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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 Jun 28. 2024

기름야자 농장에서 식탁까지 – 농장 편

팜유(Palm Oil)라는 단어에서 '팜'은 야자를 뜻하는 Palm입니다. 흔히 야자라고 하면 열대지방 코코넛(Coconut) 나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 코코넛과 친척 관계인 기름야자(Oil Palm)에서 생산되는 기름이 바로 팜유입니다.


사실 코코넛에서도 기름이 나오는데, 이 코코넛오일은 한국에서 '야자유'로 번역되고, 팜유와는 다른 기름입니다. 최근 팜열매에서 나오는 팜유뿐 아니라 바이오매스 연료들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때 기름야자(Oil Palm)와 코코넛 야자(Coconut Palm)의 용어들을 혼동하여 잘못 사용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왼쪽은 휴양지의 야자나무, 오른쪽은 기름야자 농장 (본인 촬영)

기름야자가 되었든 코코넛 야자가 되었든, 이런 야자나무는 일반적인 나무와 다른 특이한 생김새를 가집니다. 일반적나무는 몸통(Trunk)에서 나무줄기, 가지가 위와 옆으로 뻗쳐 나가는 데 반해, 야자나무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나뭇가지가 없고, 잎사귀를 달고 있는 줄기가 계속 생겨나면서 거의 위로만 자라납니다.


야자나무 잎사귀 줄기는 맨 위에 있는 게 제일 어리고, 맨 밑에 있는 게 제일 오래됐다고 보면 되는데, 선배 잎사귀 줄기들이 다음에 새로 나오는 잎사귀 줄기에게 자리를 양보하면서 계속 아래로 내려오고 새로 나온 후배 잎사귀 줄기가 위로 뻗어 나오면서 나무 자체는 위로 계속 성장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동남아 휴양지의 야자나무에서 가운데 꼭대기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잎을 발견한다면, 그 잎이 가장 어린잎이라고 보면 됩니다. 위 사진에서 봐도 뭔가 위에 있는 잎은 색도 진하고 쌩쌩한데, 아래에 있는 잎은 좀 더 노랗고 시들시들해 보이지 않나요?


테이블야자(좌)와 바오밥나무(우) (본인 촬영)


위 사진에서 왼쪽은 집에서 키우는 테이블야자입니다. 컵 안에 담겨있는 작은 녀석이지만 같은 야자(Palm)라 그런지,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에서 볼 수 있듯 새 잎이 뾰족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기름야자나무처럼 이미 펼쳐져 있는 선배 잎사귀는 점점 시들고, 뾰족한 후배 잎사귀 펼쳐지고, 그 뒤에 또 다른 후배 잎사귀가 생겨나면서 성장할 것입니다.


오른쪽은 야자와 대조되는 모습의 바오밥 나무입니다. 야자나무와 전혀 다르게 생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뭇가지가 위와 함께 옆으로 뻗쳐 나가는 모습입니다. 몸통이 조금 특이하지만, 야자나무보단 이런 나무가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나무의 모습이죠.




다시 팜유 이야기로 돌아와서, 기름야자나무와 팜열매의 생김새는 이렇습니다.


기름야자나무에서 팜열매까지 (본인 촬영)


이 열매를 FFB(Fresh Fruit Bunch)라고 부르는데, 영어 그대로 열매 다발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나무에 있는 열매가 좀 까무잡잡하고, 수확된 열매 색이 붉은 건 열매가 익은 정도의 차이입니다. 이 포도 같은 다발에서 열매 낱알을 떼어내 단면을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팜열매 낱알 단면을 확대한 사진 (본인 촬영)


이 노란 과육(Mesocarp) 부분에서 우리가 아는 팜유가 나옵니다.


가운데 하얀 부분은 씨앗으로 팜핵, 혹은 커널(Palm Kernel)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서도 기름이 나오고, 하얀 씨앗을 둘러싼 어두운 부분(Palm Kernel Shell)은 바이오매스 연료로 사용됩니다. 앞서 미국 농무부(USDA)의 식물성 유지 통계 자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왔던 팜핵유(Palm Kernel Oil)가 바로 이 커널에서 나오는 기름입니다.


과육 부분에서 기름을 짜내고 나면 섬유질이 남는데 이 역시 바이오매스 연료로 사용되니, 열매 과육부터 씨앗과 껍질까지 버릴 게 없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팜열매 다발(FFB)은 꽤 크고 무겁습니다. 나무의 나이에 따라 열매 무게가 달라지지만 보통 10kg이 넘고, 큰 경우 30kg을 넘어가기도 합니다.

