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내려놓게 만드는 회사
다시 나의 퇴사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보자.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회사 안에서만 유독 무기력해지는 나 자신이 싫어서였다.
번아웃은 현대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내가 겪은 무기력은 단순한 번아웃 이상의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 밖에서의 나는 여전히 시간을 쪼개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는 성취 지향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1년차 때의 나는 분명 회사에서도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갔다.
왜 나는 '회사에서만' 이렇게 무기력한 사람이 되었을까?
1년차 때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입사 후 정직원으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아무리 전환율이 높다는 이야기가 들려와도 불안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뭐라도 보여줘야겠다는 압박감에, 그리고 그 이후로는 일하는 재미 때문에 열정 넘치게 일을 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게임 개발을 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고,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그 일을 업으로 삼게 되어 직무 만족도가 매우 높은 상태였다. 이전에 경험한 인턴십과는 달리 직무 또한 적성에 맞아 퍼포먼스도 잘 나왔고, 주변의 칭찬을 받으며 잘 성장하고 있던 주니어였다.
문제가 생긴 것은 옆 프로젝트에 지원 멤버로 파견되고 나서부터였다.
인원이 부족하다며, 내가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에서 사용하는 기술 부분에 도움이 필요하다며 투입된 프로젝트는 뭔가 이상했다. 뭔가를 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그게 뭔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 완성이 안 되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라는 리더의 말에 모두는 마음속에 자라나는 의심의 새싹을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팀원 모두가 열심히 노력했던 그 프로젝트는 결국 1년도 채 되지 않아 드롭됐다.
드롭이라는 건 내가 근 몇 개월을 노력해 만들어낸 작업물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기에.. 잘못된 디렉팅으로 프로젝트를 드롭시킨 리더에게도, 지금까지 방관하다가 통보하듯이 드롭을 결정한 그 윗선에게도 분노를 느꼈다.
팀은 그대로 유지됐고, 프로젝트의 피봇(*방향성 변경)을 명 받았다. 다행이라고 할까, 초기 방향성 설정 시점에는 윗선에서 다른 관리자를 보내왔고 리더의 권한이 잠깐 축소됐었다. 피봇 된 프로젝트는 내가 평소에 잘 알고 있던 장르였기에 나는 이런저런 의견을 내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실행해 첫 빌드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첫 빌드 이후, 윗선에서 보낸 그 관리자는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리더가 다시 권력을 되찾으면서 또 프로젝트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리더는 내가 분석하기로는 통제광이었다. 머릿속에 뭔가가 있으면,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고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맞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끼워 넣어야 만족스러워하는 그런 사람. '멍청하고 부지런한' 그런 사람 말이다. 문제는 이렇게 끼워 넣는 일이 정당한 논의나 피드백 과정 없이 은근슬쩍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프로젝트 피봇 전부터 이런 일들을 꾸준히 겪어오다 보니 "내가 아무리 의견을 내도 이 사람은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혔고, 점점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이 일과 관련해 같은 팀의 선배에게 하소연해보기도 하였다. "분명히 1년 전까지만 해도 열정이 넘쳤는데, 지금은 그런 게 뭔지 모르겠어요." 선배는 자신도 그렇다며, 리더와 오래 함께 해왔지만 특히 최근의 행보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더는 심지어는 빌드 하루이틀 전에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은근슬쩍 끼워 넣었고, 그로 인해 빌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작업자들의 실수나 능력 부족으로 책임을 돌렸다. 그 선배는 하필 게임 전체적인 구조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유난히 많은 지적을 받아왔었다. 결국 그 선배는 그로부터 얼마 후 팀을 옮겼고, 또 얼마 후 조용히 퇴사했다.
사람이 한 명 빠지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 책임을 떠맡게 되기 마련이다. 선배가 맡던 일들은 적절한 기준에 따라 분배되었는데, 상대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작업자가 업무 연관성으로 인해 상당한 부분을 가져가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나는 미안한 마음에 더 적극적으로, 그 일이 아닌 다른 업무들.. 즉 명확히 담당자가 정해지지 않아 떠도는,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이른바 '회색 지대'에 있는 업무들을 내가 맡아서 진행했다. 처음에는 선의로 하나둘씩 맡아서 하던 회색 지대의 일들은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내가 맡는 게 당연한 것이 되었고, 내 담당 업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전체 게임의 70% 정도를 내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빌드를 거치고 3년차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내 담당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호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내가 맡고 싶어서 맡은 것 외에도 분명히 "그냥 내가 잘하니까"라는 이유로 맡게 된 업무들은 특히나 스트레스가 심했다.
동시에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일을 만들어내는 유관부서도, 악의 없이 꼬치꼬치 캐묻는 QA도, 무능한 리더도, 짐을 나눠 들지 않는 동료도..
회식 자리에서 우연히 들은 말이 있다.
"일에 너무 열정을 가지면 힘들어져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결국 회사에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고요.
회사에 오래 다니려면 그냥 시키는 일만, 돈 받은 만큼만 하는 게 속 편하죠."
그 테이블에 있던 모든 사람이 공감을 했고, 어떤 사람은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열정을 실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열정을 자발적으로 내려놓게 되는 과정이구나. 회사가 우리를 다루듯이 그렇게 그저 부품처럼, 감정 없이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회사를 다닌다'는 것에 적응하는 방법이구나.
나는 이 모든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더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들어질까 봐 회피하는 삶보다는 열정을 가지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삶이 살고 싶었다. 적어도 아직 책임질 것이 없는 젊은 나로서는 안정적인 월급보다는 조금은 덜 안정적이더라도 의미 있는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회사에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여담이지만, 나는 내가 열정을 갖고 자발적으로 일했던 그 시절을 조금은 후회했었다.
하지만 이번 퇴사 과정에서 함께 일했던 다른 부서의 동료분께 들은 뜻밖의 이야기는 그 후회를 덜어주었다.
"저도 항상 '돈 받은 만큼만 일하자'는 주의였는데, 은성님께서 일하는 걸 보고 자극을 받아서 프로젝트에 열심히 임할 수 있었어요. 주어진 일 이상을 책임지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은성님이라면 회사 밖에서도 뭘 하든 잘 해내실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이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틀린 게 아니었구나."
솔직히 조금 힘들긴 했지만, 많은 업무를 맡는 과정에서 프로젝트를 전체적으로 보는 시야나 개별 작업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 면에서 크게 성장하기도 했다.
앞으로 이 말을 가슴에 안고,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믿고.. 그렇게 나답게 도전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열정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이들이 회사라는 시스템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알고.. 그 태도를 관철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체념이 전염되듯이, 열정도 전염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