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약도 없는 결혼병

"우리 다른 공간에서 같은 병에 걸렸었구나?"

by Orang


하나뿐인 언니는 28살에 결혼해 바로 임신, 출산을 해 당연히 나도 그쯤이면 결혼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20대 후반이 됐음에도 여전히 결혼할 사람은 없었고 당시 만나던 연인과 결혼을 할 결심도 서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언니와 내게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는지, 어떤 남자를 피해야 하는지 자주 하셨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생활은 이상적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엄마는 아빠의 아쉬운 점을 가지지 않은 남자와 딸들이 결혼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기에 이런 얘기를 하신 게 아닐까.


20대 중반 대학원을 졸업 후 비영리단체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허무맹랑한) 나의 계획상으로 20대 후반에는 결혼을 해야 하니, 20대 중반에는 결혼 상대를 만나 4계절을 거치려면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NGO의 벌이라는 것이, 혼자 겨우 생활할 수 있는 정도라 종종 부모님의 지원을 받기도 하는 경제 상황이었는데 결혼은 무슨 결혼인가. 게다가 당시 나의 연인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 대학생이라 내가 계획한 결혼 시기에 적합한 상대도 아니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컸기에 총체적 난국이었다!

당시 나의 연인은 다정하고 나를 아껴준 친구였으나, 나는 '결혼' 그 자체에 꽂혀있었기에 ‘다정함’은 그다지 중요한 항목이 아니었다(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잣대였지만ㅋ)

혼자서 내적 갈등에 시달리다, “나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너는 나랑 결혼할 상황이 아니지 않냐.” 며 이별을 고했고 그는 무척 황당해했다. 글에 다 담지 못할 부끄러운 긴 서사가 있지만 그땐 그래야만 했고, 연애의 목적이 결혼이었다. 이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하겠다. 는 깊은 고민 없이,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해야만 했고 누구랑 해야 할지 찾아 헤맸다.

부끄럽게도 20대 후반의 나는 이랬다. 좋아해서 시작하는 연애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결혼이 가능한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만났다. 그러다 보니 막상 나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좋은 파트너를 찾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나한테 맞는 사람이 아닌, 주변에서 주워들은 결혼 상대 기준들로 만들어낸 유니콘 같은 인물을 찾았다.


이 격동의 시기가 조금 잠잠해진 무렵 십여 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결혼 상대를 찾아 헤맨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가만히 듣더니 "우리 다른 곳에서 같은 병을 앓았구나."라고 말했다. 병이라니? 바로 ‘약도 없는 결혼병‘ 이란다. 그 얘기를 듣고 너무 맞아서, 웃퍼서 깔깔 웃었다. 그녀 또한 오래 만난 연인을 결혼 상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이별했고 그 이별 후유증으로 수년을 마음 아파했다더라.


크리스마스이브에 값이 가장 올랐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값어치가 떨어지는 케이크에 여성의 나이를 빗대는 말, 30살이 된 여성을 계란 한 판에 빗대는 말.

여성을 나잇대 별로 상품을 매기듯 하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여성의 나이와 결혼의 상관관계가 내 무의식에 자연히 자리를 잡았고 서른이 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불안하게, 위태롭게 20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29살 끝자락이 왔고… 나는. 서른이 됐다. 하지만 서른이 돼도 나는 죽지 않았고 29살의 나와 다름이. 없었다. 다행히 결혼병은 잠잠해졌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함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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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