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40주의 임신 기간과 10여 시간의 힘든 진통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내가 임신부들께 전하는 말은 적지 않다. 물론 대부분 진료와 관련된 정보들이고 순산과 관련한 조언들이다. 몇 년 전 순산 모임의 산후맘 분들께 그렇게 숱하게 내가 했던 말 중에 무슨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여쭈어 본 적이 있다.
산후맘 분들께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진통 때 "이제 조금만 더 견디면 진통이 끝나고 통증이 없어집니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두 번째로 좋았던 말은 "아기 머리 나왔으니 이젠 힘주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처음 임신을 확인하러 병원에 갔을 때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의사가 해주는 "임신입니다.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의외였다. 물론 내가 그런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고 이미 임신은 소변 임신 검사로 확인해서 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에 끝이 있다는 것보다 힘을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뾰족한 산 정상으로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가 괴로운 이유는 바위의 무게보다 고통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이지 않을까 싶다. 그분들은 곧 끝을 본다는 사실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끝이 있다는 것.
그것이 신 혹은 자연이 생명체에게 준 선물인지 아니면 벌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듯하다. 내 생각으로는 선물에 가까워 보인다. 햇빛이나 공기나 물 등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받은 대부분의 것들이 선물이라는 점을 보았을 때 하루의 끝인 잠도, 인생의 끝인 죽음도 선물일 것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든 염색체의 끝에는 텔로미어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텔로미어는 유전 정보가 없어 별다른 기능은 없지만 유전 정보를 가진 나머지 염색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노화 유전자로 알려져 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가 한번 복제할 때마다 그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다가 일정 회수의 복제가 끝나면 더 이상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인간의 경우 보통 60번 정도가 복제 한계라고 한다. 텔로미어가 다 없어지면 해당 염색체는 보호막이 없어진 탓에 손상을 입고 사멸하게 된다.
텔로미어가 정상적으로 줄어들어 세포가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임에도 불구하고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않아서 끝없이 복제가 가능한 세포가 있다. 바로 암세포다. 암세포는 무한히 증식해서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는 주변의 세포들을 잠식해 버린다. 암으로 인해 건강과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은 이렇게 정상 세포가 쫓겨나고 암세포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암세포 중에 최초로 실험실에서 증식에 성공한 세포가 있는데 헬라 세포 (HeLa cell)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라는 31살의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하고 나서 조지 가이라는 박사가 그녀의 자궁 경부암세포를 채취하여 증식을 시켰다. 그녀의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 헬라 세포는 1951년에 채취하여 증식에 성공하였으니 현재 나이가 70살이 넘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사건은 당사자에게도 그렇겠지만 출산을 도운 나에게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 고통이 때로는 행복과 기쁨이 되기도 한다는 것. 소중한 것일수록 저절로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물론 진통이 끝나는 출산의 순간이 지나면 임신부들도 나도 모두가 알고 있다. 이것이 고통의 진정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사람이 길의 끝에 다다랐다. 그러면서 "여기가 끝이군요."라고 말하자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그쪽에서 오면 여기가 끝이지만 여기서 가는 사람들은 이곳이 시작입니다."라고.
임산부로서의 길은 출산으로 끝나지만 아기의 엄마로서의 길이 시작된다. 출산은 임신 동안의 고통의 끝이며 육아라는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다. 그러나 "끝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준 위로처럼 그때도 그녀들을 그리고 우리를 버티게 해 주는 것들은 많다. 어떤 이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그것을 더 강해지기 위해 부여된 고난이라고 부른다. 무엇이라고 부르던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을 붙들어줄 기둥 하나는 세워 두어야 한다.
나에게 그 기둥은 이 글의 제목이다.
산모분들께 “조금 있으면 이 진통도 끝납니다.”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던 것처럼 나는 그녀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괜찮습니다. 출산도 했는데 육아도 해 보면 별 것 아닙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채 무릎이 까져 울고 있는 어린이에게 나는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괜찮아. 피는 금방 멈출 거고 아픈 것도 호 불면 없어질 거야. 별 일 아니야. 울지 마."
쉽지만은 않은 인생에서 매번 넘어지고 앞날에 희망도 보이지 않는 분들께 나는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지금은 졌지만 괜찮습니다. 별 일 아닙니다. 살아 있는 한 기회는 반드시 또 옵니다.”
병마에 시달리면서 침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께 나는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지금 많이 아프시고 힘드시겠만 곧 괜찮아지실 겁니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나아지실 겁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 어느날 그때가 되면 내가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벌어 놓은 돈도 없이 오늘 병원 문을 닫고 간판을 내리지만 괜찮아. 별일 아니야. 그동안 최선을 다했으니까 됐어.”
여기 실은 그림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라는 독일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나름 꽤 유명해서 그림을 소재로 한 여러 책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니 남자의 뒷머리의 숱이 적어 보이는 것이 속알 머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내 뒷머리와도 닮은 듯하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색인 검은색의 외투까지 입고 있다니.....
프리드리히의 그림에는 사람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동양화에서 보듯 아주 작게 그려져 있거나 아니면 이렇게 뒷모습이 대부분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프리드리히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이 뒷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은 자기 성찰을 하는 낭만주의 경향 때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사람들의 앞모습을 그리지 않은 것은 사람을 그리는 데 서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나무나 풀을 묘사하는 것보다 사람을 그리는 것이 훨씬 힘든 일로 여겨진다고 고백한 바가 있다.
죽음이나 허무함과 연관된 풍경을 자주 그리는 것에 대해 프리드리히 자신은 역설적이게도 영원한 삶을 위해라고 답한다. 그는 삶을 사랑하기 위해선 이따금 죽음을 생각하라고 한다. 이런 그의 생각은 대인 기피증에도 연결된다. 다음은 그가 쓴 시다.
사람들은 나를 인간 혐오자라고 부른다네.
내가 사회를 피한다는 이유로
하지만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지.
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네.
하지만 인간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과 교제를 단념하지 않을 수가 없다네.
-여기 실은 그림-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의 방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