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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 Nov 12. 2024

존중받는 사람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4화

미정은 삼랑진에서 삼랑진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미정의 집에는 자라나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앞뜰에는 가지와 오이가 자라고 그 옆으로 깻잎, 고사리 같은 것들도 옹기종기 구역이 나뉘어 심겨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집 뒤 뜰에는 작은 축사가 있어 소들이 가끔 울어대는 소리가 들리고 축사 뒤로는 감나무며, 대추나무며 몇 가지 나무들이 어우러져 미정의 집 뒷문을 책임지고 있다. 미정이 창화에게 말했던 그야말로 촌스러운 풍경이었고, 미정은 이제 이 풍경의 한편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라모 회사는 아예 접은기가?”

미정의 엄마가 마당에 있는 꽃에 물을 주며 미정에게 물었다.

“응. 그러니까 짐도 다 싸서 내려온 거지.”

“그라모 인자 뭐 할라고?”

“뭐… 그냥 소나 키우지 뭐.”

“하하… 이 가스나야. 소는 뭐 아무나 키우나? 그냥 고마 시집이나 가라.”

“엄마. 이제 그 얘기 안 하기로 했잖아. 진짜, 하지 마.”

미정은 엄마를 쏘아보며 따지듯이 말했다.

“그래. 알았다. 니사 혼자 살다 죽든 말든 니 알아서 해라.”

엄마는 시큰둥하게 꽃에 물을 주던 호스를 미정에게 떠넘기듯 쥐여주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혼. 이것이 미정에게는 아니, 미정의 집에서는 언제나 문제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사실 미정은 20대 때부터 비혼주의자였다. 결혼이라는 걸 굳이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결혼해서 사는 걸 보면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20대까지만 해도 이런 자신의 신념에 의한 비혼주의였다. 하지만 30대가 되면서는 반항적인 비혼주의에 더 가까워졌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이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사회적 시선 때문에 라는 이유들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하면서 이런 것들에 굴복하게 되는 결혼은 더더욱 하기 싫어진 것이다.     


“야, 이 정 없는‘미정’한 기지배야. 내가 봤을 때 네 이름의‘미’는‘아닐 미’인 거지. 정이 없어. 아주 눈곱만큼도. 집에 내려갔으면‘잘 도착했다.’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현주는 미정이 전화를 받자마자 가득했던 불만을 탈탈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애냐… 집에 잘 왔다고 연락하게.”

“누가 애라서 그러냐? 다 큰 어른이 그렇게 휑하고 집에 가니까 더 걱정인 거지. 아, 됐고, 부모님은 잘 계셔? 내 안부도 좀 전해 드려줘.”

“안 그래도 나 도착하자마자 너 잘 사냐고 물으시더라. 그래서 너무 잘 살아서 탈이라고 얘기했지.”

“너무 잘 살긴… 휴… 나도 요즘 같아서는 그냥 다 정리하고 내려가고 싶어.”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다. 너도 남편도 좋은 직장 다녀, 서울에 집도 있어, 뭐가 아쉬워서 이 촌구석에 내려오고 싶다 그래?”

“야야, 내 속도 모르면 가만있어.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집이 서울에 있냐? 경기도지.”

“서울이나 경기도나.”

“얘가 큰일 날 소리 하네. 집값이 하늘과 땅 차이거든? 암튼, 너 잘 갔으면 됐어. 나도 어느 날 갑자기 확 내려갈지도 모르니까 터 잘 닦아 놔.”

미정은 현주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어딘지 모르게 좀 찜찜했다. 평소에 삼랑진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 현주이기에 정말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항상 서울이 살기 편하다, 다신 촌구석으로 안 간다고 버릇처럼 말하던 현주에게서 삼랑진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다니. 미정은 현주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미정의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를 도와 아침상을 차리고 밥을 먹고, 여기저기서 자라나는 채소들을 가꾸고, 아빠가 일이 있으신 저녁에는 아빠 대신 소들에게 밥을 주고, 또 저녁상을 차리고. 그러다 심심하면 책을 읽고, 엄마와 얘기하고, 그러다 삐치기도 하고. 서울에서는 보이지 않던 틈 많은 생활을 하다 보니 때로는 심심하기도 했다.

“미정아, 나중에 차 가지고 삼랑진역에 아부지 마중 좀 나가그라.”

“왜? 아빠 차 안 가져갔어?”

“오야. 오늘 대구에서 술 자시고 온다고 차 안 가져갔다.”

미정은 아빠가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자 차를 몰고 삼랑진역으로 향했다. 이제 점점 해가 길어지고 있어 오랜만에 삼랑진 풍경을 바라보며 차를 천천히 몰았다.

“역시 이 동네는 다른 건 몰라도 주차는 편해.”

차가 없어 주차위반 단속 카메라도 없고, 그래서 길가에 아무 데나 주차해도 되는 이 편리함은 서울에서는 쉽사리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편리함이 있다라고 하기보다는 각박함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어? 아빠! 여기!”

“하이고… 니가 여까정 나왔나?”

미정의 아빠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삼랑진역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엄마는 뭐 한다고 안 나오고 니가 나왔노?”

“몰라. 엄마는 집에 있어도 항상 바쁘잖아. 뭐, 나도 바람도 쐴 겸 좋지. 기차 타고 오는 데 안 불편했어?”

“어데, 요 삼랑진역이 아직까정 있으니 고마 편하지. 대구에서 삼랑진은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 열차가 있다이가.”

“그렇게 많아? 난 몰랐네.”

“삼랑진역이 안 없어져야 할낀데 동네 사람들 다 걱정이다, 걱정. 그래도 아직까정 삼랑진역이 이래 있어주니 을메나 고맙노? 이거 없어지면 밀양역에서 와야 할 거 아니가.”

미정은 갑자기 창화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러게… 삼랑진역 덕에 우리 동네 사람들 다 존중받고 있었네…”

“뭐라꼬? 뭔 소리고?”

“아냐, 그런 게 있어.”

미정의 손은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기억은 그때의 대화가 묻어있는 기차표를 잡은 채 다시 기차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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