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온 골목이 재즈바로 변한듯 거리엔 모든 사람들이 기분좋게 취하고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며
곡의 첫 번째 코러스가 끝날 즈음 카페에 도착한다.
이곳엔 말 많고 잔재주가 많은 사장님이 계신다.
좁은 카페지만 저녁에는 위스키도 팔고 다같이 떠들다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는 그런곳이다.
카페 사장님은 내가 말을 트고 얘기하며 대화를 나누던 유일한 사람이였다.
젊은 사장님이라 그럴까 대화가 잘 통했고
내가 이야기를 듣는걸 좋아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끈질기게 이야기를 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불편했다가도 내게는 너무 안락한 곳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어찌 또 오늘도 곡 작업을 하고 연습하고 곡 쓰다가 머리 식힐 겸 사보 할 겸 나왔다고 내가 말 하니
나한테 카페 사장이 격하고도 차분하게 말했다.
"역시.. 천재들은 고독하고.. 그 일에 너무 진심이자 그게 인생인 것 같기도.. 아니! 음악이 그의 인생 그 자체 같아! 크으..!" 내게 엄지척을 올려주자
나도 웃으며 엄지를 치켜올려 받아주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로직으로 마스터링 작업을 끝내고 솔로 부분 7마디째 음이 씹히는 부분 체크도 하고 작곡한 곡을
오선지에 음표와 코드를 적는다. 그 곡의 이름은 -Heavy rain- 이였다.
오선지에 사보를 하며 음을 흥얼거리며 음표를 적던 나는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강력한 태양의 빛이 문의 손잡이에 굴절이 되며 나를 비추어
나는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나 싶더니 나의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카페의 자리가 좁은 건 어쩔 수 없으나
음표를 적으며 흥얼 거리기엔 살짝 민망한 거리인 만큼
그녀는 나의 집중력을 흐트려놓았다.
1마디의 악보를 그리려면 같은 음을 두어번은 들어야 겨우 사보 할수있을 만큼 말이다.
결국, 말보로 한대 태우며 바람을 쐬어본다.
다시, 본업 시작! 그러자마자 비참하게 말이다.
나도 모르게 휘파람으로 음을 내어버린 것이다.
너무 신경이 쓰인 나머지 눈치를 보려 고개를 살짝 들자마자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듯 내게 눈인사를 하였다.
나는, 소위 말해 쪽팔려서 차라리 죽고 싶었다.
보고 싶어서 본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시선에 들어왔을 뿐인데
그녀는 책을 읽고선 노트에 문장을 적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러다 카페 사장님이 뜬금없이
"와우! 두 분들 지금 모습이 똑같은거 알아요?! 한 손으로는 적고 한 손으로는 보고 있는데 고개를 움직이는 타이밍까지 똑같아요 아! 대박 두 분 다 자주 오시는데 마주치는 일이 없었네~! 에헤이 여기 이 분은 천재 음악가 슈퍼 락스타 호연!!입니다! 이쪽은.."
그녀가 사장님의 말을 끊고선 말했다.
"아 저는 제가 할게요! 저는 선미입니다! 여기 근처에서 일하고 나름의 취미로 이곳에 자주 와요 반가워요 호연 씨!"
나는 부끄러운 느낌이랄까 골방에 썩어만 살고 음악과만 밤을 같이해서일까 여자에게는 참으로 서툴었다. "아, 네. 선미씨 반가워요! 성은 어떻게 되세요?"라고 내가 묻자
"아아 이선미 에요 그렇게 부르는게 편하시면 그렇게 불러도 좋아요."
"이선미.. 아니에요! 선미씨가 더 입에 붙으니 선미씨라 부를게요!"
"뭐야 얼굴 엄청 빨개졌어!"그녀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카페 사장이 일러 받치길
"호연씨는 부끄럼 많이 타서 막 그렇게 적극적이면 심장이 팡!! 하고 터져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니 천천히 알아가봐요! 저는 그럼 이만-!"
약간의 정적이 흐르자 내가 먼저
"아 저는 지금 할 일이 있어서요.. 이것 좀.."
"차근차근하세요! 저도 다시 집중해 봐야겠어요"
서로 살짝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서 그럴까.
