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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노트] 두 개의 고독이 만날 때

함께 있어도 혼자인 우리에게

by 낙원
잔나비 - 외딴섬 로맨틱: "먼 훗날 그 언젠가 돌아가자고 말하면 너는 웃다 고갤 끄덕여줘" 현재의 편안함이 미래까지 이어지는 사랑을 담아

지난 밤, 여자친구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서로에게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넷플릭스를, 나는 게임을. 한 시간 넘게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억지로 대화를 만들어내려 하지 않아도, 그 고요함과 은은한 샴푸향, 그리고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것 자체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어색함을 느끼면 그 어색함을 풀어보려고 억지로 아무 말이나 붙이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그냥 서로의 존재를 편안하게 느낀다. 함께 있어도 각자의 세계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자유로움.

문득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무리 속에서도 유리벽 너머에 있는 기분이었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도, 친구들과 웃고 떠들 때도,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있을 때조차 느끼는 그 미묘한 거리감. "왜 나만 이럴까?" 하며 자책했던 밤들이 많았다.

대학생이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모든 사람과 깊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고, 완전히 이해받아야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더 가까워지려고 애썼고, 더 많은 것을 나누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깊은 외로움이 밀려왔다.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가 절망으로 다가왔다. "나는 평생 혼자일 수밖에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밤을 지새우게 했다.

요즘은 다르다. 함께 있어도 각자 혼자인 순간들이 있지만, 그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평생 찾아 헤맸던 답일지도 모른다. 함께 있어도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깨달음.

요즘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이 있다. 굳이 억지로 대화를 만들어내려 하지 않아도, 침묵 자체가 편안하다. 함께 있어도 각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유로움. 이것이 12화에서 썼던 '함께 놀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만들었다.

진짜 함께 놀 수 있는 관계란,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이해해주는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순간을 함께하지 않아도, 각자의 고독을 존중해줄 수 있는 관계.

릴케의 말이 떠올랐다. "사랑은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하고 경계하며 인사하는 것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차갑게 느껴졌다. 사랑이 그렇게 거리를 두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깊이를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은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존중하면서도 따뜻하게 연결되는 것이었다.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상대방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완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자유롭게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여도 온전하지만, 함께할 때 더 빛나는 사람.

어느 날 깨달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외로움까지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상대방이 나와 함께 있어도 가끔 혼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것이 나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

지난 밤 소파에서 각자 다른 생각에 잠겨 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곳에 몰입해 있던 우리. 서로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동행.

둘 그림자 사이에 빛이 세어나갈 틈이 있어도 괜찮다. 그 틈이야말로 우리가 여전히 두 개의 온전한 존재라는 증거일 테니까.

혼자인 것과 외로운 것은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안다. 함께 있어도 각자 혼자인 순간들이 있고, 그것이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그 깨달음 위에서 오늘도 우리는 서로의 고독을 따뜻하게 지켜본다.

두 개의 고독이 만날 때, 비로소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일까?

오늘도,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에서.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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