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산박 May 18. 2022

“아버지 우리 다시 만나요!”

프롤로그


 “아버지, 우리 아버지, 우리 또 만나요.”      


그는 가족들 대표로 나무로  관에 써진 이름  자를 확인하고는 뚜껑을 열고 생전에 안아보지 못한 아버지 위에 엎드려 가슴을 안고 얼굴을 비볐다. 염하기  병원에서  그대로 겉은 깨끗한 모습으로 말없이 누워있는 사람. 사람이되 이젠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뭔가 이상한 그의 아버지. 그날. 마지막 호흡을 보았고 속절없이 그리고 갑작스레 그를 떠나간 . 생명으로 왔다가 생명을 반납하고 돌아가는 숭고한 . 하늘도 슬프게 눈물 뿌리는 . 아버지를 잃었는데 아버지를 차가운 장의차 트렁크에 싣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조수석에서 울다가 졸다가 비몽사몽 간에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한 . 그래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왔다. 장례식장 도착했다. 슬픔이 승화되어 환희로 바뀌었을까.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가 여기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지금이라도 벌떡 일어나 집에 가자고  것만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절대 아무  없이 거기에 있을 분이 아니었다. 그도 지금 거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고 있어야  시간이었다. 바로 그들 둘이 거기 있도록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불청객 ‘죽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연세가 팔순이 넘어 농사일을 하면  되는 사람이었다. 사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젠 기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순간 대처능력도 둔하고 기억력도 떨어져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그의 형제들은 명절 때마다 아버지를 보면서 극구 농사일을 말렸다. 그런 어느 , 그의 아버지는 시내에 있는 농기구 수리 센터에 가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나섰다. 아직은 한겨울. 바람이 차가웠지만 하늘은 시리도록 맑았다. 무슨 생각을 하며 달렸을까. 그리고  속도를 줄이지 못했을까. 가만히 있어도 세월의 속도는 쏜살같은데  그렇게 급히 달려야 했을까. 달리도록  . 세상이 연륜과 함께 ‘달려야 한다에서 ‘달려야 산다라는 당위성을 줬다면 그건 세상이 잘못된 것이리라. 그의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이  수고의 선물 속에서 살다가 세상이 거둔 영면의 길로 떠났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점점 다가오는 마지막 시간을 직감적으로 예견했을까.          



사람이 살면 몇백 년이나 사느냐는 말과 노래가 있다. 젊어 소싯적부터 청춘, 힘이 범이라도 잡을 기세로는 몇백 년이라도 살 것 같았었다. 사람이나 동물 등은 세월이 갈수록 늙어지는 천리(天理)를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세월이 흘러 하늘을 찌를 듯이 장성한 나무가 고목이 되어 잎이 마르고 가지가 말라 수분이 마르듯 사람도 고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을 애타게 생각하며 슬퍼하고 아쉬워하며 허무함을 느끼며 생을 마감한다. 서산에 해 떨어지고 노을빛 붉게 비치는 황혼(黃昏), 종말이 되는 때가 오고 깊은 잠이 든다. (중략) 나는 얼마 되지 않아 이생을 마친다는 공상이 발생되어 그것이 잠재의식이 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날마다 주위의 환경, 멀리 시야에 보이는 산들, 그 안에 있는 평야와 요천수 내 마을과 거리를 거니는 정든 사람들, 오토바이를 타고 왕래하는 거리에서 시야에 들어온 모든 것들이 새롭고 정답게 느껴진다. 내 고향 산천, 또 보고 또 보아도 싫지 않다. 진리는 어두운 동굴 속에 있는 것도 아니요 깊은 산속에 있는 것도 아니요 내 주위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발견할 수 있다는 율곡 선생의 시경에 있는 말과 같다. 그건 분명한 것 아니냐 - 정다운 고향 (2016.11 일기)      



아버지의 일기 수첩



그는 그의 아버지가  일하셨던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 없이 넘어진 괭이와  있는  거기에 있었다. 아침에 나간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세월의 손길로 반들반들해진 손잡이와 세월이 갉아먹은 상처  자루가 배고픈 강아지처럼 기다리다 지쳐 주인의 슬픈 소식에 그대로 멈춰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자리에 있었다. 그도 잠시 그들과 함께 서서 고개를 숙였다.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삽과 괭이



 당신의 손길이 스쳐간 오래된 친구들

 당신을 아쉽게 떠나보내며

 깊은 묵념에 오래도록 서 있고

 당신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놀라 쓰러져

 이내 정신을 잃었습니다.      


 주인의 손길이 그리운 이들

 이제는 언제 다시 따뜻한 삶의 노래를 부르며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야속한 세월 속에서 따뜻하게 만난 정을 기리며

 이제 저들이 당신을 추모합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날들이 행복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의 아버지는 매일 일기를 썼다. 바쁜 일상 속, 문법에 맞지 않는 팔순 촌로의 일기는 의외였지만, 그는 처음으로 촘촘히 써내려 간 행간 속에서 그의 아버지를 만났다. ‘왔구나. 네. 힘들지 않니? 별로요.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시죠? 나야 건강하지. 감기 안 걸리도록 조심해라. 네.’ 늘 만나면 수학 공식처럼 주고받은 판에 박은 방정식. 외우면 되는 방정식처럼 문제와 모범답안을 다 알고 있는 듯 문제를 냈고 정답을 말했던 그들. 그리고는 또 언제 만났냐는 듯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던 삶.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일기장엔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방정식이 아닌 뜨거운 마음이 숨어 있었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던 아버지의 분신은 주인을 떠나보내고 무장 해제되면서 그에게 돌연 아프게 나타난 것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