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포럼 공화국이다. 인터넷 포털에서 언론사 이름과 포럼을 동시에 검색해 보라. 그 언론사를 다니고 있는 조직원들도 대체 우리 회사에 몇 개의 포럼이 있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그 이유는 뭘까. 포럼이 손 안대고 코푸는 장사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새로운 자원과 역량이 없다. 있는 거라고 기자들의 '네트워크' 뿐이다. 문제는 그 네트워크라는 것이 돈벌이에 활용된다는 것이다. 회사는 포럼을 런칭하고 외국 명사 또는 국내 명사를 초청한다. 그리곤 각 출입처에 출입하는 자사 기자들에게 기업 홍보팀, 정부 대변인실, 공공기관 홍보팀에 전화를 돌려서 되도록 참석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라고 지시한다. 정치부 출입기자는 국회의원, 업계 출입기자는 업계 홍보팀, 정부부처 출입기자는 해당 부처의 장관을 초청한다. 장관이 안되면 차관, 차관이 안되면 1급 공무원이라도 와야 한다. 부서별로 참석율을 조사해서 참석률이 낮은 부서의 데스크의 경우 질책을 듣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내리사랑으로 참석률이 저조한 출입처를 맡고 있는 기자들에게 불호령이 떨어진다. 상무급 홍보팀 임원의 참석이 적으면 기자들은 다시 전화해서 보라고 질책을 받게 된다.
사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와 관련해 개최되는 포럼의 경우 큰 문제는 없을 수도 있다. A 섹터를 출입하는 기자가 A섹터와 관련한 포럼이 개최됐을 경우 관련 출입처에 ‘인사이트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니 한번 와서 자리를 빛내달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출입하고 있는 섹터와 전혀 상관이 없는 주제와 테마의 포럼임에도 언론사에서 전 조직원들에게 홍보팀을 최대한 동원하라고 지시를 한다는 것이다. 포럼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그 언론사의 세를 과시하는 것이다. 홍보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포럼마다 참석비, 티켓 비용이 정해져 있는데 그저 몸만 참석하기도 민망하다. 결국 홍보팀에 책정된 예산 중 일부가 포럼비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언론사의 경우 기자들을 닦달만 잘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포럼인 셈이다. 포럼도 한 두 개로 끝나는 게 아니다.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언론사 창간기념일, 10년마다 돌아오는 기념일도 사람들을 동원해야 한다. 언론사마다 포럼을 주요 사업으로 꼽는 탓에 각 업계의 홍보팀은 포럼장 돌아다니다 일을 못하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는 하루에 포럼장을 3군데 이상 돌아다니는 홍보팀도 봤다. 그들 입장에서는 처리해야 할 일을 못하고 언론사 포럼장만 쫓아다녀야 하니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매우 답답할 것이다.
포럼이 치러지는 날은 일류 호텔에서 기자들이 양복을 입고 일렬도 도열해 있다. 유수대학 총장이나 각 정부부처의 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원, 경제계 인사들이 검은색 세단에서 내리면 각 기자가 앞에 나가서 에스코트를 하고 언론사 데스크들과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게 한다. 나는 이 같은 풍경을 여러 번 바라보면서 여간 불편함을 느낀 것이 아니다. 마치 조폭들이 일렬로 도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포럼 날에는 기자들이 참석한 홍보팀에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얘기를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모두 내(기자)가 직접 전화를 해서 와달라고 사정사정을 하거나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필수 참석이라고 통보를 날린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포럼이 너무 만연하고 의례적인,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상대방도 알다가 보니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국무총리의 축사나 1차 강의가 끝날 때쯤에 자리를 뜬다. 그러면 기자들이 재빨리 그들의 빈자리를 메워서 앉아야 한다. 기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포럼에 참석한 그들과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포럼장에 앉아 있는 기자들, 모두 밥 벌어먹고 살기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 포럼은 효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장사다. 언론사에서는 네트워크를 쌓고 새로운 경영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며 참석을 독려하지만, 인구가 5,000만명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은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람들이다. 이미 네트워킹 모임은 그들이 알아서 잘 유지하고 있다. 언론사가 억지로 엮는다고 해서 엮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업 홍보팀이 포럼장에 가서 강의를 듣는 행위가 해당 회사의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콘텐츠 측면도 마찬가지다. 해외 유명 연사라고 해도 그들이 말하는 얘기에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그들이 수십번 책이나 각종 강연을 통해서 반복한 얘기다.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돼 언제든지 TED 등 유튜브를 통해 유명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수십만원의 돈을 내고 포럼장에 갈 이유가 크게 없다. 해외 유명 연사와 사진을 찍는 게 포럼 참석의 목적이 아니라면.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장기화로 인해 언컨텍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전과 같은 포럼 사업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몇 일간 본사를 셧다운 해야하고 언론 보도에도 회사 명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결코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다. 혹시라도 포럼에 참석했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게 되면 기업이 잃는 게 너무 많아진다. 사실 바이러스가 두려운 건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각종 포럼장에 참석했다가 바이러스에 걸리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기업에 전화를 돌리는 기자들도 많다. 인력동원과 티켓 판매를 통해 매출을 일으키는 사업인 포럼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는 젊은 기자들이 많지만, 이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만 남을 뿐이다. 뾰족한 다른 수익원이 없다는 것을 기자들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