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값도 가지가지
형님은 한국에 있을 때도 미용실을 운영했었어요. 본인 말로 운이 좋아 필기 통과했고 손재주는 워낙 좋아 미용실은 원래 한국서도 문전성시였어요.
조카딸 결혼식은 초청도 안 했는데 그 결혼식에 굳이 굳이 갔다 온 분 우리 집에 한분 계십니다. 철가면 막무가내 이스방이요. 그때 막 제가 베체트 병 걸려 많이 아플 때였는데. 정말 미웠습니다. 어머님 병간호 남편이 전적으로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제 몫을 안 할 수 있나요? 제 몸 아픈 거 내색 없이 주말 빼고 일주일에 두 번씩 간병하시는 분 반찬까지 해서 차 없이 전철 타고 낮에 간병 다녔거든요. 제가 그땐 장롱 면허라. 어머님이 간암 말기로 투병하시던 때에 아버님 660만 원, 아주버니네 600만 원.
남은 병원비와 장례비는 모두 우리 집이
떠안았습니다. 사실 상관없었는데 그때 한국에 나와 상관있어지게 만들 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