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밖에서 무대 뒤의 너에게
무대가 아닌 곳에서 전해지는 진심도 있다.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내고 온 사람에게 또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 사랑은 자꾸 더 바라게 된다. 무대 위 가장 멋진 순간을 함께하고 싶은 것은 물론이고, 무대 뒤와 무대 밖의 모습도 궁금하다. 그런데 나는 가끔 무대가 전혀 아닌 곳에서 덕후인 나보다 더 날카롭게 최애를 조명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역시나 이번에도 멋진 무대였다. 2025년에도 상을 많이 받았다. 어느덧 6년 차가 된 슈퍼노바 대상 가수는 이제 연말 가요제에서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자기가 열심히 해서 받은 상의 공을 모두 마이(MY)들에게 돌렸다. 무대를 행복하게 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그 행복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네가 무대 위에서 행복하다고 하는데도 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보는 무대 위의 네 모습이 네가 감당해야 할 전부가 아니라서 그랬다.
야, 너도 봤어? 그거 진짜래? 내가 대답할 수 없는 다섯 글자 문제에 5년짜리 사랑이 구내식당에서 휘청인다. 앞에서 가볍게 웃어넘기고 뒤를 돌아 바로 핸드폰을 꺼내 네 이름을 검색했다. 마음도 입도 무거워졌다. 무대를 향해 외치던 응원법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오래 덕질을 했어도 나 같은 겁쟁이에겐 다른 덕후들보다 더 많은 숫자와 글자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 그냥 보통의 사랑도 어려운데 덕질이란 이 다분히 일방적인 사랑은 훨씬 더 어렵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이 사랑을 기어이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2026년 1월 1일, 올해 스물다섯 살이 된 에스파 윈터의 생일 축하 이벤트는 작년보다 스케일이 더 커졌다. 놀이공원을 테마로 한 윈터생일카페는 입장하려면 진짜 놀이공원만큼 줄을 서야 하고, 여의도 한강공원과 윈터의 고향인 부산에서 윈터의 생일을 기념해 드론쇼와 불꽃놀이가 열린다.
그래서 오늘따라 내 사랑이 더 작고 촌스럽고 초라해 보인다. 이 사랑은 늘 잊을 만하면 반짝임 안에 이런 빛바랜 감정도 있다는 걸 알려준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계속하기로 했다. 작년과 똑같이 1년어치 사랑을 네게 선물 받은 병에 담고 이번엔 이 못난 감정도 모두 모았다. 아무도 모르게 집어넣고 하나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뚜껑을 꽉 닫았다. 2025년에서 고작 하루 지났다고 멀찌감치 두고 보니 제법 괜찮아 보인다. 새 병을 열었다. 이 병에는 사랑만 가득 채울 수 있을까.
이럴 때 기분 전환에는 음악이 필수다. 특히, #새해첫곡을 고르는 건 최애가 많은 박애주의 덕후에겐 족히 며칠을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재작년에는 레드벨벳의 노래를 들었고, 작년에는 너와 약속한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올해의 첫 노래는 좀 더 오래 고민하다 이 글을 쓰면서 골랐다. 아마 내년 이맘때는 다른 노래를 들을 것 같지만, 플레이리스트가 바뀌어도 그때 내 마음이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생일 축하를 이렇게 해. 나는 이렇게 정성스럽게 못나고 긴 축하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 번도 이 마음이 가짜였던 적도 없다. 나는 감히, 너도 분명 그랬을 것 같다. 2025년 마지막 날 새벽, 뒤도 돌아보지 말고 2026년을 완전 새롭게 같이 시작하자고, 나를 믿고 힘내서 열심히 하겠다는 너는. 2026년 첫날 새벽, 생일 축하를 받기보다 모두의 새해 인사를 먼저 챙기는 너는. 너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어떻게 응원을 해야 할까. 요즘은 모두가 새로운 걸 시작하는 시기지만, 나는 다시 무대로 향하기 전에 휴식이 필요할 것 같다. 너도 그만큼 쉬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일단 겨울잠을 자려한다. 완벽한 겨울잠을 자려면 준비할 것이 생각보다 많다. 평소보다 잘 챙겨 먹어야 하고, 양치하고 깨끗하게 씻고, 따뜻하고 포근한 파자마, 침대와 베개, 이왕이면 좋은 향기가 가득하고 아늑한 곳이면 좋겠다. 그리고 네가 버블에서 말한 대로 꿈도 꾸지 않는 긴 잠을 자고 싶다. 나는 여전히 올해 우리가 어떤 항해를 하게 될지 궁금하다. 다음에 우린 어디로 갈까? 여전히 궁금하지만 먼저 한잠 자고 일어나서 물어볼게. 너도 만약 모르겠다면, 그냥 내 손을 잡아 걸어가면 돼. cuz,
스물다섯 번째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