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주 둘째날이다. 입주가 오늘이라 현지에 사는 지인의 집에서 하루를 머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임대 입주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미국 입국 전에는 한국에서 내 재정 증명을 해야 한다. 나는 내 연봉과 체제비를 합쳐서 특정 아파트에 입주할 정도의 재정(finance)가 있다는 걸을 미리 입증해야 했다.
오늘은 최종 계약서를 작성하고 입주를 하는 날인데, 입주 절차는 매우 복잡했다. 나는 미국 정착을 위해 정착 서비스를 이용했다. 정착 에이전트는 미리 오후 2시에 계약 약속을 잡았다. 담당 계약자는 늦게 나타나 정착 에이전트에게 "오늘 계약 3시 아니야?"라고 아주 당당하게 물어봤다. 에이전트는 "2시였어"라고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계약서의 전산작업, 로그인 등을 하며 우왕좌왕 왔다갔다 하는 데 2시간이 넘는 시간과 기다림이 소요됐다.
아이들은 오랜 기다림에 Leasing Office에서 소파에서 누웠다가 자기들끼리 싸웠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기다리는 것은 디폴트값이 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내가 체험하니 피부에 와닿았다.
임대 담당 계약자는 나에게 여권을 2단계에 걸쳐 사진을 찍고 내 얼굴을 AI로 스캔하는 것도 요구했다. 정착 에이전트는 "다른 계약자는 안 그러는데 이 계약자만 그러네요. 계약자마다 기존에 자신이 하던 것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내가 정말 미국에 왔구나'를 실감하는 것 같다.
기다림의 연속
둘째날 입주 정착 에이전트들과 상하수도와 전기를 담당하는 DWP(Department of Water And Power)라는 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미국에서는 새 집을 사거나 임차해서 들어가기 위해서는 DWP에 방문해 계정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입주 정착 에이전트는 미리 방문 약속을 잡아둔 상태였다. 하지만 휴일이 아니었음에도 그날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집에는 분명 전기가 들어왔다. 그래서 'DWP란 곳에 왜 가야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셋째날이다. 정착 에이전트와 다시 DWP에 방문했다. 건장한 덩치의 흑인이 "약속을 하고 왔나요? 당신들 2명이죠?"라고 정착 에이전트에 물었다. 그는 담당자에게 확인 후 철창 문을 열어주었다. 1명의 직원만 유리문 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정착 에이전트가 "어제 왜 문을 열지 않았나요? 제가 2시간 넘게 기다렸는데"라고 말하자 담당 직원은 "어제 다른 애들이 다 안 나왔어. 나도 안 나왔지. 이제 좀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다. "I'm sorry"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정착 에이전트도 "It's okay"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로마에 오면 따라야 한다는 법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고 말이다. 만일 내가 혼자 DWP에 신청을 하고 찾아왔다면 그런데 사무실 문이 닫혀 있었다면 내가 느꼈을 답답함은 상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 됐고 나는 DWP에서 계정을 받아서 2년간 지낼 숙소의 임대 오피스에 계정 번호를 알려줬다. 원래대로라면 DWP에서 먼저 계정을 받아서 임대 오피스에 알려줘야 한다고 한다. 만일 계정을 받는 것이 늦어지면 DWP가 임대 회사에 패널티를 매기는 데, 그 패널티를 임차인이 물어야 한다고 한다. 정말 놀랠 노자다.