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생각이었다. 크리스마스, 한명의 시인으로서. 아름다운 유서를 남겨보고자 했다. 이브, 거리는 재즈와 네온사인, 사랑으로 가득하다. 흐릿했던 하늘도 눈이 부시게 별이 반짝인다. 고요했던 거리도 하늘의 별 처럼 반짝인다. 12월, 그것은 쏟아지는 로맨스. 겨울이다. 나리는 진눈깨비, 온 하늘이 별을 쏟아내고 하나, 둘 셀 수 없이 떨어지는 눈이 별인듯 아름답다. 누구는 그 유성우를 보며 소원을 빌고 누구는 그 별들속에서 춤을 추고 누구는 그 눈을 맞으며 인연을 맺고 누구는 그 아름다움에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다. 눈이 내리듯 떨어지는 유성이다. 들리는 음악에 온 세상 사람들이 흥에 겨워 한다. 거리는 하얗고 붉으며 재즈와 스윙으로 가득하다. 바닥은 보기좋게 하얗게 변했고 내가 뱉는 입김 섞인 담배 연기의 한숨도 하얗게 뭉게진다. 오늘이 그렇게 좋은 날인가. 생각함에, 쓸쓸하다. 실내가 눅눅한 포장마차 안에서 마지막 잔을 들이켰다. 계산을 하고 비닐막을 걷으며 나오니 눈에 젖어 하얗고 거대한 트리와 그 밑에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한 마디가 써있었다. 그런 나는 술에 적당히 취한채 교회로 걸어본다.
2. (독백)
자정- 교회는 조용하다. 사실은 누군가 있어 조용하지 못한것이 더욱이 소름이 끼치며 이상한 경우 일지도 모른다. 나는 맨 앞 줄에 앉아서 볼펜과 노트와 성경을 꺼내고 중앙에 걸린 십자가를 몇분을 바라보기만 하다 두 손을 살포시 모아서 이마에 손을 맞대고 두 눈을 가볍게 감으며 공상과 망상을 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이러한 행동을 '기도' 라고 한다. -기도- 고해를 털어도 용서받지 못한자가 제 발로 신성한곳에 찾아왔습니다.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견뎌야 익숙해 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언제까지 눈물을 흘려야 웃을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미움을 받아야 사랑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음해하지 마라는 말을 저는 이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죄 지은 자를 용서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라는 말을 저는 이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그 놈의 아멘 이것은 누구를 위한 기도 입니까. 저는 결국 뼈와 살이 썩어 저의 말들을 시기와 질투로 치부합니다. 그리하여 쫓는 자가 없을지라도 저는 늘 도망을 칩니다. 사자는 담대하다 못할지언정 그것을 이유로 의인은 못 될 노릇인가. 생각하니, 퍽 슬퍼집니다. 늘 그렇듯이 이 기도는 주님께 닿기도 전에 심의에 걸려 파기 되겠죠 저는 더 이상 올릴 말이 없습니다. 그럼. 아멘- 여기 까지입니다.
