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죽음 그리고 수고
병원.... 어릴 적부터 병원이라는 장소는 웬만해서는 가지 말아야 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살았다. 그 이유를 대라고 하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할 만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어림잡아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병원은 교통사고나 죽을병이 걸리는 극단적 운명의 순간이 발동될 때만 가는 곳이라 생각하며 성장하고 생활했다.
제법 오래된, 아니 무척 오래된 기억 중 하나가 있다. 미취학 시절이고 유치원 노란 모자도 쓰기 전이었던 아주 어린 어느 날, 생애 첫 기절의 경험을 했다. 서울이라는 거죽만 있던 강동구 성내동, 사실상 촌동네 골목에서 천둥벌거숭이 마냥 흙 묻히고 놀던 날이었다. 몇 살 위의 형인지, 힘센 친구인지 기억에 확실치 않고 누군가 밀쳤는지 제풀에 버둥이다 걸려 넘어졌는지 지금 따져 물을 수 없으나 선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그 기억을 끝으로 눈을 뜬 곳은 안방 솜이불 속이었다.
아홉 식구가 방 두 칸 반 지하에 살던 살림에 막내를 병원에 둘러업고 갈 생각은 현실의 담 앞에 매번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하기사 나는 병원이 아닌 거여동 슬레이트 지붕 밑 방구석에서 동네 산파 할머니의 손으로 받아 낸 인생이니까. 태생부터 내게 '병원'은 인연 깊을 리 없는 아주 생경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기절했던 꼬마도 성장하고 집안도 살만큼 형편을 피기 시작했지만 '병원'이라는 곳은 여전히 웬만해서는 가는 곳이 아니었다. 고열에 온몸이 달아올라도 뼈가 부러지거나 살이 찢어져도 그저 펴 바른 상비약과 교실 난로 앞에서 쭈그려 엎드려 참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내가 병원과의 인연이 각별해졌다. 병원의 모든 의료서비스를 경험하고 있다. 응급실, 입원, 각종 영상검사, 내시경, 시술, 중환자실, 수혈, 격리와 집중 관리까지... 잠시 폼 잡고 공공의료개혁 운운하던 싹수없던 시절에 주워 들은 풍월로 의료인들과 깊은 대화를 시도도 해 본다. 혈관도 모자랐는지 골수까지 바늘에 내어 주고서야 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제야 절대 떠올리지 않는 단어 두 개를 가슴에 품어 살기로 했다.
수고, 그리고... 죽음
생각이 때로는 실타래처럼 풀어 내리고, 때로는 덩굴 가지처럼 뻗어 나가지만, 이 가벼울 리 없는 두 가지 생각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다음으로 미룬다. 비루한 글을 끄적대는 일도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모양이다. 항암제의 부작용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심혈관 질환, 간담도계 부담도 아닌 무기력을 동반한 피로에 있다. 그 피로에 몸 잡혀 좀처럼 끄적임의 욕구가 일지 않으니 말이다.
우연히 인연을 맺은 어느 시사평론가의 부음이 마음에 박혀 그럴지도 모르겠다. 암 진단 이전에 맺은 그저 약한 고리였고, 암 진단 후 그의 힘찬 투병을 보며 은근히 기대어 의지하지 않았나 싶다. 그저 고통이 사라진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그의 수고로운 살아낸 시간을 미약한 기도 중에 기억하고자 한다. 온전하고 오롯하게 기억하기 위해 나의 삶은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하였는지도 가늠해 본다. 어렵사리 말이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옛말은 잠시 접어 두기로 한다. 이미 삶의 과반을 살아 내었으니 살아온 옛날보다 살아갈 새날이 적게 남은 것은 사실을 넘은 진실이니까. 이 남은 시간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성찰하며 채워가고 싶다. 이것이 내게 남은 꿈이자 희망이며 소원이 아닐까. 장래희망은 아이들의 몫이지만 꿈은 백수를 바라보는 노인에게도 유효하니까.
- 아마도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