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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Sep 05. 2024

감자와 고구마, 동서양을 넘나드는 이름 바꾸기 게임

포테이토와 스윗포테이토의 숨겨진 역사

여러분, 오늘은 우리가 즐겨 먹는 두 가지 음식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고구마와 감자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이 두 음식의 이름이 실은 서로 바뀐 적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일이 동양과 서양에서 비슷하게 일어났다는 점을 알고 계셨나요? 지금부터 이 맛있는 오해의 세계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이야기는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조 임금 때, 조선통신사 조엄이 일본 대마도에서 달콤한 뿌리 작물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지금의 고구마였죠. 이 새로운 작물은 맛이 달콤해서 '감저(甘藷)'라고 불렸는데, 여기서 '감'은 '달다'는 뜻이고 '저'는 '뿌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감저'가 바로 '감자'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원래 '감자'라고 불렸던 것은 지금의 고구마였던 겁니다!


그런데 얼마 후, 지금의 감자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이 새로운 작물도 뿌리를 먹는 것이라 '감저'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둘을 구분하기 위해 고구마를 '남감저(南甘藷)', 감자를 '북감저(北甘藷)' 또는 '북저(北藷)'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 재미있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지금의 감자가 '감자'라는 이름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감자가 고구마보다 재배하기 쉽고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 빠르게 전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죠. 반면 고구마는 당도가 높아 쉽게 썩고, 토질에 까다로워 재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구마는 '고구마'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서양의 이야기로 눈을 돌려볼까요? 놀랍게도 서양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고구마가 먼저 유럽에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이를 '파타타(patata)'라고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중남미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었죠. 이 '파타타'가 변형되어 '포테이토(potato)'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반전이 일어납니다. 나중에 지금의 감자가 유럽에 전해지면서, 이 새로운 작물이 '포테이토'라는 이름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원래의 포테이토, 즉 고구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로 '스위트 포테이토(sweet potato)'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달콤하다는 뜻의 '스위트'를 붙여 구분한 것이죠.


이렇게 보면 동서양의 역사가 참 비슷하지 않나요? 고구마와 감자는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마치 서로의 이름을 빌려 쓰다가 돌려주지 않은 친구 같기도 하고, 혹은 서로의 정체성을 바꿔 쓴 쌍둥이 같기도 합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재미있는 흔적들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는 여전히 고구마를 '감자'라 부르고 감자를 '하지감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또, 1925년에 출간된 김동인의 유명한 단편소설 '감자'에서 언급된 '감자'가 사실은 고구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자, 이제 고구마나 감자를 먹을 때마다 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나요? 게다가 영어로 'potato'나 'sweet potato'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이 흥미진진한 역사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구황작물로 시작해 이제는 건강에 좋은 간식이자 다양한 요리의 재료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 두 작물의 역사를 알고 나면,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그 맛이 더욱 특별하게 느껀 껰거 감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 속에 이렇게 흥미진진한 세계사가 숨어있다니 놀랍지 않나요? 앞으로도 우리 주변의 평범해 보이는 것들 속에 숨겨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계속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일상이 더욱 풍성해지고 즐거워질 테니까요. 여러분의 주변에도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지는 않을까요?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외국 친구들과 대화할 때, 이 재미있는 감자와 고구마의 역사를 들려준다면 어떨까요? 분명 흥미로운 대화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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