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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노트] 우리는 모두 무명작가였다

매일 한 편씩 써내려가는 나의 이야기

by 낙원
이승윤 - 언덕나무: 평범한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이 때문이다."

언젠가 봤던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본 문장이다.

문득 생각해본다.
나는 나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을까.

성과가 있을 때, 남들에게 인정받을 때. 되돌아보니 언제나 조건이 있었다.

새벽 5시, 동네 빵집에서 반죽을 치대는 사장님의 손길이 있다. 어제와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는 오늘도 정성스럽게 반죽한다. 첫 손님이 올 때까지 아직 세 시간이 남았지만, 그의 하루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하철 2호선 마지막 차에서 바닥을 닦는 미화원 선생님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이지만, 그는 구석구석 놓치지 않는다. 내일 아침 첫차를 타는 사람들이 깨끗한 차량에서 하루를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 중환자실에서 밤새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선생님이 있다. 가족도 의사도 모두 집에 돌아간 깊은 밤, 그는 혼자 남아 누군가의 호흡을 지켜본다. 생명의 온도를 감시하며 새벽을 기다린다.

그들의 학력이나 월급이나 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정성스럽게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누군가 말했다.


"정성스럽게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작가이다."

빵집 사장님은 매일 아침 새로운 이야기를 굽고 있다. 따뜻한 빵 한 조각에 새벽의 정성을 담아서. 미화원은 매일 밤 깨끗한 시를 쓰고 있다. 걸레질 한 번 한 번이 내일을 위한 문장이 되어서. 간호사는 매일 생명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다. 누군가의 호흡을 문장 삼아서.

조건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이기 때문이었다.

한 사진작가가 평생을 돌아보며 말했다고 한다.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노력했는데, 삶은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특별한 순간을 찾으려 했지만, 알고 보니 모든 순간이 특별했다.
완벽한 장면을 기다렸지만, 이미 모든 장면이 완벽했다.

빵집 사장님의 새벽 5시도 결정적 순간이었고,
미화원의 마지막 차도 결정적 순간이었고,
간호사의 깊은 밤도 결정적 순간이었다.

우리가 놓친 건 특별함이 아니라 평범함의 특별함이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작가일지도 모른다.
조건 없이, 우리이기 때문에.
삶의 깊이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누군가에게 건네는 안부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정성스러운 마음이라면 그 모든 것이 작품인 것 같다.

완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아도 상관없다.
정성스러운 마음이면 충분한 것 같다.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이 없어도 상관없다.
영혼의 깊이만 있다면.

오늘 당신이 정성스럽게 산 모든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결정적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조건 없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당신이, 조건 없이 작가인 것 같다.

오늘도,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에서.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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