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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노 Oct 19. 2024

사찰에서는정숙해야한다지만,제직장생활은우당탕탕인걸요

9화_여러 가지 얼굴의 용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여쯤 되었다. 불교 입문 교육도 들으며 나름 사찰의 일상에 적응하고, 자주 오는 신도분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물을 정도가 되었다.

아, 이 맛이지.

이렇게 별 다른 걱정 없이 맡은 바 일을 즐겁게 수행하는 것이 진정 보람된 직장이지. 오롯이 내 업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 대단치 않 일임에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예전 호텔에서 겪었던 고난들이 꿈처럼 아득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치유할 수 없을 것 같던 커다란 응어리가 작은 숨구멍하나로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흘러나가고 있었다.

평탄하게만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던 어느 날, 스님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보았다.


"보살님."

"예, 스님."


잠시 뜸을 들이던 스님께서 어렵게 입을 떼셨다.


"아침 공양 때 보니 공양주 보살님이 심기가 안 좋으시더군요."


공양주 보살님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뭐, 세면대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는데, 보살님께서 더 신경 써주시면 좋겠네요. 공양주 보살님도 많이 도와드리면 좋고요."


이게 무슨 말이지? 행간을 읽어보니 이것은 나를 문책하는 것이 분명했다. 무슨 세면대를 말하는 거지? 게다가 지금도 점심 공양 전 밥상 차리기를 도우고, 상을 물리면 설거지도 다 내가 하는데, 어떻게 더 공양주 보살님을 많이 도우라는 것이지?

혼란했다. 더불어 마음도 울컥했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혼나도 할 말이 없으나, 그렇지 않음에도 혼나는 건 억울하다.

억울한 마음을, 잘 풀어서 말로 해야 하는데, 지금껏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한 만큼 눈물이 나려 했다.

 큰스님이 부르면 동쪽으로 달려가고, 공양주 보살님이 찾으면 서쪽으로 달려갔다. 솔직히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건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내 주 업무도 아니다. 하지만 사찰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우고 성심껏 도와드리기로 했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 말씀은, 그것으로도 부족하단 말씀이실까? 속상하다. 지금 이상의 것을 더 기대하셨다면, 이 이상은 나도 부당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하기는 불가능하다. 서로 맞지 않는다면, 떠나야 할 수밖에.



승염이사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나는 중이 아니라, 보살이긴 하지만.


 


나는 찰나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예전 직장인 호텔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어땠었나. 갈등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그럴 용기가 없어서 그저 회피하지 않았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나를 괴롭힌 직원은 살아남고, 나는 퇴사했다. 그 이후엔 또 어땠었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방황하지 않았나. 그래, 그래서 내가 미륵부처님께 번뇌를 없애달라 발원했었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을까? 아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나는 성장했다.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해야 할 말을 못 하는 건, 또 나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다.

 

"스님, 제 나름대로 현재 제 본 업무와 더불어 사 중 일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가 마음에 안 드실 수는 있으나, 저는 부끄럽지 않게 일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랬다.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스스로 마음에 걸림이 있다면 이리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스님께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셨다.







공양간으로 향하자, 공양주 보살님이 출근했냐며 반기셨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화가 나셨다더니,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보살님, 아침에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침에?"


보살님이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별일 없었는데."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건 대체 뭘까. 안 되겠다 싶어 대놓고 세면대가 더러웠다는 데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는 찰나, 밥상을 닦으며 보살님이 말을 꺼냈다.


"아휴, 맞다. 아침에 보니 누가 화장실에 들어와서 엉망을 만들어 놓았더라고."


이거다! 나는 물었다.


"공용화장실이요?"


화장실은 보살님과 내가 함께 쓰는 공용 화장실이 하나, 보살님만 쓰는 전용 화장실 하나 해서 두 개였다.


"내 화장실 말이야. 아무래도 들고양이가 들어왔다 간 거 같아. 정리하느라고 혼났네."


보살님은 냉장고를 열기 위해 몸을 돌렸다.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는데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니, 내가 쓰지도 않는 화장실에 고양이가 와서 난리 펴 놓고 간 것을
어떻게 알고 정리를 해야 한단 말이야?



마음에 심술이 생겼다. 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처님이 계신 사찰에서 이런 못난 마음이라니 가시 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다.

 나는 밤새 고민해 봤다. 지금 일이 너무 좋지만, 서로 바라는 바가 다르면 계속 다니긴 힘들지 않을까 하고. 영화에서나 소설에서처럼, 언제나 찾아오는 클라이맥스는 역시 갈등이다. 나는 이미 기, 승, 전을 넘기고 벌써 결을 향해 가는 듯했다. 다음날, 스님과 다시 만나기 전까진.




죄송합니다. 보살님.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마음 상하셨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쉰다섯의 주지스님이 내게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나도 깜짝 놀라 머리를 수그렸다. 내가 예상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밤새 고민했던 게 우스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만큼, 스님께서 내게 사과할 것이란 상상은 천의 하나도 하지 못했던 터였다.


"그날 아침에 공양부 보살님의 푸념 섞인 소리를 듣고, 보살님께서 조금만 더 도와주시면 좋지 않을까 한 마음에 말을 했습니다. 보살님께서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시는데 제가 괜한 말을 해서 마음 상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스님."






다른 직장과는 달리 사찰에서 유독 긴장을 많이 한 이유는 바로 '스님'이라는 아우라 때문이었다. 내 영혼을 꿰뚫어 보고, 잘잘못을 낱낱이 알 것 만 같은 기분. 더구나 스님과 대화해 본 것은 이곳이 처음이었으니 오죽했으랴.

멀고도 멀게만 느껴지던 스님이라는 아우라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함께 웃고, 고민하고, 스스럼없이 고민을 터놓고 대화하면서. 그때 웃기게도 내가 느낀 것은 '아, 스님도 사람이구나'였다. 그렇게 깨닫자 예전에 느꼈던 아우라가 그저 스님이라는 인간을 초월한 느낌의 막연한 두려움이었다면, 지금은 사람으로서 다가오는 경외를 느낀다.

 같은 사람으로서, 저런 삶을 선택하여 살 수 있을까. 나는 마늘과 쑥을 버티지 못하고 동굴 밖을 뛰쳐나간 호랑이처럼, 며칠 내 도망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수행을 해온 것이다. 나와 같은 욕구와 욕망을 가진 사람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한다. 실수하지 않는 삶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고, 나아가 그것을 정정하려는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님도 실수할 수 있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십 년이나 차이 나는 사람에게 고개 숙여 사과할 수 있는 것은 용기이며 자신의 선택이다. 그렇게 살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참 어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지, 사람인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어떠한 용기를 갖고 살지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바른 길로 가는 용기를 선택하고 싶다.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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