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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l 07. 2024

너의 끝

  그는 약속장소가 표시된 약도를 여자에게 보냈다. 논현역 근처의 큰 도로가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남자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프랜차이즈 카페를 굳이 가지 않는다. 동네 골목에 숨어들어있는 작은 카페들을 좋아하는데, 약속장소가 여자에게는 의외였다. 


  여자는 끝내자 말했고, 그는 약간 비뚤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떤 말들을 꾹 눌러 참아내고 있는 듯했다. 끝까지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예전처럼 붙잡지 않았다. 끝을 고하고 나니 더 할 말이 없었다. 


  남자가 일어나자 말했고, 카페에서 나왔다. 합의하에 끝났는데, 여자는 실감 나지 않았다. 예전처럼 그의 손을 잡고 밥을 먹으러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익숙함이란, 그런 것이었다. 여자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는 악수하고 헤어지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악수를 했고, 3년 반의 사귐을 끝냈다. 


  남자가 먼저 돌아섰다. 여자는 남자의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는 여자와의 끝 장면을 미리 생각해 두었던 걸까. 옅은 미소로 악수를 하자며 손을 내미는데, 미리 한 약속처럼 다가왔다. 걸으면서 울고 있었다. 울지는 몰랐다. 말할 때도 덤덤했고, 돌아서서 몇 걸음 걸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줄줄줄 흐르는 눈물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갈 곳을 잃어버린 느낌. 


  숨고 싶었는데 마침 타로점을 보는 천막이 보였다. 저기라면 괜찮겠다 싶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숙인 채 들어갔다. 보라색 머플러를 두른 타로 마스터가 미소를 지으며 여자를 맞이했다. 타로 마스터는 여자의 불규칙한 호흡을 읽어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여자의 호흡은 차분해졌다. "이제 시작해 볼까요." 타로 마스터가 질문은 구체적으로 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데 여자는 또다시 눈물범벅이 되었다. 


  "마음껏 울어요. 우는 것도 배가 든든해야 울죠." 여자에게 군고구마 하나를 건네주었다. 


  여자는 군고구마를 받아 들며 웃어버렸다. 이별을 했고 엉엉 울다가 그렇게 냉큼 입으로 고구마가 들어갈 줄도 몰랐다. 다디단 군고구마를 한 입 먹으니, 신기하게 마음이 진정되고 눈물이 잦아들었다. 놀랍게도, 여자가 한 질문은 시작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을 떠나 살고 싶은데 어떨까요?”  

  "이동수가 있어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어쩌면 여자가 고른 카드와는 상관없이 여자의 마음을 읽어낸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헤어진 이후, 서로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사귈 때도 헤어진 후에도 꿈에 한 번도 나오지 않던 그가 며칠 전 꿈에 나왔다. 꿈에서 깨었을 때, 여자는 옅은 안도감에 둘러싸였다. 꿈속 그는 다정하고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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