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태까지 관장님의 지도 스파링(?) 외에 정식 스파링을 해 본 적이 없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직 병원을 다니고 있는 처지로서 스파링을 시도하는 것은 조금은 무모한 행동인 것 같다. 혹시라도 하게 되면 ‘근본 없이 덤비는 자’가 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상상도 해본다. 관장님도 나의 건강 상태를 잘 알기에 스파링은 권하지 않는다. 스파링을 해봐야 실력이 더 빨리 는다고 얘기는 하지만.
대신 다른 회원들의 스파링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기는 하지만, 영화 <백 엔의 사랑> 이치코처럼 (삶에서든 링 위에서든) ‘나도 제대로 이겨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치열한(연습에도 진심 열정을 다하는) 스파링이 끝난 후, 서로 톡톡 두드리는 인사에서 그들만의 끈끈한 무언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아픈 건 아픈 거 아닌가? 아무리 회원끼리 스파링이라지만 가끔 코피를 흘리거나 입술이 터지는 회원을 보면 괜히 고통이 전이되는 것 같다. 가끔 미트에 스치기만 해도 따끔한데 말이다.
미트가 내 얼굴을 스친 꽤 여러 날 중, 한 번 관장님께 물은 적이 있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면, 이렇게 맞는 건가요?”
“피하지 못하면, 이렇게 공격을 막으면 됩니다. 하지만 때려도 보고 맞아도 봐야 합니다.”
“맞으면 당연히 아프죠?”
“아프지 않습니다. 기분이 좀 나쁠 뿐. 하지만 맞고 나면 실력이 두 배 늡니다.”
맷집이 생기는 거다. 공격의 고통을 견디는 힘과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 맷집 보유는 분명 장점인 것 같다.
‘글 작업’을 하는 내게도 맷집은 필요하다. 불투명한 미래, 불안한 현실, 실패와 절망, 혹평, 악플, 거기에 처참한 무플 등을 견디어 낼 힘인 맷집. 솔직히 그동안 합평을 많이 해서 ‘혹평은 견딜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오산이었다.
언젠가 내 소설에 관한 첫 악플을 읽고,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무명작가가 겨우 붙잡고 있던 밑바닥 먼지 같은 자존심이 힘없이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물론 하룻밤의 불면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그때 깨달았다. 맷집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이상의 이상으로 키워야 하고, 늘 떨어지지 않도록 쟁여놓아야 한다는 것을.
맹자는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는데, 이 또한 '맷집'이 필요한 이유다. 무너지지 말고 맷집으로 잘 버티고 있어라. 그러고 나면 정말 큰일이 오든 안 오든 어떠한 일이 닥쳐도 더 단단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조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의 진심은 맷집을 자주 사용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공격당하는 것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격은 띄엄띄엄 오지 않고 몰아서 온다. 맷집으로 그 고통을 참고 견딜 때마다 몸과 마음의 고통도 계속 쌓인다. 아프다, 많이 아프다.
아무리 타고난 맷집이라고 해도 누적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맷집의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자신만의 강력한 공격 기술을 키워 이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전까지 절대 무너지지 말고, 숨겨진 맷집까지 끄집어내서 잘 버텨보는 수밖에. 복싱으로 체력을 키우고 그 힘으로 인생도 버티는 거다. 맹자의 가르침을 조금은 의지해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