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nbing 2

여섯에서 열 까지

by 천우주


*Enbing:
end+being의 합성어(동사).
끝과 시작, 혹은 시작과 끝. 지속되는 흐름.
α(알파)와 Ω(오메가)이며 ॐ(옴)

<작가 주>


들어가며

Happy Enbing은 앞선 열 개의 단편들의 ending만을 모아놓은 챕터입니다.

그동안의 이야기는 Happy Ending으로 끝이 나며 동시에 Being이 됩니다. Enbing이 됩니다.

끝은 언제나 맞닿아 있으니까요. 어느 곳으로든.

이번 챕터는 앞선 이야기와 함께 읽어보실 것을 권하며, 기존의 이야기들도 다시 한번 수정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목차

Happy Enbing 1 (첫 번째 이야기 ~ 다섯 번째 이야기)

Happy Enbing 2 (여섯 번째 이야기 ~ 열 번째 이야기)








여섯 번째 이야기: Ugly Club(전편/후편)

https://brunch.co.kr/@param0112/350

https://brunch.co.kr/@param0112/349


그 일이 있은 뒤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M의 일상도 이제는 거의 회복되어 종전의 삶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지 표면적인 회복일 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밤이 되면 악몽에 시달렸고 지워지지 않는 악취에 괴로워했다. 가끔은 그때의 일이 상상이나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코 끝에 남아있는 악취가 그날이 실제 했음을 매번 증명해 줬다.

악취, 그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지워지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졌다. 악몽에서 깨어날 때면 마치 자신의 온몸이 오염되어 버린 듯 사방에서 악취가 진동을 했다. 그는 자신이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난 M이 비명을 질러댔다. 참을 수 없는 악취에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아서였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어 날짜를 보았다. 31일, Ugly Day였다.

M은 무언가 결심한 듯 라이터를 집어 들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액체가 가득 담긴 통을 차에 싣고 곧장 Ugly Club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클럽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의 입구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거리엔 골목으로부터 흘러나온 악취가 옅게 깔려있었다. 그는 액체가 담긴 통을 트렁크에서 꺼낸 뒤 역겹고 메스꺼운 냄새가 무겁게 깔려있는 컴컴한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갈림길을 지나 도착한 클럽은 짙은 악취에 휩싸인 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분명했다. 모든 것의 근원은 그곳이었다. M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분명 오늘도 가득하리라. 썩은 냄새를 풍기는 자들, <악취(惡臭)>와 <악의(惡意)>로 똘똘 뭉친 자들이.'

통의 마개를 열자 지독한 휘발성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액체의 정체는 휘발유였다. 하지만 그 정도의 냄새는 악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M은 건물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안쪽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구석구석에 휘발유를 뿌렸다. 남은 휘발유는 정문에 쏟아부었다. 비오 듯 땀이 흘렀다. 그는 빈 통을 입구에 둔 채 대여섯 걸음 뒤로 물러선 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고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얼굴로 두 눈을 치켜뜬 채 클럽을 노려보았다.


이것만 던지면 끝이다. 지독하던 악취도, 더러운 자들도 모두 끝이다.

M의 입가에 기괴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모든 게 다 사라질 거야. 악몽도, 악취도.

라이터의 뚜껑이 열리며 짧고 뭉툭한 손가락이 부싯돌 위로 올라갔다.

나와 저 바깥의 선량한 사람들을 위해 지금, 너희 모두를 소각하리라.

그는 웃었다. 진심으로 기쁜 웃음. 이윽고 그는 힘주어 손가락을 튕겼다.

찰칵!!

작고 노란 불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솟아오르자 두 눈을 크게 치켜뜬 M의 팔이 뒤로 젖혀졌다.


순간, 그는 팔을 젖힌 자세 그대로 멈추었다.

입구의 유리문에 서있는 기괴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흉측한 얼굴로 두 눈을 치켜뜬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얼굴로 시커먼 웃음을 짓고 있는 끔찍한 형상. 그것은 악귀였다. 그리고 그 악귀의 손 끝엔 작고 노란 불이 혓바닥을 날름 대며 춤을 추고 있었다.


M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악취를 즐기고 있음을.