팜열매를 운송하는 인부들 (본인 촬영)

사람과 같이 보니 두고 열매가 꽤 큽니다.


이렇게 묵직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기름야자나무도 어린 묘목 시절엔 가정집이나 사무실에서 키우는 관상용 야자처럼 생겼습니다. 보통 농장에서는 이런 묘목들을 양묘장에서 한꺼번에 키웠다가 농장에 식재하게 됩니다.


관상용 야자와 기름야자 양묘장 (본인 촬영)

왼쪽은 집에서 키우던 관상용(야레카) 야자, 오른쪽은 양묘장에 있는 기름야자나무 묘목입니다. 둘 다 야자라서 비슷하게 생겼는데요. 저런 풀처럼 생긴 게 크게 자라서 30kg이 넘는 열매를 1년 내내 맺는다고 생각하면 신기합니다.


어느 정도 자란 묘목들은 농장에 심고 나면, 열매를 맺는 어엿한 기름야자나무로 성장합니다. 기름야자나무는 미성숙기를 지나면 열매를 맺지만 이후에도 전성기와 노년기를 거치며 열매 생산성이 달라집니다. 아래 그래프는 기름야자나무의 나이와 그에 따른 팜열매 생산량을 보여줍니다.


(출처: Kushairi et. al, Oil Palm Biology: Facts & Figures)


세로축에 생산량, 가로축에 기름야자나무의 식재 후 연차를 보여주는 이 그래프에서 보시다시피 기름야자나무는 보통 식재 후 3년이라는 미성숙 시기를 지나, 실질적으로 5~10년은 되어야 제대로 열매를 맺는 전성기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20년 차가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생산량이 낮아집니다. 여기서 생산량은 농장 1ha당 생산되는 팜열매 다발(FFB)의 무게를 나타냅니다. ha당 생산량은 지역에 따라, 종자에 따라, 관리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량의 숫자가 아닌 트렌드, 즉 기름야자나무의 열매 생산량이 전성기에 다다르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전성기에 높은 생산성을 보이다가 노년기에 접어들며 생산성이 줄어드는 모습은 대부분의 지역과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팜유 시장을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기름야자나무는 식재 후 30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긴 합니다. 하지만 앞서 야자나무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기름야자나무는 양 옆으로 나뭇가지를 치는 게 아니라, 계속 위로 자라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30년이 지나면 나무 높이가 너무 높아져서 수확이 어려워집니다. 나무가 낮을 땐 눈앞에 바로 열매가 있지만, 나무가 높아지면 기다란 장대로 열매를 수확해야 하는 것이죠. 예전에 오래된 기름야자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마치 막대기를 들고 아파트 3층 베란다에 있는 가구를 꺼내는 묘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고, 그만큼 작업자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나무가 오래되면 높이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열매를 맺는 나무의 생산성 또한 낮아집니다. 이땐 나무를 베어내고 새로 심는 재식재(Replanting) 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묘기 같은 팜열매 수확 (출처: Context News)


다른 주요 식물성 유지 작물들(대두, 유채, 해바라기 등)과 다른 팜유의 생물학적 특성 가격이나 수급과 같은 요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팜유는 한번 심으면 20년 이상 계속 생산이 기름야자 ‘나무’에서 생산되는 특성 때문에 올해와 내년의 생산량 변동이 크지 않습니다. 반면, 대두, 해바라기, 유채는 1년 내에 파종과 수확을 하기 때문에, 시장 상황이나 농가의 판단에 따라 작년과 올해의 생산량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기름야자나무는 식재 후 5년은 기다려야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접어들고 열매를 맺기 때문에, 작년에 팜유의 가격이 나빴다고 해서 올해 팜유 생산을 줄일 수 없고, 반대로 가격이 좋다고 팜유를 더 생산할 수도 없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말해 공급이 비탄력적인 품목입니다. 또한 다른 작물들은 1년 중 일정한 시기에 파종과 수확이 이루어지고 그 일정한 시기에만 생산을 할 수 있는 반면, 팜유는 1년 내내 생산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팜유 수급과 시황을 예측하는 기본 요소이고, 관련 사업 투자 의사 결정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앞서 보았듯 팜유는 전 세계 주요 식물성 유지 생산량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매우 영향력 있는 식량 자원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팜유를 지식으로 장착하고 나면 식량 안보나 바이오 에너지의 현실성과 같은 거대한 담론들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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