3. (Carpe diem) -허름한 내 인생에 이변따위는 없었다. 유서 에는 각종 아름다운 말들로 살아라! 라고 외치듯 글을 휘갈겨 써 놓았지만. 이 상실의 기분은 당최 살아갈 힘을 주지 않는다. 살고자 했더니 이것은 마치 천천히 죽어가는 느낌이다. 다리에는 힘이 풀리고 잠에선 깨어나기 힘들다. 술과 담배를 서슴치 않고 들이키고 태우니 더욱이 나를 갉아먹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매일 밤이면 기억이 없다. 눈을뜨니 대부분 집이긴 했지만 이때라면 기억도 없이 나를 보내줄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만 나는 분명 겁쟁이라 그러지 못할것이다. 이 세상에 던져진 겁쟁이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없다. 무엇을 잃어 버렸는데 나는 찾을수가 없는 모습이다. 허공에 손짓을 한다. 살기 싫다는 말에 온갖 살을 붙혀 조잡한 말을 만들어낸다. 삶은 지루하고 피곤하다 동시에 충동적이고 고통스럽다 또 다시 잠이오고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삶은 우울하다. 모든 사람은 똑같이 우울하다. 사소한것에도 행복을 찾지 못하면 나는 살아 갈 이유가 없다. 선을 긋고 타자기를 두드리는게 행복하지가 않다. 주류코너를 구경해도 행복하지가 않다. 바텐더가 술을 만들어줘도 행복하지가 않다. 아는 맛에 가끔 새로운 맛에 취하는게 웃기다. 그림을 보아도 뜨거운 무언가를 느낄수가 없다. 전시회의 그림을 보면 올라오는 감정이 없다. 나는 얼굴이 못났으니 다른 재주라도 있어야해 나는 몸이 비실대니 마음만큼은 가득 채워야해 나는 행실이 바르지 못하니 아무것도 하면 안돼. 내가 나를 판단하고 벌을 준다. 알면서도, 그렇게 스스로에게 고백을 한다. 이것은 극형이다. 얼마나 음험한 형벌인가. 그러고는 꽃집에 들렸다. 꽃을 샀다. 줄 사람이 없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었다. 배시시 웃더니 감사의 말을 전하길 나는 행복했다. 그러다 다시 우울해지길 나는. 아무래도 차라리 죽는편이 어울린다.
4. (사요나라-さようなら-)
꿈보다도 더 꿈결같은 로맨스를 꿈꾼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학교를 갔다. 장례희망 칸을 비웠다. 혼이 났다. 대통령이라 적었다. 꿈을 꾼다. 공부를 한다. 대학을 간다. 군대를 갔다. 대학을 졸업했다. 직장을 얻었다. 돈을 모았다. 사랑도 했다. 아이가 생겼다. 결혼을 했다. 둘째가 생겼다. 부도가 났다. 해고를 당했다. 모은 돈으로 치킨집을 열었다. 손님이 없다. 폐업을 한다. 일용직으로 일을 한다. 어선을 탄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 첫째가 임신을 했다. 아들도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첫째가 자살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꿈보다도 더 꿈같은 삶을 산 남자이다. 스무살 대학 다니던 시절 공강 시간 쪽잠을 자다 꾼 꿈이라. 생각 하고싶었다. 이곳에 남자가 있다. 방파제와 파도가 있다. 이제. 이곳엔 아무도 없다.
5. (독-학)
나 말이야, 하고싶은게 생겼어 글을 쓰고싶어 사랑 이야기를 쓰고싶어. 그 글로 만화도 만들고싶어 애니메이션도 영화도. 나는 그렇게 세계적인 작가이자 감독이되는거야 어때? 나는 상상만해도 벅차고 흥분되고 기분이 좋아 수많은 대중들에게 평가받는것이 좋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내가 이런 사람 이란것을 알리는것도 좋아 그런것이 너무좋단말이지! 어째서 사랑 이야기를 쓰고싶냐면 나는 사랑을 해보고싶거든 나는 그림을 사랑해 글도 사랑해 창작의 영역에 포함되는 모든것들을 사랑해 두 사람의 사랑, 그 사랑도 창작이잖아 아무 관계 없는 두 사람이 만나서 책에다 이야기를 쓰는거잖아 맞지 않는 자물쇠와 열쇠 따위가 감히 그 문을 열기위해 노력하잖아 그런것들이 멋있어. 음과 양이 만나면 나는, 어디까지 창작의 기운을 뻗을수 있을지 감이 오질 않아 그런 내가 기대되니까. 그래서 사랑이 하고싶은거야 그런데, 그런데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 나는 그런 사랑에 관심이 없어. 