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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n 27. 2024

나의 비

  비 짝꿍 우산 


  비 오는 날 외출이 좋아진 건, 지금은 없는, 비 짝꿍도 한몫했다. (보고 싶다)  제주를 떠나, 순천에 도착했을 때, 무슨 마음에서 인지 우산부터 사고 싶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남보다 더 축축하고 끈끈한 몸을 가진 인간인데 (예전 남자친구는 여름의 나를 끈끈이주걱이라고 부름) 비까지 오면 몸과 마음은 추적하고 눅진했다.

 

  우산의 힘을 느낀 건, 좀 더 과거로 가야 한다. 20대 중후반 학습지 교사를 했을 때다. 스승의 날에 회원 어머니가 명랑한 색감의 주황 우산을 선물해 주었다. 그전까지 나는 우산을 선물해 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우산을 선물한다고? 우산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기분이 묘했다. 리고 그날 처음으로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비가 오는 날 그 우산을 펴면, 명랑해졌다. 우산 크기만큼의 화사한 주홍빛 작은 세상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명랑 주황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용을 쓰면서 다녔지만, 결국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게 잃어버렸다. 지하철에 놓고 내린 것으로만 추정한다. 하지만, 우산의 명랑한 색감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부터 비는 귀찮고, 불편하면서 나를 처량하게 만드는 나쁜 엑스였다. 


  장마철에는 젖은 발로 회원 집에 들어가 발을 닦고 수업을 해야 했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 때문에 쫄딱 젖은 채로 회원 집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기도 했다. 솔직히 비가 싫고, 거추장스럽고, 짜증 났다. 한마디로 비는 내게 별로였다. 


  순천으로 이사해 살면서 비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 밭농사를 하는 아빠에게 비는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 자체였다. 비가 곡식을 키워내고 맛이 들게 한다. 비 오는 때를 계산해 씨를 뿌리고, 고구마 순을 심고... 옥수수가 영그는 여름이 다가오면 비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때맞춰 오면 아빠는 마당으로 나가 비를 맞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올봄, 두 달 가까이 가뭄이 들었을 때, 자다가 잠이 깨면 귀를 쫑긋 세우고 비가 오나 안 오나 숨죽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부터 나 역시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도 엄마도 똑같았다. 덕분인지, 비 오는 소리는 텔레비전 소리를 뚫고도 기막히게 알아낸다. 


  그런 와중에 김산하 작가의 ‘비숲’을 읽고는 비를 생명 자체로 여기게 되었다. 결심도 아니고 의지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비가 생명으로 다가왔다. 비가 와도 나갔다. 우중산책도 즐기게 되었고, 비 온 뒤 나무와 풀, 흙냄새. 특히 나무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 나무의 색감이 선명해지고, 싱그러워지는 잎사귀들. 그 속을 걷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싱그러운 생명체가 되는 듯했다. 이제껏 나를 축축하고 찝찝한 인간 취급했으나, 이제는 싱그러운 생명체로 대하게 되었다. 


  어릴 때는 비가 오면 놀이터에 모여 우산 집을 짓고 모래 구멍을 파며 놀았다. 지금 그렇게 놀 수 있는 인간 친구는 없지만, 내 짝꿍 우산이 있었다. 접혀있었어도, 짝꿍 우산의 아우라는 감춰지지 않았다. 베이지보다 살짝 밝은 아이보리 톤의 장우산. 펜 드로잉으로 자유롭게 그려진 꽃들이 우산 한가득 쪼르륵 정렬돼 있다. 꽃무늬가 외국어를 필기체로 휘갈겨 쓴 글씨 같이 보여 우산을 펼치면 반가운 사람이 보낸 편지가 펼쳐지는 듯도 했다. 


  짝꿍 우산을 보면 함께 걷고 싶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이 우산만큼은 잃어버리지 않고 오래도록 지켜 내리라. 함께 하리라. 비 오다 도중에 그치는 날에는 나답지 않게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렸다. 비가 올 것 같지 않아도 흐리기만 하면 괜히 우산을 들고나갔다. 거추장스러워서 손에 뭐 드는 게 싫은데 내 짝꿍은 달랐다. 손에 착착 감겼다. 내 짝꿍 우산은 남달랐다. 


  이쯤이면 눈치챘겠지만, 지금 내 짝꿍 우산은 없다. 바보같이 뒤에서 누가 우산을 펼치는데, 그 소리를 듣고내 짝꿍인 줄 알고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가 운동 갈 때 들고나갔다가 두고 온 모양이다. 슬펐다. 정말 짝꿍을 만난 것처럼 내가 좋아한 우산이었는데... 내 짝꿍 우산과는 현재형일 줄 알았는데 과거형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내 짝꿍은 어디 가서도 사랑받을 것이 분명하다. 내 짝꿍 우산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그동안 비 오는 날 나와 함께 있어줘서 든든하고 고마웠어.


  지금은 원고지 안에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의 한 구절이 들어있는 접는 우산이 있다. 양산 대용으로 쓰려고 인터넷 서점에서 포인트로 구매했는데, 짝꿍 우산 분실 이후, 이 우산을 쓰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운동장에서 아리다운 보랏빛 우산을 하나 주워왔다. 우산을 말리려고 마당에 펴 놓았는데, 풍성한 보랏빛 꽃송이 마냥 어여뻤다. 짝꿍 우산이 가고, 꽃봉오리 보라 우산이 왔다. 짝꿍 우산 어디 있더라도 부디 건강하게 잘 있기를... 나는 너의 안녕을 기도할게. 그리고 기억할게. 까꿍! 나의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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