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겡끼 에스파、삿포로에서도 덕질하기

리얼 월드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by 박애주





완연한 설국이었다. 무려 25년 만에 찾아온 폭설이라고 한다. 고작 세 시간짜리 비행치곤 확실히 과분한 보상이었다. 동경 141, 북위 43. 일본 최북단의 섬, 홋카이도(北海道). 지난여름 최애가 집에 바퀴를 달아 다녀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곳은 내가 알던 세상 중 가장 완벽한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름의 홋카이도를 보고 나니 겨울도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나의 어린 최애가 휴가로 친구와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온 브이로그를 보니 기대가 거세게 커져갔다. 휴식과 미식, 관광이나 쇼핑. 이곳에 온 사람들은 온통 똑같은 하얀 풍경 속에서 저마다 다른 것을 찾아간다. 물론 나의 목적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오랜 아이돌 덕후에겐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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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아이돌들은 데뷔 후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팬덤이 생기면 글로벌 무대로 진출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일본 팬들을 만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화권, 지척에 닿는 세계 2위 규모의 음반 시장. 선배 가수들이 활로를 개척한 덕분에 도전에 대한 부담이 적은 매력적인 기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일본어가 이렇게 일본에서 활동한 최애의 아이들의 노래 가사와 영상 콘텐츠에서 배운 단어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의 창립자인 수만리는 1세대 아이돌 S.E.S.와 보아(BoA)를 프로듀싱할 때 일본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현지화 전략으로 일본 진출에 성공했다. 지금 아이돌 친구들이 일본에서 활동하기까진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런 성과에 대한 감사 또는 자축인 걸까. 에스엠은 국내에서 돌지 않는 콘서트 투어를 일본에서 열고, 슴콘은 일본 팬들을 위한 특별 무대를 준비한다. 에스엠은 왜 이리 일본을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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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에 일본에 가면 시장 조사를 할 겸-네가 왜?- 일본의 음반 판매점에 가고 싶었다. 일본에서 가장 큰 음반 프랜차이즈는 타워 레코드(Tower Records).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1979년 일본 최초로 개점한 타워 레코드가 삿포로에 있었다고 한다. 치이카와 랜드, 지브리샵, 프랑프랑, 꼼데가르송, 포터가 입점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삿포로 파르코 백화점의 7층에는 홋카이도에서 제일 큰 타워 레코드 삿포로 파르코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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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여기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에스파(aespa)의 일본 데뷔 싱글 <Hot Mess> 음반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직구 과정이 번거롭고, 구매 대행을 하자니 배송비가 비싸서 위시리스트에만 담고 있던 앨범이다. 타워 레코드 삿포로 파르코점은 생각보다 매장 크기가 작았지만, J-POP, 클래식, 컨트리, 로큰롤 등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취급하고 있었다. 매장 입구와 가까운 곳에는 K-POP 코너가 있다. 엔시티, 엔하이픈,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 등 많은 K-아이돌 앨범 속 에스파의 앨범이 한가운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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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타워 레코드에서 판매 중인 에스파의 앨범은 에스파가 한국과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미니, 정규 앨범부터 공연 실황 영화 DVD, 에스파 콘서트 도쿄돔 스페셜 블루레이까지. 낯선 곳에서 아는 얼굴을 보니 더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손이 갈 뻔했지만, DVD는 보기 어렵고, 재작년에 구매한 에스파 CDP는 멋진 장식품이 된 지 오래여서 참을 수 있었다.



주말 이른 시간에 방문해서 손님이 적었던 건지 매장은 전체적으로 한산했다. 일본 사람들은 아날로그를 좋아해서 실물 앨범을 많이 구매할 줄 알았는데, 역시 요즘엔 스트리밍이 대세인가 보다. 매장을 구경하며 만난 방문객 대부분이 나와 같이 한국에서 온 덕후였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면, 이들의 가방에 달린 포토카드와 키링이 내 키링한테 말해줬다.








한참을 쇼핑하고 나오니 매장 앞에 가챠(뽑기) 머신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잠깐 구경만 하려 했는데, 그곳에서 운명처럼 에스파 가챠를 만났다. 에스파 정규 1집의 더블 타이틀곡, <Supernova>의 뮤직비디오 착장을 한 에스파 피규어 키링, 가격은 한 판에 5백엔. 사진에서부터 이 키링이 ae-에스파보다 에스파를 닮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덕후는 코인을 바꾸는 걸 멈출 수수수-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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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가 네 명이니 딱 네 판만 하려고 했는데, 내가 티켓팅폼림픽에 운을 다 썼나 보다. 여섯 판이나 돌렸는데 불미스럽게도 키링 에스파는 하나가 되지 못했다. 순식간에 3천 엔을 쓰고 나니 이럴 거면 발품을 팔지 않고 직구하는 편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맥시멀리스트여도 이 가챠 에스파는 여러 개까지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중복으로 나온 건 다음 에스파 콘서트 때 나눔 해야겠다.



방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삿포로에서 카리나를 만났다고 하며 새로 사귄 작은 친구를 소개했다. 친구는 '내가 카리나였으면 화났을 듯'이라고 했다. 아직 카리나가 화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으니, 카리나는 진짜 착하거나, 아직 이 가챠 카리나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게 분명하다. 이 아이는 아직 다녀가지 않았을 곳에서 나만 아는 사랑 이야기와 비밀이 하나씩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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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과 여행은 닮았다. 같은 곳에 가서 같은 것을 해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면 완전히 다른 여행이 되는 것처럼, 오래 덕질을 했지만 이 덕질은 매일이 새롭다. 이래서 다들 여행도 덕질도 계속하는 거 아닐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에스파 영화를 봤다. 하늘에서 만나는 에스파도 지상에서 만나는 에스파만큼 멋졌다. 집에 가면 그동안 밀린 에스파 콘텐츠를 보면서 짐 정리를 해야지. 덕질을 안 했으면 나는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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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エスパ), 오겡끼데스까! 작년 한 해 열심히 달려온 에스파 친구들도 2주 간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슴콘에스파 월드 투어로 2026년을 시작한다. 올해는 일본에서 활동을 많이 할 거라고 한다. 당분간 해외 스케줄로 직접 만나는 건 어렵겠지만, 나는 잘 충전하고 온 만큼 이 덕질이란 여행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떠나볼까. 길 없는 지도를 펼쳐, 그저 맘이 흘러가는 곳으로.




Flights, Not Feelings - 에스파(a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