이런 상황이 참 낯설고 부끄럽다.
보이지 않는 나 스스로를 가둔 울타리가 부숴진 기분이다.
낯설지 않은 기분.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다.
부숴진 울타리--
3.
우리는 같은 날, 서로가 볼일을 마치고서 그 자리에서 가볍게 위스키를 한잔 했다.
서로가 짧게 자기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남을 약속하고는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전 내 안의 무언가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모든 것들이 새롭게만 느껴졌다. 내 발 밑에는
'일방통행'이라고 하얀 페인트가 서쪽으로 향하며 쓰여있는 그 글귀가 떨어지는 태양이 머리가 되어 글귀는 몸의 형태로 변하더니
선미의 모습을 하고, 이어폰을 통해 귀로 들어오는 백예린의 노래가 음표로 바뀌었다.
그 음표들이 춤을 추며 하늘에 엉키듯 꼬인
전봇대의 전선들이 오선지를 만들고 그 위에
온갖 음표들이 달라붙어 스코어 악보가 그려졌다.
내 마음 작은 울림들이 벽에 부딪히며 마하1의 속도로 거대한 울림이 되어 종을 치듯이 가슴 어딘가의 떨림이 울렸다.
심장의 소리이다 이것이 설레임이고 사랑이구나
아마 그럴테지.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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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이게 뭘까. 어디선가 느껴본 감정이다.
번화한 곳으로 나는 걸었다.
이 많고도 많은 사람들 중 그저 지나쳤을 수 있을 그 사람들 중 그중에서도 하필 그 작은 카페 그 몇 안 되는 자리 중 내 앞에, 하물며 음악과 그림을 좋아한다. 검고 하얗고 빨간색을 좋아하며. 감수성이 풍부하며 야망이 있는 사람이고 동시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홀릴듯한 외모. 이것은 나뿐만의 생각은 아닐 테지. 곱게 생긴 외모는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해도 되려나 라는 생각도 든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는 아주 긴 하루들을 보내고
애석하게도 우리가 만나, 길고도 굵은 이야기들로 장식하는 일요일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다시 한번 시간이 또 지나고 지나며
가끔은 화요일, 금요일과 토요일에도 만났다.
만나온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것들이 참 많아졌다.
그럼에도 아직 알고싶은게 참 많았다.
매번 새로웠고 우린 정반대의 성향이지만 닮은 구석도 많았다.
콩깍지일까. 나는 선미를 사랑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선미도 나를 사랑했다.
우리는 사랑을 했다.
나는 더 없이 행복한 스무몇살 언저리였다.
아차, 그렇게 생각하니 뜬금없게도 그녀는
참 고양이처럼 곱게 생겼다는 생각이였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고양이처럼 다가와 내게 관심을 끌더니,
고양이처럼 순식간에 나에게서 마음을 훔쳤다.
이렇게 비유를 하는게 맞을까 싶지만
여하튼, 나의 이런 뜬금없는 생각과 번뜩이듯
말하는 헛소리들을 선미는 매번 배를잡고 웃으며
좋아했다.
이런 나의 허술하고 매력없는 말투에 좋아해줘서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사랑 한다는 감정에
부족한 지식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중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무엇이 되었든 이 감정은 사랑이 맞다 서투르지만
분명하게 사랑이다.
아, 나는 이런 마음을 책과 인터넷과 음악에서 보고, 배웠다 말하자
선미가 독학으로 배운것 치고는 꽤나 훌륭한 사랑의 방식이라며
어쩜 그렇게 바리에이션을 잘해서 나한테 써먹냐며
동네 어르신들도 여자라면 전부 홀라당 넘어올것이라며 웃었다.
생각할수록, 더 가까워질수록 선미는 멋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녀와 정반대의 사람 인데.
느리며, 무겁고 뜬금도 없는데 재미도 없고 비실거리는 그런 사람.
생각은 많은데 생각만 하고 하고싶은 일 마저도
그냥 나 혼자 즐기며, 자랑할 곳도 없어 그저 혼자서 만족하고.
그렇게 살았다. 나는 어려서 무지했고 바로 잡아줄 누구를 필요로 했지만 굳이 찾지 않았었다.
