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신에게 자랑스러운 아이였나요

[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

by 삼남매

어린 시절 나의 책상 첫 번째 서랍에는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두는 상자가 있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돈을 보며, 엄마의 생일 선물을 어떤 것으로 살지를 고민할 때가 제일 행복했었다.


돈을 가장 많이 모았던 해 엄마에게 목걸이를 사드렸다. 가게 사장님께서 착한 딸이라며 나를 칭찬했을 때 엄마는 뿌듯해하셨다. 평소엔 엄마의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세상 불효녀가 따로 없었는데, 엄마의 생일 때만큼은 효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오카방고 델타를 보기 위해 가게 된 보츠와나. 나에게 보츠와나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 꼭 가고 싶은 나라는 아니었지만,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등재,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 삼각주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가진 오카방고 델타를 안 가자니 나중에 아쉬울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특별한 수식어가 붙으면 꼭 가야 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이 든다. 가끔은 그 명성에 비해 감동이 적을 때가 있다. 실망하며 괜히 왔다는 후회를 하고, 수식어에 현혹되지 말자라고 다짐하지만 결국 또, 수식어에 흔들려 가게 된다.

오카방고 델타를 감상하기 위해 현지에서 투어를 신청했다. 오카방고 강에서 보츠와나의 전통 배인 모코로를 타고 유유자적 강의 이곳저곳을 떠 다닌다.


물속에서 눈만 빼꼼히 내놓은 하마를 보기도 하고, 강 위에 떠있는 이름 모를 꽃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따사로운 햇살에 스르륵 졸고 나니 처음 배를 탔던 곳으로 돌아왔다.


나에게는 명성에 비해 너무 볼 것 없는 소박한 곳이었지만, 둘째에게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이 곳이 그 어떤 곳 보다도 좋았다고 한다. 같은 오카방고 델타인데, 누군가에게는 명성에 걸맞은 장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실망스러운 장소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좋은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고 할 때가 가장 난감하다. 나는 좋았지만 상대방도 좋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에,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이 사람마다 다르기에, 완벽하게 좋은 곳이라고 추천할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원래 투어 일정 대로라면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특별하게 가이드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투어 전 날, 가이드에게 보츠와나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가게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자신의 어머니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의 어머니 집으로 가는 길에 그에게 투어비와 저녁 식사비를 모두 건넸다. 돈을 세던 그가 저녁 식사비는 자신의 어머니께 우리가 직접 줬으면 좋겠다며 돈을 돌려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번거롭게 이미 받은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를 만나 돈을 드린 순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환한 미소를 띠며 아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아들을 향한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어린 시절 금은방에서의 나의 엄마가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며 어깨가 한껏 올라간 나처럼 그의 어깨도 한 껏 솟았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테이블 없이 마당에 의자 네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에 당혹스러웠다. 의자를 더 내오는 것인지, 테이블을 어디서 가지고 와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서성이고 있을 때, 가이드가 다가와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우리 맞은편으로 돗자리를 펼치던 그의 어머니가 나와 둘째를 향해 손짓을 하자 옆에 있던 가이드가 우리에게 설명을 한다. 사실 남자들은 의자에 앉고 여자들은 바닥에 앉는다고. 하지만 너희는 손님이니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의 말씀이 그 들의 문화인 듯하여 나와 둘째는 바닥으로 내려갔다.


저녁식사는 매우 소박했다. 우리에게 보여준 생선으로 만든 스튜와 전통음식 세 가지는 우리 삼남매와 가이드 부부와 자녀,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먹기에는 양이 적어 보였다. 음식이 더 준비되어있는 건지 아닌지 물어볼 수 도 없기에 조금씩만 개인 접시에 담았다.


그들처럼 한 손으로 접시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음식을 뭉쳐 입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먹는 우리의 모습이 신기한지 자꾸 웃으며 쳐다본다. 집 안에서 그의 여동생이 작은 화로를 가지고 나와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구워진 고기 한 점을 받고 있을 때 그의 형이 왔다. 인사를 나누고 그의 형도 우리처럼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그렇게 식사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 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처음엔 형의 여자 친구와 그녀의 아이가, 다음엔 그의 친구들이, 마지막엔 이웃에 사는 어머니의 친구들이, 마당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리곤 남아 있는 음식들을 서로 나눠 먹는다. 차려진 음식 외에는 더 이상 추가되는 음식은 없었다. 우리가 느끼기엔 턱 없이 모자란 양인데 마치 집안에 큰 경사가 생겨 잔치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웃으면서 즐긴다.


우리 삼남매가 궁금한 듯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질문을 한다. 그렇게 파티가 무르익어 갈 때쯤 나의 옆으로 그의 어머니가 다가와 또 아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가 얼마나 장한 아들인지, 그 아들이 집안에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내일이면 아마도 그녀는 또 다른 이웃들에게 아들을 자랑할 것이다. 어제 나의 아들 손님을 데리고 와 파티를 했다며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아들의 위대함을 그렇게 설명하고 또 설명했을 것이다.



동생들과 숙소로 돌아와 햄버거와 맥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을 바라보던 그의 어머니의 눈빛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리곤 우리도 엄마에게 자랑스러웠던 적이 있었는지, 삼남매 중 누가 제일 자랑스러웠을지 등 의미 없는 경쟁을 하며 웃고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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