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급한덕. 급한덕은 가만히 누워 있더니 몸을 발딱 일으키며 시를 쓰겠다 말한다. 요괴딸이 피곤하지 않냐니, 하나도 안 피곤하다며 시를 쓴다. 급한덕은 "제목은 나중에!"라고 외치며 한 줄 한 줄 적어 나간다.
50년 전 방한덕 ㅣ 급한덕
5십 년 전
기와공장 일하러 갔습니다
시멘트 기와를 하루에 칠팔백 장
미는데 돈은 2만 원 정도
온종일 서서 밀고 나면
팔과 다리가 무너질 것 같고 그래도
계속 일을 해야하니 너무나
힘든 일이지요
제가 17살 때 그런 노동을 하였습니다
정말 힘들더군요
급한덕이 고생스러웠던 옛날 이야기를 꺼낼 때면 똑순애는 "그걸 시로 쓰면 되겠네." 한다. 급한덕은 꽤나 버라이어티한 삶을 살았고 시장에 가서 "좀 더 달라. 여기 단골이다." 등 의외로 너스레를 잘 떠는 것도 그간 삶과 연관이 있다. 급한덕은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 중에서 남의 집 머슴살이가 제일 힘들었다고 한다. 급한덕은 고생한 이야기를 시로 풀어내기 시작했는데, 요괴딸은 급한덕에 관해 알 수 있어서 좋으면서도 고생을 너무 많이 하면서 살아 온 게 짠하기도 하다.
자연보호 엄명수
내가 이학년 때
산에 가서 친구들과 놀기로 하였다
산에 가니
큰 아카시아나무에
자연 보호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그 나무에는
못이 박혀 있었다
강원 정선 사북초등학교 5학년 엄명수, 1981
<엄마의 런닝구>, 엄명수, 자연보호
어린이들이 쓴 시를 읽으면 뜨끔. 콕 찔릴 때가 많다. '자연 보호' 시의 두 행 '그 나무에는 못이 박혀 있었다'는 뇌리에 박혀 계속 기억이 난다. 이 시는 자연을 보호하라 하면서 나무에 못을 박는 모순적인 어른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연, 순한커플은 이 시를 어떻게 읽어낼까. 시가 어땠냐. 물으면 눈치만 실실 보던 둘이었는데 이 시를 읽고 나서는 서로 자기 말하느라 바쁘다.
"나무에 못을 박으면 안 되지. 줄로 걸어가지고 나뭇가지에 매달아 놔야지." 똑순애가 대안을 제시하자, 급한덕은 "나무 안 죽어. 괜찮아." 아마도 급한덕은 쉽게 죽지 않는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