근데 관심을 갖고싶어 어떻게 하는건지는 모르겠어서 글을 한글자도 쓰지 못하고있어. 매일 글을 한줄 쓰고 찢고 버리는데에만 몰두하고있어 내게, 내게 사랑을 알려줘 이 겁쟁이에게, 나에게 사랑을 알려줘.! .. 사랑. 그것은 내게 너무 어려운것이였다. 복잡하고 난해하다. 가령 생각만큼 단순하지도 않아서 상처만 남는다. 어쩌면 내가 주었을지도 모르는 사랑. 그것 마저 아니라면 나를 사랑하는.사람은 누구고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사랑. "오늘 같이 걸을까요 날이 너무 좋아서 해본 말이에요." 보고싶어서 핑계 거리를 생각하다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간다. "구름한점 없었지만 소나기는 언제 내릴지 모르잖아요 우산을 안챙겼을까봐 데리러 왔어요." 보도 옆으로 쌩쌩 다니는 차를 무서워 해서 늘 말 없이 차도 쪽엔 내가 서있었다. "추위를 많이 타시잖아요. 차가 지나갈때면 늘 바람이 불어서 제가 여기에 서있으면 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을까봐 해서요." 계절이 변하면서 손이 너무 건조해졌다 말해서 핸드크림을 사들고 달려갔다. "필요할것 같아서요 언제가 되었든 손잡기 부끄러워 하실까봐 말이에요" 밥때를 놓쳐 배고프다는 말에 돌아서 서브웨이를 들려 샌드위치를 사갔다. "저도 저녁을 못먹어서요, 제가 하나는 혼자서 못먹어서 둘이 먹으면 좋을것같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담배냄새를 싫어할까 담배를 끊었다. "애연가입니다. 하루에 두갑 남짓 태웠어요. 근데 이제는 안태웁니다. 비흡연자 앞에서 담배 냄새 풍기는건 예의가 아닌것 같아서요." 술마실때는 주량보다도 훨씬 조금만 마신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 말이 느닷없이 튀어나올까봐. 겁쟁이. 혹여, 당신이 취한다면 안전하게 집으로 보낼 사람이 필요하니까. 얘기하다 당신이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니 그 말을 한시간을 넘게 떠들었을때. 저는 사실 그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근데 그 얘기를 할때 눈과 입이 참 이뻤습니다. "저도 그거를 한번 좋아해볼까봐요 그러면 같이 더 재미있게 얘기할수 있을것 같아요." 얼마 후 떠나갈 이 행복 이라는것을 어렴풋 알 수 있었다. "저에게 궁금한건 많이 없으신가봐요." 그것은 아니라 하였다. 근데 왠지모르게 상처를 받았다. 마시던 찻잔을 살포시 내려놓고 그렇게 헤어졌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이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6. (12월 25일)
해가 중천에 떠 햇빛을 받으며 오전 11시에 일어났다. 또, 같은 꿈을 꾸었다. 내게는 유쾌하지 못한 꿈이라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제발 아무일도 없는 그저 꿈이였기를 바란다. 실은, 차라리 일어났으면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는 겁이많아 부끄러움만 살것같기에 그냥. 꿈. 정도로 만족해야만 하겠다. 슬프다. 오늘이 25일 이라는것도 생각하니 더욱이 슬퍼진다. 오늘은 빨간날. 공휴일이다. 그것은 내게 딱히 의미는 없는 날이다 보고싶은 사람도 내가 그리운 사람도 없으니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외톨이가 되었음에, 알고있음에도 한번 되뇌여 더욱이 쓸쓸하다. 차가운 공기 냄새 차가운 배경, 하얗게 질린 거리 나는 제정신이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약을 먹지도 않았다. 온전히 내 자신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잠들려 했지만 잠이 오질 않아 결국, 누추한 차림으로 거리로 나갔다. 크리스마스다. 밖은 눈이 날리며 사람들로 가득했고 사랑과 웃음과 행복한, 부러운 모든것들. 