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밖에서 무대 뒤의 너에게
무대가 아닌 곳에서 전해지는 진심도 있다.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내고 온 사람에게 또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미안하지만, 이 사랑은 자꾸 더 바라게 된다. 무대 위 가장 멋진 순간을 함께하고 싶은 것은 물론이고, 무대 뒤와 무대 밖의 모습도 궁금하다. 그런데 나는 가끔 무대가 전혀 아닌 곳에서 덕후인 나보다 더 날카롭게 최애를 조명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역시나 멋진 무대였다. 올해도 상을 많이 받았다. 어느덧 6년 차가 된 대상 가수는 이제 연말 가요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자기가 열심히 해서 받은 상의 공을 모두 마이(MY)들에게 돌렸다. 무대를 행복하게 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그 행복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나는 네가 무대 위에서 행복하다고 하는데도 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보는 무대 위의 네 모습이 네가 감당하고 있는 전부가 아니라 그랬다.
야, 너도 봤어? 그거 진짜래? 내가 대답할 수 없는 다섯 글자 문제에 5년짜리 사랑이 구내식당에서 휘청인다. 앞에서 가볍게 웃어넘기고 뒤를 돌아 검색을 시작했다. 네 걱정에 내 걱정을 더하니 마음도 입도 무거워진다. 무대를 향해 다른 마이들이 외치는 응원법을 따라 하는 거 말곤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무리 오래 덕질을 했어도 나 같은 겁쟁이에겐 다른 덕후들보다 많은 숫자와 글자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냥 사랑도 어려운데 덕질이란 이 다분히 일방적인 사랑은 훨씬 더 어렵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이 사랑을 기어이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 스물다섯 살이 된 에스파 윈터의 생일 축하 이벤트는 작년보다 스케일이 더 커졌다. 놀이공원을 테마로 한 윈터생일카페는 입장하려면 진짜 놀이공원만큼 줄을 서야 하고, 오늘 저녁엔 여의도 한강공원과 윈터의 고향인 부산에서 윈터의 생일을 기념해 드론쇼와 불꽃놀이가 열린다.
오늘따라 내 사랑이 더 작고 촌스럽고 초라해 보인다. 이 사랑은 늘 잊을 만하면 반짝임 안에 이런 빛바랜 감정도 있다는 걸 알려준다. 그래도 오랜 덕후는 할 수 있는 걸 계속하기로 했다. 작년과 똑같이 1년어치 사랑을 네게 선물 받은 병에 담고 이번엔 이 못난 감정도 모두 모았다. 아무도 모르게 집어넣고 하나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뚜껑을 꽉 닫았다. 2025년에서 고작 하루 더 지났다고 멀찌감치 두고 보니 제법 괜찮아 보인다. 그래도 새 병에는 사랑만 가득 채우고 싶다.
역시 기분 전환에는 음악이 필수다. #새해첫곡을 고르는 건 최애가 많은 박애주의 덕후에겐 족히 며칠을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재작년에는 레드벨벳의 노래를 따라 들었고, 작년에는 너와 약속한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올해의 첫 노래는 좀 더 고민을 오래 하다 이 글을 쓰면서 골랐다. 아마 내년 이맘때는 다른 노래를 들을 것 같다. 플레이리스트가 바뀌어도 그때 내 마음이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생일 축하를 이렇게 해. 나는 이렇게 정성스럽게 못난 축하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 번도 이 마음이 가짜였던 적도 없다. 너도 분명 그랬을 것 같다. 2025년 마지막 날 새벽, 뒤도 돌아보지 말고 2026년을 완전 새롭게 같이 시작하자고, 나를 믿고 힘내서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 네가 어떤 마음일까. 모두가 새로운 걸 시작하는 시기지만, 나는 휴식이 필요할 것 같다. 너도 좀 쉬었으면 좋으련만.
완벽한 겨울잠을 자려면 준비할 것이 많다. 밥도 잘 챙겨 먹어야 하고, 양치하고 깨끗하게 씻고, 따뜻하고 포근한 침대와 베개, 이왕이면 좋은 향기가 가득하고 조용한 곳이면 좋겠다. 그리고 그곳에서 네가 버블에서 말한 대로 꿈도 꾸지 않는 긴 잠을 자고 싶다. 우리가 올해 어떤 항해를 하게 될지 너무 궁금하지만, 한잠 자고 일어나서 물어볼게.
스물다섯 번째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