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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노 Oct 18. 2024

사찰에서는정숙해야한다지만,제직장생활은우당탕탕인걸요

8화_수처작주의 사람들


수처작주, 머무는 곳마다 주인의 마음으로 행하라.



 나는 본디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 마인드다. 

그러나, '기브 앤 테이크, 받은 만큼 준다. 준 만큼 받는다'는 간단한 이치지만 쉽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진 않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사찰 업무가 시작될 무렵, 회의시간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님, 수처작주란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말의 뜻은 어느 자리에 가던지 스스로 주인처럼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보살님께서 도량에 계신 동안은 수처작주의 마음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으로 답하긴 했지만, 마음속엔 질문이 떠올랐다.



주인처럼 일하면, 그에 맞는 주인 대접을 해주시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수처작주의 마음은 스스로 내야 한다. 누군가 시킨다면 그건 주인의 마음이 아니라 노비가 될 뿐. 그런 까닭에 나는 스님의 조언을 나 자신이 납득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노비가 아닌 주인의 마음이 될 테니까.






내 사무실은 기와불사 접수처와 함께 쓰는 곳이어서, 늘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하루를 시작한다. 마주 보는 쪽이 일주문을 지나 올라오는 계단이 있어, 쉬이 오가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요지다.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를 시작하는데, 창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얼른 고개를 내빼고 보니, 짧은 머리의 까무잡잡한 60대의 아저씨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며 서 계신다.

 오랫동안 새로운 사람이 오지 않던 사찰이라 그런지, 나는 요 근래 핫한 신입 멤버였다.


"사람 새로 왔다더니만, 자네구먼."

"예, 안녕하세요."


 아저씨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등장했던 것과 같이 휘릭 사라졌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훌훌 떠나는 것. 이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사찰을 좋아하는 하나의 이유기도 했다. 마주치는 이 마다 연유 묻지 않고 그저 반갑게 인사하고 보내주는 곳.


"국사장님, 예초하러 왔나 보네."


 마당을 내다본 공양주 보살님이 알려주신다. 곧 보살님 말씀을 인정이라도 하듯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8월 뙤얕볕에서 시작된 예초.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는 가까이서 들리는가 하면, 또 저 먼 곳에서 들리기도 했다. 소리로 짐작해 보건대, 온 도량의 잡초를 벨 마음인 듯싶었다.

  국사장님을 다시 뵌 건 점심공양 시간. 온몸에 땀과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였다.


 '아, 일하시는 분이구나.'


 나는 국사장님 몫의 공깃밥을 듬뿍 담으며 생각했다. 하긴, 이 넓은 도량의 잡초를 베려면 사람을 써야겠지. 흙 묻은 바지를 탈탈 털고 앉은자리에서 공양을 뚝딱 끝낸 국사장님은 또 부지런히 일어나 예초기를 짊어지고 잡초가 무성한 뒤뜰로 향했다.


그다음 날도, 또 며칠 뒤에도 국사장님은 묵묵히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무거운 예초기를 짊어지고, 잡초를 베며 도량을 닦아 나갔다.


'극한직업이네.'


혀를 내두를 만큼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늘 한 점 없는 무성한 잡초밭에서 아무리 직업이라고 한 들 고됨이 덜할까. 나는 큰 사발에 얼음 동동 띄워 한 사발 가져다 드렸다.


"어잇, 이런 것도 갖다 주고."


국사장님은 때 묻은 목장갑을 벗고, 시원하게 물을 들이켰다.


"일은 할 만 혀요?"

"아직 배우고 있는 단계라, 적응하고 있어요."

그러자 국사장님이 허허 웃는다.


"내가 여기 이십 년 넘게 다녔는데, 고즈넉하고 조용해서 좋아. 잘 왔어. 반가워요."

"이십 년 넘게요?"


국사장님의 말에 깜짝 놀란다. 20년 넘게 일을 했으면, 거의 평생직장이 아닌가?


"그럼. 내가 여기 신도 된 게 2001년쯤이었으니까. 오래됐지."

"신도셨어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되묻자, 국사장님은 되려, 그럼 뭐라고 생각했어요, 하신다. 나는 머쓱하게, 그러나 솔직하게 답했다.


"하도 열심히 일하시길래, 일하시는 분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러자 함박웃음이 터져 나온다.


"괜찮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아. 내가 맨날 이러코롬 입고 풀만 베고 있으니께, 뭔 잡일 하는 놈인갑다 하제. 사람들이 그럽디다. 그렇게 절가서 일하고 대우는 받냐고."


말을 멈춘 국사장님은 고개를 돌려 대웅전을 바라보았다.


"근데 남들 대우받아 뭣헙니까. 안 그렇소? 내 맘이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디. 여 와서 잡초들 싹 베고 가불믄 며칠이 맘이 편해야. 그게 좋아. 보살님, 반야심경 읽어봤소? 거기 보면 그런 구절이 있어요."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저를
'다름이 없는 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 제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욕망을 벗어난 아라한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시여, 저는 스스로 욕망을 벗어난
 아라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라고 생각한다면
부처님께서 '수보리가 고요한 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실로 그런 생각을 조금도 내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수보리는 고요한 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널찍한 바위 위에 앉아, 이제 뉘엿 하게 저무는 해를 등지고 앉았다. 나는 곰곰이 국사장님이 읆어주신 반야심경의 내용을 생각해 보았다.

...

어렵다.


"이것이여. 나는 여서 하는 일이 남들한테 대우받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 안혀요. 대우받으려고 일을 하는 순간 그것은 욕심이고, 그거야 말로 그냥 일꾼인거시여."


"수보리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지만,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여 탐내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으로 부처님이 '수보리는 고요한 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신 거네요."

"그라제."


허허 웃던 국사장님은 남은 물을 한 번에 들이켜고서 또다시 예초기를 켰다. 잡초가 말끔히 잘린 너른 들판이 주홍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주인의 마음이란 건 무엇일까. 국사장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고민해 보다가, 퍼뜩 그 표정에서 답을 찾았다.

 주인의 마음이란 건 사랑이다. 사랑하라는 것이다.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이 아닌, 아끼고 보듬는 사랑의 마음이란 거다.  나는 그제야 스님의 조언이, 주인처럼 열심히 일해라,라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아침마다 올라와서 법당을 청소하는 보살님, 때마다 도량의 풀을 손수 뽑고 가시는 거사님, 화장실 청소해 주시는 보살님, 공양간 음식을 도와주는 보살님 등. 여기엔 부처님 말씀을 사랑하고, 사찰을 사랑하는 수처작주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브 앤 테이크 마인드를 벗어나, 앞으로 나도 사찰을 사랑 할 수 있을까.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국사장님의 등을 보며, 나는 진심을 담아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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