나의 일은 곧이곧대로 내가 고쳐댔으니 말이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다 여전히 패션은 여름을 고수했지만 몇몇의 사람들은 저녁에 겉옷을 입을 때였다.
아니, 겉옷을 항상 입고있었나. 하얀 색.
눈이 내린 날. 한 겨울. 한 해가 지났나. 이게 뭐지?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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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 해가 지났고 추위가 잦아들었을 무렵이다.
3월의 봄, 어느 일요일은 내게 긴히 할 말이 있다며 교대역 근처 지하의 '브롱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왜일까. 나는 무척이나 떨고있다. 한 해가 지난게 맞을까 이것이 몇년이 지났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스무살의 청춘으로부터 시작된 기억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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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간의 긴장을 하고서는 향한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나는 지은 죄가 없는데도 심판을 받는 기분이였다. 이 어두운 골목이 밝은 가로등으로 내 발이 향할수록 나는 으레 심장의 박동을 느낄수 있었다. 그렇게 가슴으로부터 머리와 손끝으로 전해지는 혈액의 순환이 느껴졌다.
브롱스 앞에 섰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검붉은 도화지에 흰 페인트가 엎질러진듯 말이다.
애당초 도화지는 왜 검고 붉은지
어째서 흰색의 페인트인지 그것이 왜 거기 있었는지.
..
"나 부모님이 이제 서울살이 그만하고 내려오래
사정이 있어서 독일로 이민 갈거래"
선미의 표정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떤 기분일것같아?"
슬프고 아쉽고 허망하고 허탈하고 공허하고 외롭고 고독하며 잔인하고 아주 살인적인 기분이라는 말보다 더 강렬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나는 물었다. 허나 그 물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대답도 들었다. 똑같이 그 답을 기억하지 못한다.
깊은 동굴에서 벽을 천번이 넘게 부딪혀 돌아온 메아리처럼 들렸다. 모든것이 그렇게 들렸다. 선미의 모습마저 뒤틀리듯 엉켜 보인다.
눈에 보이는게 없어지듯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점차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 생각을 잡아야 해'
그녀가 떠난다. 떠난다. 떠난다. 떠난다.
나는 하얀 백지의 도화지 위에 서있다.
그 위로 비가 쏟아지듯 내렸다. 나, 우는것인가?
선미는 나를 끌어안고 등을 쓸어밀어댔다.
나 역시 그랬다.
다시, 나는 슬픈 비가 내리는 도화지 위에 서있다.
떨어지는 태양을 등지고 서있다. 안개를 품은 태양의 빛이 나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걸까."
"그때는 언제야?"
"그때가 언제지?"
기억은 여기서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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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어딘가 복잡한 사람이다. 아니, 복잡해졌다.
이민이라더니 독일이라더니 내 등을 쓸어주더니
두 주가 지나고 너는 뷔르뎀베르크의 어느 골목에서
마치 자신의 죽음을 알아달라는듯이
자동차의 시동을 켜둔채 자살했다.
나는 멍하니 서초동의 뚫려있는 골목이라는 골목은 전부 돌았다.
내 속에는 모든것이 무너지고 잠겼다.
행복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쾌락과 고통, 고독과 연민.
그렇게 한달이 지났나. 무겁고 차가운 시간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틀만이 지났다.
생각이 너무 많아진 탓에 시간 이라는 방에 갇힌것만 같다.
왜일까. 나때문에? 가정사? 내가 그리워서? 나는 어쩌고. 너는 왜? 자동차? 번개탄? 퍽이나.
무너진 모든것들을 바로잡기 힘들었다.
하나의 기억만이라도 잡고싶었다.
잡아야 하는데. 잡아야 하는데. 잡아야 하는데.
기억이 끊겼다. 여기. 이곳. 매듭을 짓고.
나는 도화지 위에 서있다.
이 길목은 해가 떨어져 어두우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붉고 희게 빛이 나는 랜턴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 두 손은 어디론가의 외출을 위한 넥타이를 매며
나는 랜턴을 발로 걷어차 깨뜨렸다.
그러자 하얀 도화지 위로 내가 떨어져 폭사하여 붉게 도화지를 물들이고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