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덕 Jul 07. 2024

5화 나나나

왜 태극권?


"자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립니다"

사부님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그리고 집중하며 팔을 들어 올린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고"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쉰다. 내쉬는 숨에 쓸려 가슴이 시원하다.


동작을 듣고 동작을 따라 하며 몸에 집중한다.

움직이는 몸을 마음이 바라보며 둘의 길을 일치하려 해 본다.

하지만 어느새 상념이 가득.

몸은 몸의 길로, 마음은 마음 길로, 각자가 길을 잃고 제각각 흩어진다.




수련을 할 때 집중하려 집중해 보지만 그것 참 마음대로 안된다. 머릿속은 어느새 시답잖은 상념만 가득 차고 거기에 홀린 나는 상념을 따라 헤매고 있다. 다시 얼른 정신을 차리고 '집중! 집중!'을 되뇌지만 되뇐다고 될 일인가? 집중하려 집중하니 집중이 더 안된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고민해서 고민이 없어지면 고민할 필요가 없겠네"

여기서 '고민'을 '집중'으로 바꾸면 딱이다.


"집중해서 집중되면 집중할 필요가 없겠네"


천방지축 개구쟁이 같고 통제불능 망아지 같은 생각은 이랬나 싶으면 저러고 있고, 여기 있나 싶으면 저기가 있다. 이 개구쟁이 때문에 마음도 널을 뛴다. 기쁘나 싶으면 슬프고, 만족했나 싶으면 욕심나고, 행복하나  싶으면 외롭다. 나는 그런 천방지축 개구쟁이가 뭐가 좋은지 어느새 태극권을 버리고 홀린 듯 녀석을 쫓아다닌다. 숏츠나 릴스 따위가 중독성이 강하다지만 내 속의 개구쟁이에 비하면 어림없다. 인공지능 딥러닝이 우리의 취향을 파악해 원하는 것들을 쏙쏙 가려 귀신같이 보여줘 눈을 뗄 수 없게 한다지만 언제나 나를 무아지경 홀려버리는 내 속의 개구쟁이엔 감히 도전치 못한다. 아마 쳇gpt 버전3만이 나와도 어림없을 테다.


내 속의 개구쟁이는 또 하나의 나다.

그리고 개구쟁이에 홀려 따라나서는 것도 나고, 아차 싶어 다시 정신을 차리는 것도 역시 나다.

이처럼 내 속엔 '나'가 많다.


수련을 하는 '나',

동작을 듣고 몸에 명령을 보내 따라 하려는 '나',

움직이려는 '나',

집중하려는 '나'.

온갖 상념을 자동으로 펼쳐내는 '나',

그것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나',

다시 퍼뜩 정신을 차리는 '나'.......

나에 둘러싸여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나와 나,

모두 다 '같은 나' 같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나'.

나는 나나나들의 놀이터다.


명상으로 유명한 '앤디 퍼디컴(Andy Puddicome)'은 넷플릭스의 '명상이 필요할 때'란 프로그램의 도입부에서 자신의 일화 하나를 얘기한다. 히말라야를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던 시절 그는 '명상'이 '마음을 통제하고 변화시켜서 모든 생각과 방해 요소를 없애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승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명상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도로변에 앉아 있는 자네 모습을 상상해 보게나.
자 이제부터 거기 앉아 지나가는 차만 보면 된다네.
그게 바로 자네의 생각이야.

그의 스승은 명상을 통제나 변화 혹은 없애는 것이 아닌 '보는 것'이라 한 것이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는 것'.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과 그가 번역한 루퍼트 스파이라의 말을 빌려 얘기하면 '알아차림', 그리고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내 속의 나나나들도 그런 것 같다. 나는 수많은 '나'들이 공존하는 '나'이며 움직이고 바라보고 통합하는 '나'다. 알아차리는 나다.


수련에 집중해 보려다 어느새 넋을 잃고 헤매다 돌아오고, 그 일을 다시 반복하고 반복하며 나는 나를 아주 살짝, 그리고 아주 잠깐, 찰나의 시간에 흘깃 마주친다. 너무나 흘깃이라 있는지 없는지조차 애매한 만남. 그렇지만 분명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만남. 나와 나의 만남.

태극권이든 다른 무엇이든 배운다는 건 하나의 수련이며 수행이다. 아니 삶 자체가 하나의 수련이며 수행일 것이다. 그것은 나를 보는 여행이고 나를 만나는 시간이고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나는 평생을 나와 살아야 하므로 무엇보다 나에게 친절하고 따뜻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집중의 길은 멀고 배움의 과정은 끝이 없지만 나는 나나나와 함께 하루하루, 한 발 한 발 가보려 한다. 다투지 않고.


이전 05화 4화 처음 뵙겠습니다 오금희 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