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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Sep 01. 2024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원근법

조세희 작가 1주기에

난장이 김불이는 나름 나름의 삶의 주름 살을 부여잡고, 고만 고만한 행복을 꿈꾼다. 아들 둘과 딸 하나, 그리고 아내와 사는 곳의 이름마저 '행복동'이다. 이 행복동에 염전 오염 보상으로 주어진 주택 분양권이 '행복'을 갈라놓는다.


백십칠 센티에 삼십이 킬로그램의 몸은 아버지를 온갖 더러운 잡역꾼으로만 몰고 갔었다, 그러나 나이가 드시고 그것마저 체력에 부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더러운 일거리로 연명하던 우리 가족은 당신이 황혼기에 들자 경제를 책임질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인쇄소에 나가 고무 골무를 끼고 접지일을 하였다. 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일을 하면서 세상은 땀 흘리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난장이는 중력에 순응하여 땅과 가장 가까운 이들이다. 이들은 수직 성장의 일반적 욕구를 가슴으로 시리게 담아내고 온갖 낮은 것들과 친구 하며 살아 낸다. 난장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남들이 거들 떠 보지 않는 세상의 더러운 일거리뿐이다. 그 낮은 자의 더러운 수고가 없었다면 높은 곳에 사는 몸뚱이만 깨끗한 자의 화려한 날들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작년 8월 80세로 소천한 작가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은 '첫 문장부터 명문'이라는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 버금간다고 느껴 글 쓰기 시작할 때 품고 다니기도 하였다.

(사진=Yes24>

1980년대는 소위 '리얼리즘 문학'의 전성기가 있었다. 한국 땅에 말이다. 뉴스와 신문이 이야기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모든 이야기들이 단편, 중편, 장편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문열, 김홍신 같은 인세 제법 챙긴 작가들부터 황석영, 조정래, 박완서의 등장이 있었다. 그들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낮은 이들의 삶'이었다.


1980년대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해체의 시대'라고 칭했다. 정치ㆍ사회ㆍ문화의 가치 판단의 기준이 서로 자리를 맞바꾸었다. 그동안 인습처럼 받아들이던 반공과 성장이라는 두 이데올로기의 축이 흔들리고 도전을 받던 시기였다. 억압하던 이데올로기의 힘에 저항한다는 것 자체가 그 시대의 삶의 모습의 대표 상징이 된다.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이라는 것은 분단, 성장, 조직과 명령이라는 현실적 한계에 대한 총체적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도 폭력이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 -중략- 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의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어떤 일을 준다는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난장이의 장남이 공책에 끄적거린 이야기처럼 세상은 늘 묵직한 폭력의 압력이 눌러 대었다. 아버지가 난장이가 된 것은 기형의 저주가 아닌 이 세상의 엄청난 폭력적인 압력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아직도 가장 낮은 땅에는 가난이 선조의 유일한 유지가 되는 이들의 삶이 널브러져 있으니까.


조세희 선생의 문장은 짧고 확언에 가깝다. 명료하고 주저함이 없다. 김훈 선생의 문장에 그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그 짧은 문장은 세상과 실체를 그려내는데 쭈뼜대지 않는다.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짧게 짧게 크로키 스케치하듯 그려낸다. 처연한데 슬프면 안 될 것 같고, 정액이라는 표현까지 난무하는데 자극은 다른 면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 가장 낮고 어두운 곳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나는 불행하게도 그들은 아버지의 모습만 옳게 보았지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는 것을 맹세할 수 있다. 우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하였으며,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아이러니하게 난장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해치는 사람들이 없었다. 이들은 이질집단이기에 그 자체로 보호를 받았다. 불가촉의 의미가 접근금지의 효과를 낸 것이다. 난장이 아버지는 아들과 딸들에게 다른 삶을 살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동네에서 한 발짝도 나나기 힘들다는 체념도 가득했다. 정작 본인은 <일 만년 후의 세계>를 읽으며 달나라에서의 종국을 꿈꾸었다.


그것은 <일 만년 후의 세계>라는 책이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개천 건너 주택가에 사는 지섭이라는 젊은 청년에게 빌린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께 사람들이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으므로 이 땅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예비학회'라는 것을 거의 반강제적으로 선배들이 진행하였는데, 순진한 세상의 때를 벗기고 부조리에 맞설 투사를 기르려는 모임 같았다. 무엇이 되었든 소속감 높이는 체질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때 읽었던 과제의 소설이 이 <난ㆍ쏘ㆍ공>이었다.


당시에 충격이었다. <무진기행>의 김승옥을 너무나도 좋아해 리얼리즘의 70년대 이야기를 손에 달고 있었던 내게도 충격이었다. 꾸며 대지 않고 포장하지 않은 날 것의 문장이 가슴에 들어와 앉았다. 70년대 리얼리즘의 토대 위에 '사회학적 관점'이 더해진 이 시기에 많은 이야기들을 읽어 대었다. 소년이 청년이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출간 30주년 기념 인터뷰 (사진=ebs)

조세희 선생의 소천을 생각하며 지난 나의 글들이 생각났다. 점점 인정과 보상의 욕구에 사로 잡혀 글들이 피상적으로 날리고 있었다. 세세하고 보탬 없는 묘사와 설명은 엣지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 세풍에 억지 맞춤하려고 소화되지 않은 설익은 사유들을 일반화된 개념인 양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내가 요즘 아이들의 글을 읽기 힘든 이유였는데 말이다. 또 부끄러워졌다.


서스펜스, 미스터리, 스릴러가 없으면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요즘 책방 매대의 소설은 이런 말들이 띠지 가득한 것이겠지. 자기를 개발하든 계발하든 각자의 몫이겠지만 가슴 불편하더라고 가장 낮은 곳의 처연한 이야기에 조금 더 눈길을 멈추어 주길 바라고 싶다. 재미와 정보가 아닌 이해와 관심이 되는 그런 글들이 그립다.


"채송화는 높이를 탐하지 않았기에
꽃밭 맨 앞 줄에 설 수 있었다."
-이호준 시인 페북에서-


난장이는 가까이서 보든 멀리서 보든 난장이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2편의 단편들이 잘 꿰어진 옴니버스식 조합 장편이다. 이 안의 주인공 난장이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그 존재가 스며들어 있다. 난장이는 태생부터가 비극을 품고 살아간다. 그 비극의 총체인 난장이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의 원근법이 이 소설집이다. 그는 높은 자리들을 줄줄이 내어 주었지만, 이야기의 맨 앞 줄을 얻어 내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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