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채운 시간들
누구나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기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가족과 관련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그 기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외국에서 지내던 시절, 저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많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 모두 가족과 떨어진 상태였죠. 그 가운데는 부모님의 부고를 겪은 친구, 이혼이나 투병, 파산 같은 일을 경험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외국에 홀로 떨어져 이런 소식을 접한 이들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런 아픔을 안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같은 상처를 지닌 친구들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갔습니다. 특히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묘한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부모님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들이 받지 못한 사랑을 저라도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상처를 경험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랑은 시작된다"는 말처럼, 제가 겪은 아픔을 그들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친구들도 알아줬기에, 우리는 15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락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부족하고 서툴렀지만, 모든 순간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대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에게 슬픈 일이 있다고 들리면 지체 없이 택시를 탔습니다. 어떤 일인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 믿었습니다.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주 맛있는 음식을 사주며 그들에게 작은 행복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 순간에도 아깝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생 같은 친구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도 위로를 받는 듯했습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선물을 안겨줍니다. 저 자신이 부족했던 사랑을 채우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때, 제 삶도 더 따뜻해졌습니다.
‘가족과 관련된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는 기준은 저를 단순히 과거의 아픔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 자신을 돌아보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이 기준은 관계를 시작할 때의 중심을 잡아 주었고, 그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을 향한 나의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제 모습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할 수 있었고, 그 진심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관계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글에서 다룬 기준을 바탕으로, 다음 글에서는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 그 대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