젖혔던 그의 팔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오고 라이터의 뚜껑이 닫혔다.

두 팔을 늘어트린 채 한참을 멍하니 서있던 그는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돌아갔다. 이번엔 달리지도 넘어지지도 않았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어느새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의 코에선 더 이상 악취가 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클럽의 구석진 창너머로 아쉬운 표정을 한 매니저가 바라보고 있었다.






일곱 번째 이야기: 밤의 공주

https://brunch.co.kr/@param0112/352



밤의 공주는 몹쓸 병에 걸려 몇 날을 앓았어요.

원인은 몰랐어요.

어쩌면 너무 힘이 들어서, 어쩌면 못된 악마가 침입해 와서, 아니 어쩌면 공주의 소망 때문에.

뭐가 되었든 공주는 나날이 야위어 갔죠. 그 작은 몸이 불덩이가 된 채 말이죠.

처음엔 사람들도 걱정했답니다.

물도 먹이고 죽도 먹이며 차디찬 수건으로 열도 식혀주었죠.

그건 공주가 낮의 나라에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친절이었답니다.

그래요. 잔인한 마음에도 한줄기 온정은 있는 법이죠.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어요.

의식을 잃고 발작을 하는 공주는 얼마가지 않아 쥐가 끓는 더러운 헛간의 구석으로 보내졌어요.

사람들은 삽과 곡괭이를 준비했고요.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했지요.

먼지와 어둠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생명을 잃어가는 공주의 곁엔 아무도 없었어요.


그날, 공주는 밤의 왕국 무도회에서 근사한 왕자를 만났답니다.

둥글고 커다란 귀에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털을 가진 멋지고 늠름한 생쥐 나라의 왕자.

왕자의 곁엔 그를 따르는 일곱 마리의 생쥐 기사가 함께했어요.

무도회가 끝나고 공주의 앞에 무릎 꿇은 왕자는 예쁘고 작은 손에 입 맞추곤 얘기했죠.

일곱 생쥐 기사와 함께 생명을 다해 당신을 지켜주겠노라고.


다음 날, 까마득히 해가 높이 올랐을 때 공주가 깨어났어요.

초췌한 얼굴로 비틀대며 헛간을 나오는 공주를 보고 사람들은 무척이나 놀랐어요.

깜짝 놀라 달아나는 사람도 있었지요.

공주가 누워있던 자리 옆엔 여덟 마리의 쥐가 잠들어있었어요.

잠에서 깬 공주는 그것을 보고 알았어요. 이제는 더 이상 공주가 아니란 걸.


Mia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어요. 놀랄 만큼요.

아! Mia는 공주의 이름이랍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슬프고 고된 낮의 나라의 일상도 다시 시작되었지요.

괴롭고 힘든 건 여전했어요.

그럴 때면 Mia는 생각했답니다.

밤의 왕국 대신 반짝이는 은빛 털을 가진 왕자와 그의 일곱 기사를.






여덟 번째 이야기: 식당

https://brunch.co.kr/@param0112/353


망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 첫 대면 자리였는데 완전히 망해버렸다.

검색, AI, 지인 추천의 삼박자를 완벽히 맞춘 식당으로 자리를 마련했지만 이렇게 형편없을 줄 어찌 알았겠나!

말라비틀어진 밑반찬, 덜 익은 음식, 발로 맞춘 간, 게다가 머리카락까지!! 가격은 또 왜 그리 사악한지...

여자 친구는 벌개진 얼굴로 허벅지를 꼬집고 어른들은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헛기침을 해대기 바쁘셨으니 이 정도면 완전히 망한 거다.

나? 속으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연신 웃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그러면서 다짐한다. 이 집을 추천한 녀석들을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을. 앗! 아니. 결혼식엔 불러야지.


우리는 참담한 식사 후 같은 건물의 카페로 갔다. 천만 다행히도 카페는 괜찮았다. 여자친구와 그의 부모님도 만족해했다. 나는 이대로 잘 끝나는가 싶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란 말도 있잖아?

그런데 커피를 마시던 아버님이 질문을 한다.

"자네. 조금 전 식당은 어떻게 알고 갔나? 음식이 참 성의가 없던데. 일부러 그런 건가?"

