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6화
집에 온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미정은 부모님을 따라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지만, 점점 원래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책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이러다 보면 새벽 서너 시는 기본이었다. 미정은 그동안 회사에 묶여, 사람에 치여 보지 못했던 책을 실컷 읽었고 밀렸던 드라마와 영화도 정주행하고 있었다.
“하이고…. 그래 우째 내는 니가 변했나 했다. 역시 사람은 안 변한다 그쟈?”
“엄마, 사람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거 몰라?”
“그라모 내 속 터져 죽는 건 괜찮고?”
“엄마, 나도 오랜만에 이런 생활 좀 즐기자고.”
“아… 그르세요? 언제까정 즐기실 건데예?”
“몰라. 내가 만족할 때까지.”
“참 내… 기가 찬다. 기가 차. 적어도 좀 일찍은 일어나라 가스나야! 니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묵는다는 말도 모리나?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 일찍 일어난다 안 카나?”
“헐… 그래서? 엄마랑 아빠는 맨날 새벽 5시에 일어나는데 무슨 성공을 그렇게 하셨어요?”
미정은 자신의 고개를 얄밉게 까딱거리며 엄마 얼굴 쪽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이노무 가스나가! 확! 내나 느그 아빠나 와 성공을 안 해? 니랑 상욱이랑 낳아서 잘 키워줬제, 농사지어가 이래 집도 지었제, 그라고 니는 아직까정 철딱서니가 없는기라. 내나 아빠나 느그한테 손 벌릴 일이 없다. 니는 이게 얼마나 복 받은 건 줄 알기나 하나?”
“오… 이건 인정. 우리 엄마 요즘 화술 학원 다녀? 말발이 예전보다 더 좋아졌어?”
“이노무 가스나가… 오늘 또 한 대 맞을라고 깐족깐족 거리쌌네? 아무튼, 이 가스나야, 무조건 일찍 일찍 일나라. 알겠나?
“엄마, 벌레도 야행성 벌레가 있어. 그래서 난 늦게 일어나서 늦게 일어나는 벌레 잡아먹을게. 일찍 일어나야 벌레는 잡는다, 성공한다, 이런 거 이제 다 옛말이야.”
미정은 오래전부터‘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미정이라고 새벽형 인간, 기적의 아침 같은 것들을 따라 해 본 적이 없을까. 미정도 서울에 살던 한때에는 일찍 일어나야 성공한다는 말에 심취해 꽤 오랜 시간 그런 생활을 해 보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도 하고 영어 학원도 가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애쓰고 산 시간들. 하지만 이런 생활을 오래 한다고 미정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운동을 해서 체력이 좋아졌고 영어를 공부해서 남들 다 가지고 있다는 토익 점수도 800점까지 땄지만 그게 다였다. 그렇다고 미정이 회사에서 월급을 더 받게 되거나 승진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 노력에 대해 알아주는 사람 또한 없었다.
이런 현실을 자각한 후로 미정은 결코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에 빠르면 한 시간 전, 적어도 삼십 분 전에 하던 출근이 10분 전, 5분 전 아니면 정각으로 바뀌었고 야근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미정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회사 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 미정은 더 확신했다. 미정이 일찍 출근하든, 늦게 출근하든, 야근을 하든, 칼퇴근을 하든,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때부터 미정은 미정의 습관을 되감기 해 자신이 살고 싶은 패턴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미정의 생각이 맞는지도 모른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서가 아니라 일찍부터 길이 달랐다. 어차피 길이 달랐던 사람에게 다짜고짜 일찍 일어나면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는 말은 미정에겐 이미 희망 고문이 되어 버렸고, 그저 일찍 일어나는 성공한 사람들의 시간표에 맞춰 그들을 돕는 부속품이 되어 주라며, 다른 사람들까지 일찍 일어나는 걸 부추기는 것만 같아 반항심이 더 커져 버렸다.
“일찍 일어난다고 뱁새가 황새 되나… 그치?”
미정은 축사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지푸라기를 오물거리고 있는 작은 송아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