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결국 남는 것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에게, 사랑의 가장 가까운 곳에는 언제나 원망이 있었다. 몇 달 전, 여자친구와 크게 다퉜던 그 밤처럼 말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쌓이고 쌓여 결국 터져버린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화가 났고, 서운했고, 원망스러웠다. "왜 저런 말을 했을까.", "내 마음도 생각해주지." 그 감정들이 가슴을 짓눌렀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몇 밤이 지나는 동안 휴대폰은 조용했다. 검은 화면 위로 새로운 알림은 끝내 뜨지 않았다. 그 침묵의 무게만큼 원망이 자라나는 듯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다툰 내용보다는 함께 웃었던 순간들이 먼저 떠올랐다. 원망은 어느새 그리움이 되어 있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그랬다. 어린 시절 서운해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원망은 감사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원망과 그리움 사이를 오가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한 바둑 기사의 오래된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중국의 바둑기사 구리 9단이 숙적 이세돌에게 패배한 후 남긴 말이었다.
"짧은 원망, 오랜 사랑."
그 한마디에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오랜 시간 겨뤘던 상대에게 진 순간, 그가 남긴 건 찰나의 원망이 아니라 길고 깊은 사랑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원망은 순간의 감정이고, 사랑은 시간의 축적이라는 것을.
자신을 이긴 상대에게 "함께 손을 나눌 때면 나는 그에게 잠겨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키워준 존재임을 인정하는 그 성숙한 사랑의 모습을 보았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모든 관계가 그런 것 같다. 연인 사이에도, 가족 사이에도, 친구 사이에도 원망의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 원망들이 쌓여 사랑이 깊어지기도 한다. 상처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 원망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더 깊은 사랑으로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누군가에게 서운할 때마다 구리의 말을 떠올린다. "짧은 원망, 오랜 사랑." 지금의 이 감정은 잠깐이고, 결국 남는 건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라는 것을.
이세돌이 은퇴할 때, 구리는 그를 "내 앞길을 비춰줬던 등불"이라 불렀다. 우리 삶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원망스럽게 하지만, 결국 우리를 성장시켜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서 다행이고,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 수 있어서 행운인 사람들.
오늘도 누군가 나를 서운하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원망은 짧고, 사랑은 길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남는 건 함께했던 따뜻한 기억들이라는 것을.
짧은 원망보다 오랜 사랑이 더 아름답다.
오늘도,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에서.
#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