소가 있고, 아내는 화물칸 같은 공간(빈 화물트럭)을 통해서 남편의 물건, 남편의 시간을 접한다. 그 공간들이 상징적으로, 남편의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의 경계선으로 작용한다.


아내는 남편이 무언가 숨기고 있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평범함 속에서도 남편이 갖는 작지만 중요한 흔적들을 인식하게 된다. 남편의 추한 모습, 낡은 옷, 배 나온 몸, 대머리 등 겉모습은 잊지 못할 증표처럼 남지만, 그 이면에는 힘, 생의 흔적, 고된 삶의 궤적이 있다.



경멸에서 연민으로


감정선의 변화가 소설에서 중요한 흐름이다. 아내가 남편을 경멸할 때, 그것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그녀의 실망감, 무력감,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축적된 감정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화물칸 안에서의 고독한 시간, 남편의 물건들을 보는 장면, 빈집으로 상징되는 비어 있는 장소들을 사유하는 순간) 아내의 인식이 바뀐다. “나도 남편을 경멸하지만 사랑하고 있다”는 깨달음. 단순히 누군가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결핍, 평범함과 비밀이 섞인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변화한다.



결말의 여운과 불완전함


결말은 혼란스럽다. 아내의 상상일 수도 있고, 실제 남편의 계획적 비밀일 수도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분명하지 않음을 남겨 둠으로써 독자의 사유를 유도한다.


특히 화물칸 안의 고백 장면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왜 하필 그 장소였는가, 왜 그 타이밍인가에 대한 동기나 정서적 연계가 조금 더 강조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불완전함이 오히려 상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실체 없이 떠다니는 감정, 완전히 닫히지 않은 비밀 같은 것.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남편의 웃음, 아내가 보는 남편의 모습이 결말에서 변화한다는 것. 웃음만이 전부였던 그는 단단히 자신만의 공간(또는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간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에 희열이나 긴장이 있다. 아내의 시선을 떠나 남편 자신의 목소리가 드러남으로써, 이야기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독자는 이제 아내뿐 아니라 남편을 재해석할 여지를 얻는다.



개선 가능성 및 나의 감동 지점


결말 부분의 장소와 내적 동기의 일부 연결이 좀 더 섬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치지 않는다. 아내가 왜 그 순간 화물칸 안에서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는지 그 심리적 계기, 감정 전환의 축적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공감이 강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준 여운은 크다. ‘아내의 상상’인지 ‘남편의 비밀’인지 불분명한 결말이 오히려 읽는 이로 하여금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자기 세계를 숨기고, 또 타인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다시 보이는가.


감동의 지점은 화물칸 안의 고독, 그리고 남편의 물건을 통해 아내가 겪는 연민의 순간이었다. 남편의 낡은 옷, 과거의 흔적들, 그것들을 다시 들여다볼 때 생기는 먹먹함. 그 부분이 특히 마음에 남는다.

keyword
이전 09화[소설 감상] 배우가 된 노인, 손홍규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