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사춘기 나는 갱년기
" 우와~ 이게 다 뭐야?"
다른 친구들에 비해 발육이 늦었던 나는 중3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초경을 했습니다.
반 아이들이 다 생리를 시작한데 비해 많이 늦었던 나에게 친구 여러명이 작정하여 생리대 한박스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뜯지 않은 새 포장의 생리대부터 가방 속에 들어있던 상비용 생리대까지 내평생 그렇게 다양한 생리대를 한꺼번에 받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지금도 사실 생리나 생리대에 대해서 소소한 민망함이나 부끄러움은 남아있는걸 감안한다면 그 당시 친구들의 나를 위한 이벤트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친구들 덕에 한동안은 생리대 걱정은 없었네요.
" 니들은 사춘기~~~ 나는 갱년기~~~~~~"
직업 상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특히, 중고등학생들을 만날 때면 요즘 흥얼거리는 노래 속 랩처럼 아이들에게 "니들은 사춘기, 선생님은 갱년기" 라고 고백부터 합니다. '갱년기' 뭐 몰랐던 사실도 아니고 나만 비껴 갈 거라고 생각도 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입으로 내뱉고 나니 뭔가 허전한게 좀 그렇기도 하고 내 허한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떠들어대는 사춘기 아이들이 몹시나 부럽네요.
그렇게 딱딱 28일에 맞춰서 나오던 생리 주기도 몇해 전부터는 늘어졌다 줄었다 고무줄 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희한하게도 여행 날짜만 잡아 놓으면 툭 터져 나오는 녀석이 그때는 참 얄밉기도 했었는데, 줄었다 늘었다 하는 고무줄 주기라도 지금에선 하얀 생리대를 붉게 적신 녀석이 어찌나 반가운지 일부러라도 애잔한 눈길을 주곤합니다.
급기야는 언제 빠이빠이 할 지 모르는 녀석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에 생리대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휴대폰 속 사진을 보던 큰딸이 생리대 사진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 엄마 이게 뭐야~!" 하고 변태 엄마를 보 듯 소리를 질렀지만 사진 넘어 달랑거리고 있는 엄마 속마음을 딸아이는 지금은 절대로 모를겁니다.
인사동에서 열렸던 생리대 페스티벌과는 다르게 생리대를 바라보는 시선,,,,
갱년기가 되어버린, 갱년기를 맞는, 갱년기를 마주하는, 갱년기에 접어드는, 갱년기를 맞이하는 다 비슷한 말인 듯하나 다 조금 조금씩 다른 느낌입니다. 그러나 결국엔 갱년기네요.하하하
며칠 전, 고무줄 주기인 엄마와 두 딸들을 위해 생리대 한 박스를 주문했습니다. 오래 전 친구들에게 받았던 생리대 박스와는 다르고 그 내용물도 훨씬 고급져졌지만, 잠시 추억을 더듬기엔 충분하여 푹 젖어보았네요. 그 시절이 어느덧 저만큼인데 나는 벌써 이만큼 와있네요.
"힘내라 나의 갱년기"
풍부했던 머리칼도, 튼튼했던 관절도, 반짝였던 시력마저도 쓸데없이 우리의 갱년기에 동참하지만, 그럼에도 즐겨봐야겠죠. 주어진 조건은 어차피 똑같을테니까요.
비겁하게 낙심하거나 치사하게 우울해지지 않기로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 주기가 돌아오면 더 반가워해줘야 겠습니다. 떠나고 난 뒤 아쉬워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