날카롭다.

"아닙니다 아버님. 그럴 리가요 하하."

"직원들도 성의가 없고. 참 장사하는 사람들이 으흠... 자네도 보지 않았나."

"아 네.. 죄송합니다 아버님. 다음에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를 말하기도 전에 아버님이 언짢은 표정으로 계속 얘기한다.

"명색이 첫 대면인데 준비가 이렇게 부실해서야... 그런 안목으로 우리 딸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어디 말헤보게."

아... 큰일이다. 뭐라고 해야지? 속았다고 하면 무책임해 보이겠지... 뭐라고 하지?

어라? 근데 이거 어디서 겪었던 일 같은데? 뭐였지?

그래! 대답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버님. 저는 참 감사하게 잘 먹었습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아버님은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듯 호통치듯 말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게 저는 식당을 좋아합니다. 그건 인생과........."

그 뒤는 선배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물론 똑같이 한 건 아니다. 그저 기억도 잘 안나는 선배의 말을 대충 뭉뚱그려 내 식대로 이야기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뜻은 같았다. 식당, 모험, 인생 뭐 그런 것들.

내 말을 들은 아버님은 잠시 말이 없으시다 이내 젊은 사람이 참 긍정적이라고 말씀하시곤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게 긍정적인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버님과 어머님의 마음을 돌린 건 확실했다. 그 뒤로 우리는 하하 호호 웃으며 시간을 보냈으니깐. 그럼 된 거지.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니깐.


선배의 말처럼 식당이 인생인지, 인생이 식당인지는 모른다. 동의도 안되고.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한지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어디선가 사람 좋은 웃음을 웃고 있는 솜털같이 흐리멍덩한 양반이 조금 고맙긴 하다.






아홉 번째 이야기: 잃어버린 가르침

https://brunch.co.kr/@param0112/355


탁발승은 깊은 숲을 지나다 얼굴에 파리와 벌레가 잔뜩 달라붙은 죽어가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남자의 모습을 천천히 살피더니 가까이 다가가 생기가 꺼져가는 눈을 온화한 얼굴로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 속엔 오직 고통만이 가득 차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지켜보던 탁발승은 남자의 얼굴에서 파리와 벌레를 쫓아내며 부드럽고도 따뜻한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얘기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고통이요,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낮은 자도 높은 자도, 가난한 자도 부자인 자도,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노인도 그렇다. 우리는 고통 속에 태어나 고통 속에 늙어가고 고통 속에 죽어간다."

탁발승은 그렇게 얘기하곤 말을 멈춘 뒤 한참을 있다 깊은숨을 들이쉬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세존은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은 뒤 말을 이어갔다.


"모든 것은 고통이지만 고통이 아닌 것이 오직 하나 존재하니, 그건 바로 너 자신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고통 속에 오직 너만이 자유롭다."






열 번째 이야기: 돌아가요

https://brunch.co.kr/@param0112/357


바리데기의 손을 잡고 떠나는 남자는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점점 더 젊어져 갔다.

50대가 되었다 40대가 되었으며 몇 걸음을 더 디디니 30대가 되었다.

그리고 20대를 지나 10대가 되어가며 조금씩 작아져갔다.

얼마가지 않아 남자는 아이가 되고, 아기가 되어 바리데기의 품에 안겼다.

남자는 바리데기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눈망울로 배시시 웃었다.

히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곧 아기보다 더 작아지고 작아지다 천천히 사라져 버렸다.




삐- 삐- 삐- 삐- 삐---------------------

삐____________________


노인과 연결된 모니터에서 불규칙하게 움직이던 심장 박동이 점점 작아지더니 이윽고 지루한 수평선을 이루며 한없이 뻗어나갔다. 길게 이어지는 차가운 기계음 속에 곁에 있던 의사가 맥박을 확인하곤 주위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오후 11:59분. 환자분이 운명하셨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맑고 차가운 공기가 세상을 가득 메운 12월 31일의 밤.

노인은 미소 띤 편안한 얼굴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병실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슬픔에 잠겨 흐느꼈고 병원 어딘가에선 누군가 틀어놓은 새해의 종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 모습을 하늘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별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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