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움을 즐기는 추석을 맞이하였다.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아가기 마련이지만 우리 집은 고향이라기보다는 각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간다. 그마저 수도권에 계시니 당일에 모두 뵙고 오는 것도 가능하다. 다행이기도 불행이기도 하다. 다행인 이유는 당일에 다녀올 수 있으니 다른 날에는 쉴 수 있기 때문이고, 그만큼 만날 가족이 줄어들었으니 명절이 명절 같지 않은 느낌이어서 안타까움에 불행이다.
명절이 되면 또 다른 불행이 있다. 그것은 인삼이의 존재이다. 인삼이를 데려온 뒤 처음 맞는 추석 때에는 데려갔었다. 아기 강아지일 때라 모두들 귀여워했다. 하지만 그해 연말을 기준으로 처가댁에서는 맹견이 되어버렸다. 부모님과 형네 가족을 만났을 때 털이 많이 날리고, 형수가 무서워하기에 다음부터는 데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인지 인삼이 산책을 핑계로 처가댁과 부모님 댁에서 잠을 자고 오지 않는다.
처가댁의 경우 당시 상황은 이러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연말이었다. 우리 집으로 어머님과 막내 처제가 왔고, 한창 호기심이 많을 때인 인삼이가 처제의 양말을 탐내다가 놀란 처제가 벌떡 일어나면서 인삼이 이빨에 긁혔다. 피가 났고, 놀란 인삼이는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맹견이 되어버렸다. 아내나 내가 더 신경 썼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고, 이미 발생했으니 빠른 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과 처제는 바로 병원으로 갔다. 그 뒤로 처제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고, 인삼이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리가 멀어지기도 했고, 바빠서 더욱 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해한다. 개보다 사람이 먼저니까. 만약 내 아들이 물린다면, 상처를 살피고, 우선 소독약으로 소독하고, 닥치고 병원에 가서 광견병, 파상풍 주사를 맞히자. 인삼이에게 가혹할지 모르지만 처우는 그 뒤에 생각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울타리도 친 것이니 조심하자. 또 다짐한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는 좀 다르다. 부모님 역시 집에 오셨을 때, 양말에 관심을 가지는 인삼이는 엄마한테 콧잔등을 맞았다. 반려견 문화가 정착되기도 전, 잘못하면 때리는 것이 합법인(?) 부모님 세대에서는 때리는 것이 특효약이다. 그 뒤로 더 큰 사고가 생길지 몰라 그냥 만나지 않게 했다. 그래도 아이가 생기고, 부모님이 우리 집에 종종 방문하다 보니 크게 짖지는 않는다. 이제야 안면이 좀 트이나 보다.
인삼이를 데려오고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 당시에는 좀 후회를 했었다. 차라리 아내가 처음 노래 부를 당시 작은 강아지를 데려왔다면, 좀 달랐을까? 하는 생각도 했으니 말이다.
아이의 경우 당연하겠지만 처가댁을 가든 부모님 댁을 가든 늘 환영받는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최고로 환영을 해주신다. 이번 추석이 다가올 때쯤 어머님은 아이를 위해 신발을 사주셨다. 처가댁의 경우 둘째 처제가 이미 세 딸을 낳아 키워 벌써 막내가 초등학생인지라 첫 손주는 아니었지만 첫째 딸이 낳은 아이라 좀 더 신경 써주시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내, 처제들, 조카들까지 해서 딸 부잣집에 첫 남자 손주이니 특별한 느낌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긴 하지만 아마 공평하게 대하실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 부모님에게는 첫 손주인지라 더욱 환영을 받는다. 아빠 말로는 내 자식 때는 몰랐던, 차원이 다른 소중한 느낌이란다. 엄마는 아이에게 가을 옷을 선물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우리 아이를 위해 준비한 두 번째 서프라이즈는 옷, 신발, 책, 장난감 등이 가득 담겨있던 이사박스 3개였다. 새것이 아닌 중고이지만 아이는 모른다. 그저 자동차 장난감들에 눈빛이 반짝거리고 신이 났다. 이미 집에 자동차가 넉넉히 있음에도 또 자동차가 그리 좋은가보다. 할머니 최고!
어머님이나 아버님께서는 상관없어하셨지만 우리 부모님께서는 처음 성별을 아셨을 때 실망을 하셨다. 외가나 친가나 딸이 귀한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아내 집안이 딸부잣집이었기에 좀 더 기대하셨을지 모르겠다. 사실 아내와 나도 그랬다. 아내는 아들에 대한 두려움이 좀 있었고, 나는 아내를 보며 역시 크면 아빠에게는 딸밖에 없는 것 같았기에 선호했다. 하지만 아이가 세상밖으로 나오고서는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이 이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추석 명절이 지났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도 인삼이는 명절이라도 일상이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이 되게끔 나나 아내나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기억이 났다. 나에게는 조금은 잊힌 속담이었다. 좀 더 깊은 뜻을 찾아보니 지금처럼 풍요롭지 않던 과거 서민들이 추석 때가 되어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에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런 날이 항상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소망이 담긴 속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가윗날이라고 하기도 한다. 아이는 아마 매일이 한가윗날만 같기를 바랄 수 있다. 매일매일이 재미난 장난감이 가득해지는 날.
나에게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나의 오늘과 내일들이 한가윗날만 같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