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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노 Oct 25. 2024

사찰에서는정숙해야한다지만,제직장생활은우당탕탕인걸요

10화_ 사찰을 찾는 사람들과 소원 하나


사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몇 십 년을 꾸준히 불심으로 다니는 사람.
근처 놀러 왔다가 시간이 남아 들린 사람.
혹은
간절한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어릴 적엔 엄마를 따라 사찰을 다녔다. 엄마도 딱히 신자는 아니었지만, 휴가지 근처에 절이 있으면 꼭 들리곤 했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사찰은 그야말로 신비한 곳이었다. 거대한 사천왕의 부리부리한 눈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눈알을 굴릴 것만 같아 오금이 쭈뼛했다.

 대웅전은 어떤가. 숙연히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과 번쩍이는 불상의 위엄에 감히 들어서지도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다.

 벽화를 보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강렬한 색채의 그림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혼자서 생각에 잠겨있으면, 금세 '이제 내려가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처럼 재밌고 신기한 사찰에서 내가 이해가 안 가던 것은 제일  처음 만나는 문, 일주문이었다. 문도 없는 게 왜 일주기둥도 아니고, 일주문일까.

 어른이 되고 나서 일주문이 뜻하는 바를 검색해 보았다. 네 개 혹은 두 개의 기둥이 일렬로 세워 놓고 지붕을 얹는 독특한 구조, 일심을 상징하는 문. 일주'문'인에 왜 문이 없느냐 하는 질문은 역시 어린아이의 시선에만 걸리는 문제였을까.







108배를 하고 싶다고 사찰로 연락이 왔다. 참가 인원을 보니, 10살짜리 꼬맹이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우려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108배를 아이가 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어머님이 호호 웃으며 답하신다.


"이거, 애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신청한 거예요."


10살 짜리 꼬맹이, 아니, 스스로 108배를 하고 싶노라 결정하였다면 '짜리 꼬맹이'가 아니다. 어엿한 신도이다.  약속한 날이 되자,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지만, 진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이는 멋진 10살 신도님이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등장하였다.


스님과 마주한 아이는 대뜸 묻는다.  


"스님, 일주문은 '문'인데 왜 '문'이 없나요?"


역시! 어릴 적 나처럼 10살 신도님의 눈에도 그것이 궁금했나 보다. 나도 귀를 쫑긋하고 기울인다.



그러자 스님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부처님 도량엔 누구나 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사람도, 동물도, 바람과 햇살까지도 말이다."



스님의 답변에 속으로 감탄하였다. 10살 신도님도 무언가 알아들었다는 듯 기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부처님의 도량엔 누구나 올 수 있어야 한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면 안 된다. 누구나 사찰이 주는 편안함과 위로를 받으러 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일심을 상징한다는 뜻도 좋았지만, 어쩐지 누구나 올 수 있도록 문이 달려 있지 않는 일주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사찰에 온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미륵부처님을 소개한다. 내가 이곳에 지원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번뇌를 없애준 그 시무외여원인을 하고 계신 미륵부처님이다.


"여기 계신 부처님이 취하고 계신 수인이 두려워하지 말라,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이에요. 오신 김에 꼭 삼배하고 간절한 소원 하나 발원해 보세요."라고.


어느 날, 중학생 친구가 절을 하려다 말고 물었다.


"근데 부처님한테 부자 되게 해달라고 빌어도 돼요? 아까 스님이 욕심을 버리라고 하셨는데."


중학생 친구의 마음에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스님의 말씀이 충돌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예전 스님에게 들었던 대로 조언해 준다.


"법우님, 그럴 때는 세상에 널리 베풀 수 있도록 부자가 되게 도와주세요,라고 발원해 보세요."라고 하자, 중학생 친구가 깨달은 듯 아, 탄성을 내뱉더니 바로 삼배를 올린다. 나는 농담 섞인 어조로 한마디 덧붙인다.


"부자 되면 정말 꼭 널리 베푸셔야 해요."

"당연하죠."


아이가 씩 웃더니 법당을 나서며 말한다.


"근데 빌고 싶은 소원이 너무 많아요."







나는 중학생 친구가 나간 법당에 홀로 남아 정리를 하며 생각했다. 간절한 소원 하나. 내가 그리 말했지만, 막상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때그때마다 바라는 바가 다르기도 하고, 평상시에도 얻고 싶은 것은 소원은 너무 많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부처님께 발원했다가는 그야말로 욕심쟁이일 것이다.

 걸레질을 멈추고, 온전히 생각에 빠져버렸다. 하나만 빌 수 있는 간절한 소원 하나. 나는 무엇을 빌까.


역시 하나만 꼽자면, 그것은 건강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저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라고 빌어야겠다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눈에 밟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만큼 절친한 내 사람들. 그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은?

 그럼 이렇게 수정하자. 가족과 제 친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옳지, 이거다. 나는 조금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걸레질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곧 마음속에, '가족'과 '친구'면 소원이 하나가 아니고 둘 아닌가? 하나의 간절한 소망을 빌어야 하는데, 두 개면 안되지.

다시 고민에 쌓였다. 그러자 번뜩 해답이 생각났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재빠른 꿩처럼 생각 하나가 나를 덮쳤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
그럼,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마음에 턱이 탁, 하고 걸렸다. 나를 힘들고 괴롭게 했던 사람은? 그들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나? 무어라 대답도 하기 전에 이번엔 맹렬한 매 가 덮치듯 머리를 울렸다.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바랄 정도의 나쁜 마음을 가질 수 있나.'


소름이 쭈뼛섰다. 아무리 그들을 안 좋아한다고 한들, 불행을 바랄 정도는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들의 불행까지 바라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못된 마음을  품고 살고 싶지 않다.


간절한 소원하나를 생각해 보려던 것인데, 나는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응어리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그들이 용서되었다는 것도.

나는 홀가분해졌다. 비로소  나의 간절한 소원 하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이다.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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