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임신과 출산은 벌이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매번 글마다 어떤 그림을 넣을지 고민한다. 이번 글에 넣은 그림은 쿠르베의 작품 “돌을 깨는 사람들”이다.

채석장에서 다 떨어진 옷을 입은 노인이 무릎을 꿇고 망치로 돌을 깨고 있다. 쿠르베는 당시 기득권 층인 귀족이나 성직자들의 모습이 아닌 서민들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그리고자 했다. 천사를 그려달라는 누군가의 요청에 "난 천사를 본 적이 없다. 천사를 내 눈앞에 데려다 놓아라. 그러면 그려 주겠다."라고 답했을 정도다. 정치적인 박해를 피해서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망명을 갔던 쿠르베는 "나는 단 한순간이라도 나의 원칙을 벗어나거나 양심에 어긋나는 짓은 하고 싶지 않네"라고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사실주의라는 이름을 내걸고 기존의 화가들과 맞서 나가던 쿠르베의 그림을 본 젊은 화가들은 훗날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탄생시켰다.


산부인과에서 부인과 진찰 때 취하는 자세는 리쏘토미 자세 (Lithotomy Position)라고 부른다. Litho는 그리스 어원으로 돌이라는 의미가 있고 tomy는 무엇인가를 자른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리쏘토미 자세라고 하는 것은 돌을 깨는 자세라는 뜻이다. 방광이나 요도의 결석을 깰 때 이런 자세를 취한 대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물론 리쏘토미 자세는 산부인과 내진 시뿐만 아니라 출산할 때도 쓰이는 자세다. 바닥에 똑바로 누워서 다리를 90도 가까이 구부려서 벌리고 누운 자세다.

그런 탓에 이 자세를 취하기 위해 올라가는 내진 진찰대나 분만 침대를 굴욕 의자, 굴욕 침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는 그렇게 부르는 것에 대하여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출산은 절대 굴욕스러운 것이 아니며 따라서 출산을 위해 취하는 자세도 절대 굴욕스러운 자세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또한 출산을 위해 올라가 눕는 침대는 굴욕 침대가 아니며 내진 진찰대도 굴욕 의자가 아니다. 치아를 치료하기 위해 눕는 치과 진찰대가 굴욕 진찰대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구약 성경 창세기에서 이브가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은 벌로 앞으로 대대손손 여자는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란 문장도 좋아하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은 무엇인가의 벌로 받아야 하는 끔찍한 사건일 수가 없다. 한때의 불편과 잠시의 고통 때문에 무엇인가를 죄에 대한 벌이라고 취급한다면 삶보다 더한 벌은 없다. 우리의 삶이 벌이 아니듯 임신도 벌이 아니다.


어떤 도구나 장비, 또는 행위가 굴욕스러운 것인지 아닌지는 그 모양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용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있기 전까지는 중죄인들이 처형당하는 도구로 치욕의 대상이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형 이후는 숭고한 희생의 상징물이 되었다.


나는 매일 리쏘토미 자세를 취하는 사람을 본다. 부인과 진찰을 받는 여성이거나 아니면 출산을 하는 여성이다. 그들은 내가 평생의 업으로 돕기로 한 사람들이다.

산모와 의사,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대단한 인연이 쌓여서 된 일이다. 어쩌다 이 시간 이 장소에서 특별한 인연으로 만났으니 좋은 결과를 남기면서 헤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출산을 돕고 나서 산모에겐 자신들의 소중한 아기가 품에 남는다. 나에겐 그들처럼 아기가 남는 것은 아니다. 대신 출산 후기와 손편지들이 병원 홈페이지와 내 서랍 속에 남는다. 내게는 소중한 것들이다.


다음의 문장들은 손편지를 통해 나에게 남겨 주신 글이다. 그런 고마운 마음을 담은 말과 글이 힘든 산부인과 의사 생활에서 나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스러운 아기 탈없이 만나게 해 주시고 기록도 기억도 남겨 주시고, 정성스럽고 따뜻한 식사도 다정한 돌봄도 모두 고맙습니다."


"저도 선생님 못지않게 무뚝뚝해서 늘 선생님 말씀에 끄덕이고 대답할 뿐 질문이 많지도 대화를 길게 한 적도 없어서 기억은 못하시겠지만 그래서 임신 기간 내내 더 믿고 편하게 다닐 수 있었고, 병원이라는 느낌보다는 정말 아기를 보고 오는 시간이라고 느끼고 참 즐거웠던 것 같아요."


"주신 출산 동영상 보고 많이 울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심상덕 원장님. 저 박 OO 아들 오 OO입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두 번째 출산이지만 얼마나 정성된 마음으로 출산을 도와주시는지가 첫째와 극명하게 달라서 감사의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네요."


"첫째 때도 선생님께 짤막하게 편지를 써서 드렸는데 3년이 지난 지금 무사히 태어난 둘째 딸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며 다시 감사의 편지를 쓸 수 있어 다행입니다. 와이프 빼고는 항상 선생님께만 감사의 편지를 쓰는 것 같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저와 제 와이프의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펜을 듭니다."


"몇 번의 유산 과정으로 임신 과정에서 항상 불안함이 있었는데 원장님에 대한 신뢰로 마음 한편 든든함을 가지고 출산까지 갈 수 있었고 건강한 아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퇴원 후 조리원에 들어와 선생님이 그동안 써주신 산모수첩을 다시 처음부터 열어 보았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쉽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출산의 순간과 기쁨을 추억하면 늘 함께할 진오비 산부인과. 아기가 듣고 이해하는 때가 오면 진오비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처음 전원 할 때 자꾸 다른 병원을 권유하셔서 저를 별로 반겨 주시지 않나 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진오비에서 큰 화면으로 첫 초음파를 봤을 때 뭔가 뭉클했던 감정이 있기도 하고 선생님의 진솔하고 소신 있으신 모습에 마음이 더 움직였습니다."


"처음 병원을 방문했을 때 원장님의 싸늘한 이미지에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맘 카페의 후기들로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자연 진통으로 건강하게 아기를 낳고, 감사의 편지 정도는 받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제 남편에게 편지지 사 오라고 해서 편지를 씁니다. "


"원장님 저의 출산을 잘 이끌어 주셔서 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무뚝뚝하시고 차갑게 느껴져 저 또한 얼어붙었던 적이 있었지만 샘 유튜브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나무처럼 단단하고 열정 가득하신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


"지난 4월에 제왕절개로 출산한 산모입니다. 초산이다 보니 남자 선생님께 진료받는 게 어색했어요. 궁금한 것도 걱정도 많았는데 병원에 다니면 다닐수록 눈 녹듯 사라졌어요. 그리고 여러 후기에 보았던 원장님의 무덤덤하신 모습도 시간이 지나고 수술을 하고 지내고 보니 그리 놀랄 일 (?)도 아니었고 오히려 저희 부부는 그런 원장님의 모습이 너무 좋았고 매력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여기 실은 그림-

귀스타브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



38_Courbet_Les Casseurs_Pierr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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