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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n 21. 2024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급한덕은 똑순애, 똑순애는 급한덕. 서로에 대해 시를 써보자 했다. 순한커플은 한숨 푹. 어이상실한 표정으로 요괴딸을 멀뚱히 본다. "서로를 생각하면서 쓰세요." 어떤 가이드 없이 막무가내로 소재를 던지고 무작정 쓰라 한다. '너라면 쓸 수 있겠니?'  

  

  "잘하면 좋지. 못 하니까, 하고 싶지 않은 거야." 

   똑순애가 못 참고 볼멘소리를 한다. 급한덕은 쩝쩝 입맛을 다시며 눈을 감는다. 

  "나 잔다고."  

   안 쓰겠다는 건가. 잠시 기다리니 눈을 뜨고 적기 시작한다. 

  "또...또? 똑?"

  똑순애로 시를 시작하려나 보다. 급한덕은 수월하게 적어나가나 싶더니 한 소리 한다.   

  "사랑합니다.라고 쓸 거여. 뭘 쓰겠어. 생각이 안 나."

  그만 쓸 줄 알았는데 밖에서 바람 쐬고 온다며 나간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들어와서 연필을 잡니다. 

  

  "뒤늦게 생각이 났나 봐."

   똑순애가 신기한다는 투로 말한다. 여즉 안 쓰고 있는 똑순애를 보더니 급한덕이 한 마디 한다. 

  "왜 똑순애는 안 써?"


  그동안은 똑순애가 시를 쓰든 말든 관심도 없었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본인에 대한 시를 쓰라하니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똑순애 표정은 오묘했다. 이곳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듯한. 살짝 멍해 보이는. 


  드디어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끄덕이기에 요괴딸이 받아 적어 주었다. 똑순애는 급한덕을 만나 고생한 이야기를 읊어대다 설움에 복받치는 모양이다. 똑순애가 살아낸 고되었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요괴딸은 급한덕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도 한 번 써보자 했다. 이번 시는 현재형으로 완성되었다. 


  급한덕이 자신이 쓴 시를 먼저 낭독했다. 


  고생 많이 한 똑순애     ㅣ급한덕


  똑순애는 정말 좋은 사람인데

  갑자기 몸이 많이 아파서 정말

  마음이 아파요.

  지금 빨리 완캐되길 빌겠습니다.



  "똑순애는 좋은 사람인데" 시작부터 요괴딸은 눈물이 팡 터졌다. 급한덕의 시는 요괴딸을 울리는 재주가 아주 출중하다. 더욱 감동적이었던 건, 뒷면에  시 한 편이 또 적혀 있었다. 똑순애에 대해 두 편의 시를 완성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고심하고 진심을 담아내려고 애쓴 흔적이었다. 


  제목을 정해보자 했더니, 똑순애는 자기 시 제목은 생각 안 난다 하더니, 급한덕 시 제목을 홀랑 말한다. "고생 많이 한 똑순애 라고 해." 똑순애는 오늘 기승전고생이다. 급한덕은 똑순애가 지어 준 제목이 뭔가 탐탁지 않아 보였지만 일단은 그렇게 하겠다 한다. 


살림을 잘하고 있는 급한덕님     ㅣ똑순애


똑순애가 몸이 아파서 급한덕이 고생이 많아요.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병원에도 데리고 다니고 먹고 싶은 거 다 사다 주고

화도 잘 내고 화도 잘 풀리고 

빈손 지고 만나 가지고 서로 알뜰하게 해서 지금은 평등하게 잘 살고 있어요.

나를 도와줘서 고마워요.



  서로를 "급한덕, 똑순애"라고 부르는 게 귀여웠다. 처음에는 요괴딸만 그렇게 불렀으나 지금은 서로를 똑순애, 급한덕이라고 부르는 게 무척 자연스러워졌다. 급한덕 필사 노트를 보니 받침 빼먹고  급하게 쓴 티가 나는 낱말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요괴딸이 지적하니 급한덕은 "급한덕이라 그래." 웃으며 말한다. 아빠, 엄마가 아닌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우리는 절친이 되어가고 있다. 


  "사랑합니다.라고 쓸 거여? 뭘 쓰겠어?"


  쓸 거 없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한 발 늦게 다르게 읽힌다. 어쩌면 급한덕이 시에 제일 담고 싶었던 말이 사랑합니다. 아니었을까. 급한덕은 똑순애에게 "사랑합니다." 외에 다른 말은 필요 없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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