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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물꼬기 Oct 04. 2023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어느 금요일 밤 12시, 모두가 잠든 불금, 나는 주방 옆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주방 테이블 왼쪽에는 푸른 조명이 빛나는 해수 어항 있고, 어항 속에는 니모 부부, 엉뚱한 블루탱(도리), 그리고 스타폴립 산호가 물살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 야밤에 ‘아빠 미소’를 장착하고 뭘 하고 있는 걸까?


주방 바닥에는 해수어항의 최종 단계인 ‘솔레노이드 밸브(*)’ 제작을 하기 위해 각종 어항 용품, 배관, 밸브 공구, ‘RODI 설계도’ 등이 예쁘게 펼쳐져 있다.


이 밸브만 완성되면 드디어 완벽한 해수 어항이 완성되는 것이기에 불금을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 솔레노이드 밸브는 전기신호의 ON/OFF에 RODI 시스템의 물의 공급과 차단을 해주는 장치. 물 보충을 자동을 해주어 PH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기능)


이 작업은 ’RODI 설계도’의 절차에 따라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인두와 납을 이용해 솔레노이드 밸브와 전선, 플러그를 제작했고 RODI 시스템과 TDS 시스템에 연결했다.


드디어 마지막 단계, 전기 ON/OFF 테스트를 하여 이상 없이 잘 되는 걸 확인했다. 모든 작업이 완료되어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4시 30분, 니모와 도리도 하품을 하고 있었다. 어깨가 뻐근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점점 진화하고 있는 해수 어항을 보니 뿌듯했다.


사실 나는 새집으로 이사 가면 딱 어항 1개만 놓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귀엽고 깜찍한 니모, 물살에 흩날리는 산호,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푸른 조명을 볼 때마다 해수 어항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벗어날 수 없었다.


“도대체 나는 다른 물욕은 없는데, 왜 유독 어항 욕심은 버리지 못할까?”


생각해 보니 어항을 꾸미며, 내가 구상한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과정을 계속 즐기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증명하고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다음날 아침 8시,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토요일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다. 아침 대충 먹고, 9시 30분 출발하여 11시 30분 가족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탕수육을 먹기 위해 둥그런 테이블을 내 쪽으로 돌리는데 갑자기  ‘해수 어항 밸브’ 생각이 번뜩였다.


내가 솔레노이드 밸브 스위치를 ON 했나? OFF 했나?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ON 했다면 큰일이었다. 만약에, 열어 두었다면 물이 계속 공급되어 물난리가 났을 것이다. 아니야 아니야 닫아놓았겠지 철저한 내가 그럴 일 없어…


하지만 점점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새 아파트에 어항 물이 넘쳐 거실 마루에 스며든다면 나는 집에서 쫓겨날게 뻔했다. 용왕님~ 제발 살려주세요.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급하게 집으로 향했다.


운전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주방에 콸콸콸 물이 흘러넘치고 있는 상황이 떠올랐다. 자동차 핸들에는 땀이 배었고 심장이 요동쳤다.


10시 50분, 어떻게 운전해서 왔는지도 모르게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는 화장실이 급하다고 거짓말을 하고 먼저 엘리베이터를 탔다. 오늘따라 느리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심장 뛰는 소리로 가득 찼다. 드디어 심판의 문이 열렸다.


내리자마자 달려갔다. 왼쪽으로 빠르게 돌아 문 앞 키 패드를 올리고 비밀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문이 열렸다. 이상하게도 공기가 습했다.


신발을 빠르게 벗자마자 좌측 복도로 뛰어갔다. 부엌 어항 쪽으로 방향을 들어 왼발의 앞꿈치로 디뎠다. 순간, 아래를 보니 ‘철썩 ~ 소리’와 함께 축축하고 기분 나쁜 소금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 아 아 미쳤다. 어항 물이 넘친 것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를 어쩌란 말이냐! 큰일 났다.


바닥 누수되어 아래층에 물이 새면 돈이 수천만 원 든다는데, 와이프가 지금 올라오고 있는데 어쩌지 어쩌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발만 동동 굴렀다. 머릿속은 오만 생각과 후회가 밀려오고 있는데 갑자기,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띄.띄.띄.띄띠.띠. 띠리리’ 죽음의 문이 열린 것이다. 갑자기 나는 어디서 이런 힘이 생겼는지 모르게, 1초 만에 세탁실로 뛰어가 걸레를 바닥에 ‘다다닥’ 던졌다.


와이프가 오고 있는 복도 쪽으로 물이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그 순간, 우측 복도에서 아이들과 와이프가 해맑게 웃으면서 오고 있는 모습이 스로우 모션처럼 보였고, 와이프의 차가운 비명이 날아왔다.


"아니 이게 도대체 다 뭐야? 바닥에 물이야? 이게? 뭐야 뭐야 어떻게 된 거냐고?”

“새집인데 강화 마루에 물 들어가면 썩어 변색된다고 어떻게 어떻게... ” 와이프는 열폭했다. 그리고 울상이 되었고 나를 원망의 눈길로 쳐다봤다.


"금요일 야근하고 작업하느라 마지막 어항 밸브를 못 잠가서 물이 흘렀어…"

"보니까 다행히 물이 그렇게 많이 흐른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 " 내가 빨리 말리고 최대한 물기 제거해 볼게.


얼굴이 빨개져 안방으로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럴 만도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주방 공간의 한켠을 힘들게 나에게 양보했는데, 그곳의 마루가 소금물로 점점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세 시간 동안, 마른걸레로 물을 훔쳐 양동이에 짜고, 선풍기와 헤어 드라이로 바닥을 말렸다. 짠내가 진동을 하고, 습하고, 찐득거리고, 그야말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땀이 비 오듯 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다 이제 그만 때려치우고 싶었다. 이 사건으로 결국 도리, 파이어 쉬림프가 머나먼 용궁으로 갔다. 나 때문에 소중한 생명들이 죽었다. 눈물이 났다.


어느 정도 수습하고, 주방에 앉아 멍하니 빈 어항을 바라보고 있는데 안방 문이 열렸다. 와이프가 터벅터벅 다가왔다. 드디어 올 게 왔다. 두려웠다. 무슨 말을 할지… 이대로 물생활 인생은 끝나는구나…


와이프가 다가와 살며시 내 손을 꼬옥 잡았다.

"화내서 미안해, 여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이 정도라 정말 천만다행이야. 용왕님이 우리 집을 보호해 주시네."

"도리와 파이어 쉬림프는 용궁에 잘 갔을 거야”


이렇게 물생활 최대의 위기는 와이프의 넓고 넓은 아량으로 지나갔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고 와이프에게 고맙다.


나의 사랑 해수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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