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복싱하는 것을 안 지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뭐? 니가 뭐 한다고?”
“복싱.”
“복싱? 권투?”
“어, 어.”
“진짜? 니가 복싱한다고?”
내가 복싱을 시작했을 때, “진짜”와 “설마”가 복합된 지인들의 반응이었다. 아무리 상상해도 내가 복싱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나 보다. 그러니 몇 달 후의 질문은 “아직도 복싱해?”였다. 한 달도 못 가서 관둘 줄 알았는데 지속하고 있어서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지인 중 몇 명은 내가 복싱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뭔가 의지가 돋는 모양이었다. “너도 하니 나도 할 수 있겠다.” 이런 심정으로 복싱체육관을 기웃거린다는 사람도 생기기는 했는데.
가족도 관심을 보였다. 놀람, 신기, 우려가 모두 포함된 것이었다.
어느 날, 집에 부모님이 오셨다. 그때, 베란다 서늘한 곳에서 땀을 말리고 있던 글러브가 아빠의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아빠는 글러브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나 껴봐도 되냐.”
나는 작지 않을까 하면서 글러브를 내밀었다. 지금은 지병으로 인해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시지만, 과거에는 한 운동했다고 자부하시는 아빠의 표정에 설렘이 가득 찼다. 뼈만 남은 두 손에 글러브를 끼워 넣으며 “라떼는~”을 시작으로 복싱의 추억을 회상하셨다.
“아빠, 그럼 한 수 좀 가르쳐 주시죠?”
자세를 잡은 아빠의 한 수는 “그냥 이렇게.” 하더니 혼자 신나게 원투, 훅, 어퍼컷까지 날렸다.
“아니 혼자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하라고?”
“그냥 이렇게.”
아빠는 다시 혼자서 신나서 주먹을 날렸다. 옆에서 엄마가 그만하라고 말려야 아쉬운 표정으로 글러브를 쓱 뺐다. 오랜만에 껴 본 글러브의 추억에 즐거우셨을 것이다. 그랬던 아빠가 지금은 가끔 내가 복싱한다는 사실을 깜빡깜빡하신다. ‘복싱’으로 내 건강이 아닌 아빠의 건강까지 체크할 수 있게 될 줄이야…….
엄마는 내가 복싱덕에 체력이 나아진 것을 뿌듯해하신다.
이번에도 어느 날, 시골집 마당에 나무를 수십 그루 심어야 했을 때, 엄마와 나는 직접 심어 보기로 했다. 직접 심기로 하고 블루엔젤과 블루아이스 이십여 점을 주문했다. 지름은 작았지만, 수고가 대부분 1m~ 2m 내외의 나무였다. 서너 그루 정도야 그리 힘들지는 않겠지만,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나무를 심는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의 힘만 생각한 아빠는 자신만만하게 땅을 파겠다며 삽을 들고 다녔지만 삽 드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고, 내가 복싱을 하고 있지만 없던 힘이 슈퍼우먼처럼 슈퍼파워로 솟아날 것이란 기대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엄마도 나에게 엄마이지 이제 '할머니'인데.
역시 아빠는 ‘삽’만 들고 다녔고 나는?
엄마와 함께 나무를 차에서 내리고 이동하고 땅을 파고 나무를 심는 일련의 과정을 무리 없이 해냈다.
“너, 복싱하길 잘했네. 옛날이었으면 이렇게 나무 나르고 땅 파고 나무 심고 하는 거 상상도 못 했지.”
그러니 엄마는 가끔 내가 운동하러 갔는지 안 갔으면 왜 안 갔는지를 묻곤 한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다. 내게 복싱을 적극 권유했던 동생 nedel은 뿌듯해하고, 내가 다이어트 복싱 댄스를 하는 줄 알았던 남동생은 나의 복싱 동영상을 보고 시니컬하게 “자세가 나오네.”라며 인정한다. 남편은 “어? 이 정도였어? 이제 위험한 여자네!”라고 하며 나의 연습 주먹에 “하지 마, 하지 마.”라면서도 제 손바닥으로 받아주기도 한다. 나의 복싱 생활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가족의 이런 반응 덕이기도 하다.
긴 일정으로 제주에 갈 일이 생겨 잠시 복싱 체육관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공백은 내 몸을 다시 초짜로 만든다. ‘몸의 기억’이라는 것이 있지만, 몸이 기억할 정도로 나는 복싱을 그리 오래 하지 않았다. 나의 이런 걱정을 안 nedel이 말했다. “언니, 공백 이후에 잘 안 되는 것은 체력이 문제일지도 몰라. 몸은 동작을 기억하고 있을지 몰라도 운동을 쉬면 확실히 체력이 떨어져.”
관장님도 그랬다. 체육관에 오지 못하더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라고. 줄넘기, 팔굽혀펴기, Shadow Boxing 등.
“큰 나무 있으면, 샌드백처럼 연습해 보기도 하고. 이렇게.”
“관장님, 진심 아니죠? 주먹 다 나가게.”
관장님은 주먹을 쥐고 샌드백을 살살치며 시범을 보였다. 어쨌든, 내가 나무 앞에서 그런 동작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며칠 뒤 제주도에서 엄마와 편안한 등산 중이었다. 사방으로 온통 큰 나무가 가득했다. 엄마와 나는 나무를 부드럽게 쓸어내며 나무의 에너지를 느꼈다. 엄마가 잠시 쉬는 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앞에서 하체를 단단히 딛고 주먹을 쥐는 자세를 잡았다. 나무는 때리지도 못하고 그저 샌드백이 있는 것처럼 가드를 올리고 주먹을 뻗고 피하고, 혼자 야단법석하고 있을 때 뒤에서 나는 소리.
“복싱 잘하네.”
어르신 등산객이 웃으며 지나갔고, 머쓱해하는 내 머리 위에서 놀란 까마귀가 ‘까아아악’ 웃어댔다.
지인들이 나의 이런 모습을 봤다면, 역시 또 놀랐을 것이다.
“뭐어? 니가 산에서 복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