세상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했다. 이 세상에 우울하고 슬프며 외로운 사람은 지구에 단 한명 뿐이다. 오늘만큼은 그런것같다. 나는 몹시 추웠지만 그들의 따뜻함을 느낄수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웃음이 피식 새어나오기도 했다. 거리는 재즈와 스윙, 사랑과 로맨스로 가득하다 계속하여 눈이 날린다. 야속하게도 나는 폭설 속에 파묻혀 죽고싶은 마음이지만 한시간만 더 살아있어보고자 생각했다. 극장에 들렸다. 서점에 들렸다. 옷 가게에 들렸다. 담배를 뻐끔 피워댄다. 커피를 마신다. 한시간이 훌쩍 넘었다. 넘은김에 술 한잔 생각이 나서 포장마차에 들렸다. 이곳도 시끌벅적 하구나. 죽기위해 몸부림치던 나는 어디 갔는가. 뭐가 그리 아쉬운것일까 술잔에 술을 따르고 한입에 들이킨 후 젓가락으로 와사비를 쿡 찌르곤 한입 했다. 이 모든 과정속에 내가 원해서 한 행동이 하나 없다는게 슬펐을까 와사비가 매워서일까. 눈물이 자꾸만 났다. 다음 해의 새 출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올해의 마지막을 잘 매듭 짓자는 마음으로 나는 실내가 눅눅한 포장마차의 밖을 나왔다. 밖은, 눈에 젖어 하얗고 거대한 트리와 그 밑에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한 마디가 써있었다. "주님. 오시고서 떠나가는 날 나도 데려가주오.." 나는 적잖이 탄에 불을 태우며 니코틴과 일산화탄소를 들이키고 내뱉기를 반복하며 홀로, 조용히 떠들길,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기도 할때. 기도 할때.. 기도 할때... 이 미련한 죄인을. 그리스도 그 보혈의 사랑을. 내가 짊어진 사랑을. 홀로 사랑한 그 날을. 견딘 그 날을. 나는..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데. 담배를 한입 뻐끔 내뱉고 일산화탄소를 들이키곤 기침을 하며 눈물과 콧물이 나오며 내가 이르길. 다 잊어 주십시오 이 미련한 죄인을. 자정의 종소리가 울렸고 인적 드문 도로 갓길에 서있는 차량 한대는 시동이 꺼진채 비상 깜빡이만 똑딱였다. 세상의 저편에서는 여전히 하얗고 빨갛고 반짝이는 조명과 사탕과 케이크, 꽃과 와인, 재즈와 스윙 춤과 노래, 행복과 사랑이 넘쳐났고. 이곳은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적막으로 가득해졌다.
7. (Fine)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한채 떠나간 나의 세상은 심해보다도 깊은 바다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이곳이 어디인줄도 모른채 서성이듯 말이다. 이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까지 저는 당신과 함께 있고싶어요 저는 마치 한쪽의 다리가 없는 절름발이 처럼 평생을 걸었는데, 당신을 처음 봤을때 느꼈어요 저는 다리가 없는게 아니라 그저 평탄하지 못한 길을 걷고 있었다는것을요. 그저 같이 있을때면 마음이 온 화해져서 같이 소파에 앉아 테레비를 보며 같이 창가에 앉아 바깥의 야경을 보며 같이 왈츠를 들으며 쿵짝짝 춤을 추며 탱고와 삼바 보사노바 스윙을 추듯 저는 당신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이 모든 세상의 축제를 함께 하는 마음이였어요 당신이 저의 피아노 앞에서 도미솔시 를 쳤을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것은 코드와 음색이 아닌 당신의 손으로 연주되는 모든것 이라는것을요. 나의 사랑이자 불멸 할것만같은 영혼의 소리 뜨겁게 불타는 마음이 여기 이곳에 스쳤다. 꺼지길. 당신이 제게 들려준 아름다운 음색의 코드 진행이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이곳의 적막이 감싸 안아 시계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무렵 세상의 모든 연주가 멈추고 심장도 세상도 우주도 이곳에서 페르마타. 리타르단도. 다 카포. 피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